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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근면한 기록의 날들
by 이안 Dec 04. 2017

33. 스투키 분갈이를 하며

뭔가를 키워내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찬 바람에 색이 바랜 채 잔뜩 오그라든 낙엽들은 죽어있는 곤충들 같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바싹 말라 오그라든 잎사귀들이 곤충의 더듬이도 되었다가 다리도 되었다가, 그렇게 진짜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집에 들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스투키 화분의 분갈이를 했다. 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꽤 커다란 시멘트 화분에 있던 스투키의 본체에서 어마어마한 새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처음 새순이 쏙, 하고 올라올 때는 생명의 경이마저 느끼고 귀엽다를 연발했었건만 새순이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열개가 되면서는 숫자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새순은 곧 화분 가득하게 올라왔고 웃자라서 길게만 자랐다. 미친년 머리처럼 산발이 된 스투키 화분을 한동안 외면했다. 사람도 짐승도 식물도 귀여울 때나 인기가 많은 법이다.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스투키 화분의 본체 하나가 시들시들 말라가기 시작했다. 노랗게 짓무르기 시작한 것을 그대로 두었더니 잔뜩 쪼그라들어 죽어버렸다. 새순이 너무 많아서 본체가 죽어나가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과습때문인지 아니면 벌레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분갈이흙과 마세토와 화분을 사들였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혼자서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커다란 시멘트 화분을 눕혀놓고 씨름을 했다. 뿌리가 깊지 않아서 금방 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꿈쩍도 안 한다. 누가 스투키 분갈이 쉽다고 했니!!!!


파뿌리 아님. 새순이 저게 다가 아님.


손으로 파내고 흔들어도 보고 숟가락으로도 파냈지만 화분에서 스투키를 분리해낼 수가 없다. 그러다가 가운데 있던 본체 2개도 다 물러서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상태면 다른 애들 뿌리도 다 안 좋을 것 같다. 엄마가 와서 함께 스투키를 뽑아냈다. 한 명은 화분 잡고 한 명은 스투키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더니 그제야 나오더라. 작은 화분이 아닌 거실용 큰 화분일 경우 한 사람이 분갈이 못할 것 같다. 시멘트 화분 자체가 어찌나 무겁던지.


뽑아내고 보니 그 사이 길게 웃자란 새순들이 뿌리가 얽히고설켜 난리가 났더라. 흙을 살살 털어 본체와 새순을 분리해냈다. 역시 본체들의 뿌리도 이미 몇 개가 노랗게 뜨기 시작했다. 괜찮은 애들만 가려서 기존의 화분에 다시 심고 노랗게 뜨기 시작한 뿌리들은 커터칼로 잘라서 그늘에 말려두기로 했다. 며칠 후에 새 화분에 골라낸 새순들과 함께 심을 예정이다. 새순들도 너무 많아서 작거나 너무 길게 자란 애들은 똑똑 분질러서 버렸다. 처음에는 살아있는 생명인데 다 살려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 뽑아놓고 보니 너무 많아 징그럽다. 역시 난 식물 키우는 취미는 없나 보다. 


스투키를 사 온 이유는 식물 같지 않은 외모 때문이었다. 긴 몽둥이 같은 것이 꽃을 피워내는 것도 아니고(살 때만 해도 스투키는 꽃이 없는 줄 알았다) 잎사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대로 놔두면 알아서 굳건하게 서서 공기 속의 먼지들을 정화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주면 된다. 하지만 이 애들은 죽어 있는 애들이 아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서 새순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작은 화분에도 새순이 몇 개씩이나 자라 나왔다. 살아있는 증거여서 고맙긴 해도 살아있다는 것은 역시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일들이 많은 것이다. 내가 달리 선인장도 죽였겠는가. 물 줄 때 조심한다고 줬건만 한 달에 한 번씩 줄 때마다 물을 너무 많이 줬나. 분갈이할 때 보니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화분의 흙이 마르지 않았더라. 한 번에 줄 때 물 양이 많았던가. 


본체 3개를 버리고 나머지 5개만 심어서 기존의 화분을 마무리했다. 분갈이할 것들은 꾸덕꾸덕 잘 말려서 새 화분에 심어야지. 어쩌면 다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분갈이는 처음 해본 데다가 화분 위에 흙을 어떻게 덮는지도 잘 몰라서 내 맘대로 했으니 살고 죽는 것도 어쩌면 다 하늘의 뜻이겠지, 라는 무심한 생각을 한다. 나라는 사람은 나하나도 책임지기 버거워하는데 누굴 책임질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일 년 내내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에 한 번 물만 주다가 분갈이 한 번 하고 책임 운운하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스투키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구나. 


간신히 분갈이를 마친 기존의 화분.



♬ BGM : 김목인 '콜라보 씨의 외출'

'오늘은 그냥 햇볕도 쬘 겸 걷기로 한다.'

어쩐지 김목인의 목은 木일 것 같아서 선곡해봤다. (나름 유머다)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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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밍에 따라 의미도 바뀐다 |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영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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