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티안 / 방비엥 / 루앙프라방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라오스는 동남아 여러 국가들 중에서 최빈국이었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한 날, 상당히 많이 놀랐다. 한 국가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규모나 인프라면에서 아주 많이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무분별한 개발의 손길이 아직 미치지 않았고, 그런 면모를 보여주는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은 아주 매력적이었다.
라오스 여행 start!
방비엥은 튜빙
튜빙을 안 해봤다면 방비엥에 다녀온 게 아니다. 튜빙은 튜브를 타고 방비엥에 흐르는 남쏭강에 몸을 맡기는
액티비티. 뭐 튜브 타고 떠내려가는 게 다라면 이게 그렇게까지 재미있을 리가 있을까만은, 한 가지 양념이 있다. 바로 강을 따라 즐비한 바 투어까지 할 수 있다는 것. 튜브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바에서 호객행위를 한다. 튜빙을 하던 사람이 그 바에 가고 싶다면 호객꾼이 던져주는 밧줄을 받으면 된다. 그러면 호객꾼이 그 사람을 끌어당기고 뭍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튜브 파킹은 서비스!
카약을 타고 가던 우리가 이 장면을 처음 목격했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튜빙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반쯤 취해있었고, 호객꾼이 던지는 줄을 놓치기도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지- 낮부터 취해야 방비엥이지, 암.
훈민정음
우리가 방비엥을 방문한 시기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라오스에 한국사람이 넘쳐날 때였다. 그래서인지 방비엥 가게들에는 한국말이 넘쳐났다. 여기 맛있어요. 여기 투어 잘해요. 이 집 사장님 친절해요 등등. 낯섦을 찾아 타국에 왔건만 또 익숙한 한국말이 도처에 널려있는 건 나에겐 좀 공해였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센스 있는 문구들은 웃을 수밖에 없었는데, 가령 아래 사진과 같은 상황이다. 그래요 여러분, 우리 제발 깎지 맙시다. 싸게 판다잖아요.
눈앞의 수묵화
방비엥의 최고 매력은 바로 수묵화 같은 풍경. 우리가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는 양면이 통창이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수묵화가 바로 펼쳐졌다. 비 오는 걸 싫어하는 편인데 방비엥은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운치가 있었다.
블루라군으로 가는 날도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며 흐린 날이었다. 수묵화를 보며 달리다 보면 마을 아이들이 낚시를 하고 동네 사람들이 벼논에 잡초를 속아내는 걸 볼 수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순박하고 평온해 보였다. 이 사람들은 모르겠지? 얼마나 멋진 풍경 속에 살고 있는 건지.
블루라군은 블루였나
내가 본 사진 속의 블루라군은 분명 에메랄드 빛이었건만. 우기의 블루라군은 칙칙하기 그지없다. 역시 여행은 예측불허다. 그래도 어쩌랴 이왕 온 거 즐겨야지. 많은 사람들이 블루라군의 유일한 다이빙대, 나무 위에서 점프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난 필리핀 카모테스 11m 절벽에서도 점프한 여자니까. 뭐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하고 올라갔는데, 세상에- 생각보다 높다. 7-8m 정도?! 예전에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다이빙대나 번지점프대에 선 연예인들이 벌벌 떨거나 우는 걸 보면서 '오버하고 있네' 했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의 리액션은 진실이었다는 것을... 이게 진짜 생각보다 많이 무섭다.
필리핀 카모테스 섬에서 다이빙을 할 때도 같은 마음이었는데, 블루라군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프리카에 가면 빅토리아폴에서 110m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데, 이것도 못 뛰면 난 그것도 못할 거야' 왜 번지점프를 안 할 생각은 안 했는지. 나도 참 이상한 오기가 있다.
여하튼 그래서 블루라군 다이빙도 성공했다는 거?! 하지만 무서워하면서 뛰기 때문에 전혀 멋있지가 않다. 그래 블루라군에 다시 갈 수 있다면 건기에 블루라군이 이쁠 때 가서 모냥 빠지는 다이빙은 하지 않고 우아하게 수영만 즐기다 올 테다.
방비엥의 밤
방비엥하면 또 클럽이지. 이 작은 시골마을에 유명한 클럽은 딱 하나. 바로 '사쿠라 바'였다. 밤이면 방비엥에 있는 젊은이들은 다 이 클럽으로 모여들었는데, 클럽의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은 바로 한국인들이었다. '뱅뱅뱅' 하는 빅뱅의 노래가 나올 때마다 전 세계는 하나 되어 뱅뱅뱅을 외쳤다. 30대 후반 아주미가 보기에 아주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 우리나라 애들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 놀아'라며 이 분야의 자부심을 세워주었달까. 독특하게도 사쿠라 바는 밤 10시가 되면 문을 닫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조용한 시골 동네 사람들을 배려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대신 마을 외곽에 있는 '정글 파티'라는 클럽으로 옮겨갈 수가 있었다. 역시나 호객꾼 들은 트럭까지 떡하니 준비해두었다. 한창 물이 오른 10시, 우리도 이대로 집에 갈 순 없었다. 정글 파티에 도착했더니 역시나 사쿠라바에 있었던 사람의 7,80%는 그대로 정글 파티로 왔다. 광란의 밤이 다시 시작되었다.
