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45. Who done it?!
개인적으로 추리물은 소설보다 영화를 선호하는데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범인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기 전까지 다른 것에 집중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사건의 발단부터 범인이 밝혀지는 결말까지 짧은 러닝 타임 안에 끝낼 수 있어 소설보다 영화를 즐겨 찾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화 한 편으로 2편의 작품을 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추리 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골라봤다.
씨네아카이브 45. "Who done it?! (추리 영화 BEST 3)" 전문 읽기
<셜록 홈즈 (Sherlock Homes)>, 가이 리치, 2009년 개봉
<셜록 홈즈>는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 소설 『셜록 홈즈』를 원작으로 한 가이 리치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는 원작의 기본 뼈대만 가져오고 인물들의 캐릭터는 재구성했다. 이 때문에 평은 호불호가 크게 나뉘는 편. 그럼에도 영화는 5억 2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성공했는데 이후 가이 리치 감독과 주연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드 로가 다시 뭉쳐 속편 <셜록 홈즈: 그림자 게임>을 제작했고 3번째 속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작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탐정하면 떠올리는 대표적 인물인 ‘셜록 홈즈’는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통해 창조된 캐릭터. 방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에 묘사된 홈즈는 바이올린, 권투를 비롯한 각종 무술, 화학, 사진술에 능한 능력치 만렙으로 묘사되는데 직관으로 사건을 해결하던 기존의 탐정과 달리 ‘증거 분석에 입각한 최초의 과학수사 방식’을 선보이며 추리 영역의 차원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덕분에 이후의 추리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등 탐정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의 인물 설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을 만큼, 탐정 캐릭터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 역시 ‘에르큘 포와로’ 캐릭터가 셜록 홈즈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고, 『괴도 뤼팽』 시리즈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 역시 홈즈에 영감을 받아 역으로 홈즈와 정반대 캐릭터 ‘뤼팽’을 창조해내기도 했다.)
가이 리치 감독이 완성시킨 <셜록 홈즈>는 홈즈의 명석한 이미지보다 자유롭고 유쾌한 면을 부각했는데 증거를 하나하나 분석하며 날카로운 추리력을 선보이는 장면보다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이 많아 전통적인 후더닛 무비를 기대하고 본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영화에서는 묘사한 적 없던 인물의 다각적인 면모를 끌어내 미스터리 장르에 액션과 유머가 더해진 독창적인 분위기의 셜록 홈즈를 완성시켰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이 리치 감독의 개성이 셜록 홈즈라는 인물에 녹아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가이 리치 감독의 감각과 배우들의 케미, 한스 짐머의 음악까지 더해져 블록버스터 추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천재적인 추리 능력을 지닌 셜록 홈즈는 왓슨 박사와 함께 치밀하게 얽힌 미스터리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탐정이다. 그런 그에게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위협과 모험이 닥치는데 바로 다섯 명의 여인들이 종교의식의 제물로 끔찍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것. 홈즈와 왓슨 박사는 간발의 차로 마지막 희생자가 될 뻔한 여인을 구해내고 범인을 붙잡는다. 범인은 비밀 종교 집단 소속의 블랙우드로 그는 자신의 사형집행일이 다가오기 전 홈즈를 불러 자신의 죽음은 더 큰 어둠의 힘을 실현할 계획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홈즈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블랙우드의 경고는 현실로 나타나고 죽은 줄 알았던 블랙우드의 부활은 런던을 다시 공포로 몰아넣는다. 블랙우드를 저지하기 위해 홈즈와 왓슨 박사는 고대의 신비한 주술과 현대의 경이로운 신기술이 혼재한 세계로 뛰어들게 되는데 이 와중에 홈즈 앞에 헤어진 연인 아이린이 나타나 모호한 행동으로 셜록을 혼란에 빠뜨린다. 사건을 파헤치던 홈즈와 왓슨 박사는 단서들을 토대로 블랙우드의 부활에 감춰진 거대한 음모를 알아내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나선다.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캐릭터 설정의 현대화. ‘탐정’이라는 기본 뼈대를 제외하면 셜록도 왓슨 박사도 관객들이 예상했던 이미지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이는 가이 리치 감독이 처음부터 ‘셜록 홈즈를 액션히어로’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가이 리치가 그려낸 셜록은 번뜩이는 추리력에 싸움꾼 기질도 지닌 두뇌와 주먹을 모두 사용하는 탐정으로 캐릭터 설정만 바꿨을 뿐인데 지적인 추리 소설이라는 원작의 이미지가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로 탈바꿈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에 불호를 표한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으로도 단서를 발견하며 관객들이 탐정과 함께 범인을 추적에 나가는 과정에 몰입함으로써 재미를 유발하는 후더닛 장르의 장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긴 했다. 셜록의 번뜩이는 추리력보다 액션신이 영화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부분.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을 완벽하게 구현해 낸 배경과 의상, 능글맞은 홈즈를 잘 표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왓슨 박사를 연기한 주드 로의 앙상블 만큼은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케네스 브래너, 2017년 개봉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추리 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 원작으로 케네스 브래너가 연출과 함께 탐정 포와로 역을 맡아 연기했는데 출연진 역시 굉장히 화려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주디 덴치, 올리비아 콜먼, 미셸 파이퍼, 조니 뎁, 윌렘 대포, 페넬로페 크루즈 등 할리우드의 내노라하는 배우들이 모두 출연했다.
