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아카이브 54. 픽사 장편 영화 BEST 6 Part. 1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는 순간이 더 많아진다. 올해 씨네아카이브를 되짚어보니 매년 소개했던 픽사 영화를 한 번도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준비했다. ‘픽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특집! 내가 픽사 작품에 애정을 쏟는 이유는 동심을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픽사의 이야기 속에는 어릴 적 한 번쯤 해봤을 상상력이 깃들어 있고, 아이들의 언어로 어른들의 동화를 그리며 건네는 메시지 속에는 위로와 응원이 담겨있는 느낌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전문 집단답게 픽사가 선보인 작품들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가 아이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소개했던 영화가 ‘위로와 응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상상력’에 초점을 맞춰 봤다. “맞아! 나도 어릴 때 저런 상상해 봤는데!” 싶은 작품들로.
씨네아카이브 54. "픽사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Part. 1)" 전문 읽기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 앤드류 스탠튼, 2003년 개봉
<니모를 찾아서>는 픽사의 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인간에게 납치된 아들 물고기 ‘니모’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빠 물고기 ‘말린’의 모험담을 그렸다. 영화는 21세기 초반 픽사의 전성기를 열어준 대표작이기도 한데 개봉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흥행 수익을 올리며 제76회 아카데미에서는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고, 골든글로브에서도 최우수작품상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흥행과 작품성 모두 인정받았다. (개봉 10년 후인 2013년에는 3D 버전으로 재개봉하기도 했다.)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어릴 적 경험과 부모가 되어 아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감독은 평소 아들과 자주 놀아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하지마, 안 돼, 조심해’ 등 조바심 나는 말만 하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모습에 아빠 물고기 ‘말린’의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고. 그래서인지 영화는 ‘아이의 성장’이 아닌 ‘부모로서 어른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감독은 자신의 아버지가 건넸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 중 하나는 아이들의 부모가 될 것이냐 혹은 친구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이고 둘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이 항상 가지고 있던 고민을 다룸으로써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가 바다 생태계를 다루고 있는 만큼 애니메니터들은 제작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수백 마리의 물고기를 연구하기 위해 아쿠아리움과 다이빙 답사 과정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에 수족관을 설치하고 물고기를 연구했다고 한다. 또한 어류학자를 초빙하여 내부 강연을 진행하며 제작에 참여한 모든 스텝들이 물고기 박사(?)가 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하니 픽사의 집념은 들을 때마다 놀랍다. <니모를 찾아서>가 호평받았던 부분 중 하나가 팔다리가 없는 동물에게 물속 세계에서의 움직임만으로 생명력과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인데 작품을 위해 기꺼이 물고기 박사 과정을 마다하지 않아야 가능한가 보다.
광대어 말린은 아내 코랄과 2세들의 부화를 기다리던 중 상어의 습격을 받고, 알을 보호하려던 아내는 상어의 뱃속으로 행방불명된다. 수 백 개의 알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에게 말린은 아내가 마음에 들어 했던 ‘니모’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습격 사건 이후 큰 바다를 두려워하게 된 말린은 한쪽 지느러미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니모를 과잉보호하며 키우고, 그러던 중 호기심 가득한 니모가 다이빙 중이던 열대어 수집가의 눈에 띄어 인간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말린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바다로 나가 아들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고, 말린의 모험에는 건망증이 심한 물고기 도리가 동행하게 된다. 과연 말린은 니모를 구해내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영화는 열대어를 수집하는 치과의사에게 납치된 니모의 탈출기와 아빠 물고기 말린의 모험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아들을 구하기 위한 떠난 모험 속에서 부모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깨닫게 된다는 아빠 물고기의 성장기가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동물에게 관객들의 고민을 투영해서 전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곳곳에 내재된 픽사 만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캐릭터와 요소들도 재미를 더한다. 말린과 도리를 덮친 상어들은 알고 보니 물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이고, 건망증을 앓고 있는 도리의 기억력은 결정적 순간 대체할 수 없는 무기가 되어 말린과 니모를 이어준다. 특히 말린이 모험 속에서 만나는 거북이, 날치 떼, 등 다양한 바다 생물을 묘사하는 방식은 종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하면서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을 그대로다.
마리's Clip: Robbie Williams - Beyond The Sea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OST도 함께 사랑받으며 오래도록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는 추천작마다 가장 좋았던 사운드 트랙을 한 곡씩 골라봤는데 <니모를 찾아서>는 ‘Beyond the Sea’를 골랐다. 개인적으로 우주만큼 신비로운 곳이 바다라고 생각하는데 로비 윌리암스의 곡을 들으면 아직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닷속에도 무시무시한 심해어가 아닌 알록달록 열대어들이 산호초를 누비며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 가끔인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영화 이야기.
시선기록장 @bonheur_archive
파리 사진집 <from Paris>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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