살아보니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참 중요하다. 클럽에서 노는 건 20대가 제일 예쁠 때다. 예쁜 그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괜히 흐뭇했다. 열심히 놀아 그대들!
꽝시 폭포는 정말 푸르렀나 [블루라군은 블루였나 2편]
망했다.
꽝시 폭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둘은 눈이 마주쳤다. 그 푸르고 신비한, 사진 속의 꽝시 폭포가 정말 여기란 말인가. 우기의 꽝시 폭포는 참혹했다. 수량이 많아서 물보라는 심하게 날리고, 물은 흙탕물이었다. 곱게 수영복도 챙겨 입고 왔건만. 폭포에 들어갔다간 강하류에서 발견될 판이었다.
망연자실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다들 비행기를 타고 타국에서 날아온 관광객들이었으니 실망감이 오죽했을까. 남자의 뒷모습이 어찌나 씁쓸하든지. 울지 마. 나도 눈물 나잖아. 다음엔 이상과 현실의 괴리 편을 하나 따로 만들어야겠다.
루앙프라방의 분위기
프랑스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루앙프라방 시내는 작은 유럽처럼 아기자기 예쁜 건물이 많았다. 사람도 많지 않아서 어딜 가도 한적하고 조용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예쁜 사원이라는 왓씨엥통도 둘러보고, 푸시산 [산이라고 하기엔 언덕에 가까운...] 정상에 올라 루앙프라방도 내려다보고, 정처 없이 쏘다니다 강이 보이는 카페를 만나면 들어가서 맥주를 한잔하기도 했다.
남칸강옆에 유토피아라는 바가 있었는데, 거긴 정말 이름대로 유토피아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강을 보며 누워있었다. 대부분이 좌식 테이블이라 눕거나 앉아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테이블마다 촛불은 일렁이고 남칸강은 반짝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루앙프라방에 간다면 유토피아에 하루 종일 누워있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다.
천 원의 행복
한적하고 조용한 루앙프라방 거리는 밤이 되면 시장이 들어서며 북적이기 시작한다. 기념품, 골동품, 옷, 액세서리, 술, 패브릭... 구경하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한 시간 정도는 훌쩍 지나가버린다. 물론 조는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그렇게 열심히 구경하냐며 핀잔을 주지만, 재미있는 걸 어떡해. 결국 라오스 전통문양이 가미된 원피스를 사고야 말았다. 만원인데, 사야지! 그렇게 쇼핑을 마치고 나면 루앙프라방 여행객 전부가 모이는 만 낍 뷔페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만 낍은 한국돈으로 천 원 남짓한 금액, 천 원짜리 뷔페인셈이다. 엄청나게 많은 가짓수의 음식이 차려져 있는데 '이 모든 걸 천 원에 즐기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라오스 물가가 얼마나 쌌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썰어놓은 모둠 과일도 만 낍, 밥도 만 낍,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3천 원을 넘기 힘든 것이다. 글을 쓰는 지금 나도 새삼 다시 놀라고 있다. 만 낍 뷔페는 잘 살아있으려나-
루앙프라방의 탁발
라오스는 국민의 70%가 불교를 믿는, 불교가 색채가 강한 나라였다. 그래서인지 루앙프라방에서 매일 새벽 이뤄지는 탁발의식이 유명했는데, 우리도 한번 참여해 보기로 했다.
먹을 것을 한 바구니 준비해놓고, 스님들이 줄지어 지나갈 때마다 조금씩 보시를 했다. 라오스 사람들이 왜 탁발에 열심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음식이 줄어들 때마다 내 죄도 조금씩 줄어드는 기분이었달까. 하루를 시작하는 아주 기분 좋은 의식이었다.
아침 시장
탁발의식을 끝내고 아침 시장을 찾았다. 관광객들을 주로 상대하는 나이트마켓이 기념품을 위주로 판다면, 아침 시장은 현지인들이 필요로 하는 식재료가 주였다. 형형색색 예쁜 동남아의 과일 채소들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볕 짚에 묶인 두꺼비도 신기하고, 메콩강에서 잡아 올린 팔뚝만 한 물고기들도 신기했다. 역시 시장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라오스에서도 시장에 왔으면 뭐라도 먹어야지! 유명한 국숫집이 있어서 한 그릇 시켜봤는데, 정말 뜨끈하고 진한 국물이 너무 맛있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설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