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할머니 1주기

by 준휘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 리스트를 만들던 20대 시절,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을 줄줄이 읊을 수 있게 됐다. 그중 으뜸은 바로 목련이었다. ‘봄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목련은 봄마다 흐드러지게 피었다. 햇볕이 쨍한 날, 나무에 맺힌 목련꽃을 보고 있노라면 그 꽃잎을 손에 한가득 담고 싶었다. 부드럽고, 포근해 보였다.



작년에는 토론토에서 참 예쁜 목련나무를 만났었다. 키가 무척 크고, 성긴 곳 없이 목련이 가득 피어 있던 나무였다. 타국에서 만나니 왠지 모르게 반가워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있던 그 나무를 보고 거인이 꽂아놓은 솜사탕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따가 소풍 갈 때쯤 들고 가려나. 그리고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할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고 말았다. 그때가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이 매정했고, 아름답게 핀 목련도 괜히 미워져 엉엉 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3일 동안 웃다가 울다가를 내리 반복하며 혼자만의 장례식을 치르고 할머니를 보내드렸다. 꿈에 그렇게 나와 달라고 애원했건만 한국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셨다. 미웠지만 또 너무도 할머니다우셨다. 할머니가 고집 한 번 부리시면 아무도 꺾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귀국하면 바로 찾아뵈야지 했는데, 사는 것이 너무 치열해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할머니 1주기가 다가왔고 때마침 나는 백수가 되어 아빠와 함께 찾아뵀다. 가는 길에 중간중간 아빠와 멈춰 서서 부안의 곳곳을 눈에 담았다. 십몇 년을 다녔던 곳인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곳들을 계속 만났다.



그중 수성당 구릉에 떼 지어 피어 있던 유채꽃밭에서 하섬을 보았다. 널찍한 서해 위에 작게 봉긋 솟아 있던섬. 할머니의 고향이었다. 한 번도 할머니께 들어본 적이 없어 몰랐다. 이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원불교에 귀속된 섬이라고 했다. 언덕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을 바라보다가 할머니가 생전에 고향 섬에 가신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마 없으셨을 거라고 아빠는 말했다. 할머니는 고향 섬이 그리우셨을까? 이제는 다녀오셨는지 여쭙고 싶었다. 언덕 아래 멀리서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꽃을 참 좋아하셨다. 그래서 대학 시절, 할머니 초상 작업을 할 때 할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작약꽃 자수를 한복에 가득 새겨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할머니 묘에 들르기 전에 화원에 들러 할머니 묘에 심을 꽃들을 샀다. 아빠는 내가 고르라고 해놓고선 막상 고르면 퇴짜를 놓았다. 이럴 거면 왜 고르라고 했냐며 결국 성을 냈다. 뻘쭘했는지 아빠는 마지막 선택권을 내게 줬고 나는 작약이 떠올라 냉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할머니 묘에 도착하니 아빠가 그동안 성글게 심어둔 꽃들이 눈에 보였다. 다 시든 튤립, 갈색으로 변한 들국화 같은 것들, 그리고 소박한 꽃잔디 등 일관성은 없지만 예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찾아올 때마다 하나씩 심어둔 것이라 했다. 무슨 마음으로 꽃을 심었을까. 어쩌면 꽃 하나하나가 아빠의 죄책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동백나무 아래 숨겨둔 꽃삽을 들고 와 내 할머니 묘 앞에 하나씩 심어드렸다. 아빠가 고른 수국과 내가 고른 작약이 여름 내내 예쁘게 피어 있는 걸 상상했다.



할머니 묘 위에 자리 잡은 고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의 상까지 함께 차려드리고 아빠와 절을 올렸다. 그러곤 앞에 자리를 펴고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가 안 계시니 부안에 구멍이 크게 하나 뚫린 것처럼 어딜 가든 허전하다고.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뒤에서 할머니가 듣고 계신 듯했다. 만약 할머니라면 무슨 말을 해주셨을까?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 묘를 바라보고 인사를 올리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진 모르겠는데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러다 할머니 묘 근처를 날아다니는 노란 나비들이 눈에 들어왔다. 봄바람 사이를 사부작사부작 잘도 날아다녔다. 왠지는 몰라도 그걸 보고 나니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인사를 드리고는 서울로 발을 뗄 수 있었다.



앞으로 매년 목련이 필 때가 되면 이제는 자연스레 할머니가 떠오를 것 같다. 토론토에서 할머니를 보내드렸을 때, 왠지 모르게 할머니가 목련을 징검다리 삼아 총총 가뿐한 몸짓으로 건너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일까. 그냥, 할머니가 목련이 필 때 돌아가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땅에서 봐도 이리 예쁜데 하늘에서 보면 또 얼마나 예쁘겠나 싶어서 말이다. 할머니의 그 특유의 말투로 “곱네.”라고 읊조리시겠지. 어쩌면 내가 목련을 좋아했던 이유는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포근하고 나긋한 그 모습에서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듯 목련을 좋아했던 것이 아닐까. 봄이 끝나고 꽃잎이 떨어져도 내 마음에 자리 잡은 이 목련꽃은 영원히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그렇게, 그리운 모습으로 내게 봄을 일러주면 좋겠다. 그 꽃이 있는 그곳은 늘 그리운 바닷바람이 이는 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