봄이다 아이가

by 김봉

살 때문이다


"오빠! 우리 이제 그만.........."

내가 이렇게 손에 잔뜩 긴장을 넣고, 서로 나이도 찼으니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대답이 늘,

"너 살만 좀 더 빼면, 결혼이고 뭐고 살이 너무 쪄서 식을 올릴 수 있을는지!"

하고 얼버무린다.


살을 빼야지 결혼을 올려야 된다고 고집하는 건 장차 내 남편이 될 상문이다.

21살 교내 중앙 도서관 근로 장학생 알바를 할 때부터 사귀어서 벌써 햇수로 8년이다.

그동안 내가 취준 생활을 하면서 고객센터 알바, 편의점 알바, 취준 후 첫 월급을 타서 아이패드다 책이다 수험서다 뒷바라지를 해 준 것도 8년이다.


마운자로 위고비로 빼보아도 성에 안 차는지, 나를 아래위로 훑고 보는 상문의 눈을 피해 쭈뼜대다

그래 '살을 좀 빼면 결혼을 한다'는 이 계약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걸 것이다, 하고 중얼거린다.

애초에 일 년이면 일 년, 이년이면 이년, 삼 년이면 삼 년 이렇게 기한을 정하고 만났어야 할 일이다.

살을 조금만 빼면 이란 건 도대체 얼마나 빼야 결혼할 만큼이 된다는 말인가.

어느 정도 되면 남들 다 하는 프러포즈도 받아보고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렇게 살아야 좋을 것 아니냐.

로스쿨진학에 성공했을 때까지만 해도 실크로드가 펼쳐질 줄 알았다.


1일 차는 합격 점수 2일 차는 낙엽처럼 떨어지는 점수를 보며 나도 같이 마음 졸였다.

4년째 낙방했을 때는 매일같이 술만 퍼먹고 잠만 자길래 책상에 펴둔 책에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얼추 내 몸무게 곱절은 돼 보이는 시어머니 되실 분은 큰 전통시장에서 유명한 돼지국밥집 사장님이시다.

변호사가 아니면 어떠냐, 검사가 아니면 어떠냐, 돼지국밥 백반집 사장이어도 행복할 노릇이었다.


오호라, 내 저 놈의 정의의 여신인지 불의의 여신인지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할 요량이지만

아서라, 시어머니 되실 분 따라 약수터 가면 몰래 돌 하나 얹어 놓고

'제발, 올해는 합격하게 해 주세요.' 하고 빌었다.


회사에서 신나게 타이핑하면서 일하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내가 밑지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타이핑하면 시험에 합격할까 생각해 보아도 그렇지도 못할 걸 내 쳐서는 무엇하겠냐.

해마다 1킬로씩 불어나는 몸무게를 더 불리기 위해 타이핑을 이렇게 열심히 치는 것일까, 아 그러면 조금도 치고 싶지 않다.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오기로 했던 오빠를 기다린다.

바로 옆부서 나보다 5살 어린 후배가 입사 하자마자 결혼을 한다는 생각이 한번 더 스친다.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다

"아이고, 배야!"

돌체라테에 우유 변경을 깜빡한 걸까 갑자기 배가 많이 아프다.

먼발치서 바라보고 있던 상문이 소스라치게 놀라 다가와 괜찮냐고 묻는다.

그래도 나름 내외하느라 좀 떨어져 얼굴을 붉히고

허공의 하늘을 보고 크게 외쳐 본다.

"돈가스 무슨 맛일까?"

라며 묻고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인다.

상문이 대답한다.

"나도 몰라!"

그렇게 우린 돈가스 썰러 갔고,

혼인 신고만 하는 부부가 많다며 운을 뗀다.

급하게 단무지 세 개를 집어 입에 넣은 상문은 문을 박차고 가게 밖으로 나간다.

"아니 그렇게 책만 볼 거야? 바보!"

하고 소리치며 돌아 선다.


친구 만나 한참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어차피 너랑 결혼 생각이 없는 거야. 고시를 합격하면 너랑 헤어질 생각이었다고"

하면서 그 로스쿨이란 곳에 미리 다닌 남자 선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는 그 말에

"웅. 웅. 웅"

하고 대답만 하고 애꿎은 김치가락국수만 들이켜 소주 한잔을 곁들인다.

" 너 내년이면 서른이야. 우리 이제 반의 반도 안쳐주는 나이가 되는 거라고"

나는 또

"웅. 웅. 웅"

하고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온다.



그래도 상문이는 날 사랑해?


살이 쪄도, 밥 먹다가 뭐가 입에 묻어도 귀엽다며 닦아 주는 상문이다.

내가 회사에서 퍽 슬픈 일이 있어 표정이 안 좋으면 곧 알아채고 달래주는 상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암만 못생겼다 해도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해주는 상문이다.


주말 내내 돼지국밥집에서 일하고 녹초가 되어서

"어머니 저 이게 가볼게요"

하고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미래 시누이가 될 아가씨와 시어머니가 키득대며 내 험담을 한다.

"아이고, 저 엉덩이랑 얼굴은 무슨 애 여덟은 나은 거 같네"

"우리가 너무 희망고문 하는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은 다 아니라고 해도 상문이만 괜찮다고 하면 괜찮다.

그렇다.

상문이까지 돼지에 못생겼다고 하면 참 내 신세는 따분하다.

집에 오자마다 침대에 드러누워 나는 참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오늘은 하늘이 두쪽이나도 확답을 받아내고 말 테다.

"1분기까지 답 안 주면 나 그냥 선봐서 결혼할 테야. 좋은 사람 찾아"

내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담배만 피워대는 상문이다.


답답한 마음에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도

다시 돌아와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 아! 아! 올 가을엔 결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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