아가사 크리스티는 생전 80여 편의 추리 소설을 집필했는데 그녀의 작품은 10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40억 부 이상의 판매고를 세웠고 이는 성경과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기록이라고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허를 찌르는 반전이 돋보이는데 그중에서도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작가가 가장 좋아한 집필작이자 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주인공의 모험, 설렘, 음모, 죽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유려하게 풀어낸 미스터리 소설이자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작품으로 꼽힌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1932년 미국 공군 장교 찰스 린더버그의 아들이 납치 살해당한 실제 사건과 1928년 오리엔트 특급 열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자신을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녀는 첫 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을 끝낸 후 열차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마지막 사랑을 만나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작가에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그녀의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한 작품이기도 한 셈이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이미 많은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의외로 영화화된 경우는 드문데 아가사 크리스티가 자신의 의도와 다른 방식으로 재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작품이 영화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 역시 판권을 얻기 위해 5년 동안 공들인 노력의 결과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모든 작품을 관리하는 아가사 크리스티 리미티드로(Agatha Cristie Limited)부터 “작품의 본질은 바꾸지 않고 관객에게 사실적으로 스릴 넘치는 작품을 선사하겠다”라는 합의하에 얻어낸 결과라고. 영화는 원작의 탄탄한 스토리는 살리면서 활자 속 이국적인 풍광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영상으로 구현해 내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배우들의 연기로 생명력을 얻어 매혹적인 추리 스릴러를 완성시켰다.
세계적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는 사건 의뢰를 받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탑승한다. 폭설로 인해 열차가 멈춰 선 밤, 승객 한 명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포와로는 현장에 남겨진 단서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12명의 용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한 추리를 시작한다.
케네스 브래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돋보이는 점은 포와로의 강박증 적인 면모를 부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원작 소설에서도 묘사되지만 케네스 브래너는 이를 좀 더 유머러스하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소년이 아침 식사로 가져온 삶을 달걀 두 개의 높이가 다르다거나 주변 사람들의 비뚤어진 넥타이를 참지 못하고 지적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포와로가 ‘균형’에 집착하는 것은 그가 사건을 해결할 때 ‘정의의 저울을 균형 잡힌 평행 상대로 되돌려 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이는 “옮고 그름을 가리는 것에 중간은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추리 무대가 기차 밖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점 역시 원작과의 차이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케네스 브래너가 의도한 것이라고. 덕분에 12명의 용의자들은 기차 안과 밖, 설원 위의 고가교를 오가며 포와로의 심문을 받고, 그 과정에서 액션 신을 선보이기도 하는 등 영화는 고전 추리 소설의 기품과 21세기 오락 영화의 매력을 고루 갖춰 선보인다.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라이언 존슨, 2019년 개봉
<나이브스 아웃>은 원작 소설이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영화가 오리지널 콘텐츠다. 탐정 블랑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와 코난 도일의 셜록을 오마주한 캐릭터이며 스토리 구성부터 전개 방식까지 추리 소설과 유사한데 영화는 후더닛 장르의 재미를 제대로 살렸다는 호평과 함께 제77회 골든 글로브 뮤지컬 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물론 제92회 아카데미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며 2022년 속편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이 개봉했고, 2025년 3번째 속편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맨>이 개봉 예정에 있다.
영화는 화려한 캐스팅으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주목받았는데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부터 제이미 리 커티스, 돈 존슨, 크리스토퍼 플러머와 같은 전설적인 배우들과 아나 디 아르마스, 토니 콜레트, 마이클 섀넌 등이 참여하며 완벽한 캐스팅을 완성시켰다. 배우들은 작품에 참여한 이유로 “대본이 재미있는 것은 물론 캐릭터가 하나 같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히며 감독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였는데 연출을 맡은 라이언 존슨은 브루스 윌리스와 조셉 고든 래빗 주연의 타임슬립 장르 <루퍼>로 이미 스릴러 강자의 면모를 보여준 적이 있다. (나는 <루퍼>를 처음 보고 이해를 못 해서 다시 감상했지만...) 라이언 존슨 감독은 <나이브스 아웃>에서는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직접 맡아 작품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8천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날 숨진 채 발견된다. 자살로 보이는 그의 죽음을 두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경찰과 탐정 브누아 블랑이 파견 수사에 나서고, 할런의 가족 모두가 용의 선상에 오른다. 경찰과 블랑의 일대일 탐문이 시작되면서 할런의 생일 파티에 참석한 가족 구성원 모두 할런에게 원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그와 동시에 보이는 것과 다른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이브스 아웃>은 전통적인 추리 소설의 플롯을 따라가지만 동시에 후더닛 무비의 틀에서 벗어나는 과감함도 보여준다. 보통은 제한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탐정이 용의자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숨겨진 과거와 함께 결말에 가서야 범인의 윤곽이 드러난다면, <나이브스 아웃>은 범인이 누구인가에는 각별함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더닛 무비의 묘미인 극의 긴장감은 결말까지 유지하는데 심지어 범인의 윤곽이 초반에 밝혀지지만 관객들은 역으로 용의자가 탐정에게 꼬리를 밟힐까 마음 졸이게 만든다. 영화는 넓은 시선에서 보면 ‘선’에 대한 교훈도 전하고 있다. 할런의 간병인 마르타는 랜섬의 도움을 가장한 조종아래 블랑에게 쫓기는 결정적인 순간, 랜섬이 아닌 자신의 선택을 따르고 이는 그녀의 인생과 지금까지 그려진 사건의 진실을 뒤바꿔 놓는다. 이는 ‘인간은 언제든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선하게 자기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과의 대결은 언제나 선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트롬비 가족과 마르타의 관계에 빗대어 미국인들이 이민자들을 대하는 모순도 꼬집는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팬이기도 한 감독은 “아가사 크리스티는 정치적 입장이 선명한 작가는 아니었지만 등장인물의 묘사를 통해 당대 영국 사회의 인간형과 사회적 풍경을 충분히 그려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장르를 갖고 동일한 작업을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트럼프 시대 미국 사회상을 드러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롬비 가족은 마르타가 가족과 다름없다 말하지만, 정작 그녀의 고국이 어디인지는 모르고, 할란의 유언장이 공개된 후에는 할란의 대저택이 대대로 선조들이 살아온 가족들의 집이라 말하지만, 블랑은 이를 두고 할런이 파키스탄 사업가에게서 매입한 것이라 지적한다. 할런의 저택은 ‘미국’을 상징하는 장치로써 결국 ‘미국은 원주민인 인디언을 몰아내고 지은 나라’라는 것을 비꼬며, 트롬비 가족의 모순적인 모습을 통해 이주민들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위선을 드러낸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영화 뉴스레터 ciné-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