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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Dec 04. 2017

스투키 분갈이를 하며

뭔가를 키워내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

찬 바람에 색이 바랜 채 잔뜩 오그라든 낙엽들은 죽어있는 곤충들 같아서 걸어 다닐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다. 바싹 말라 오그라든 잎사귀들이 곤충의 더듬이도 되었다가 다리도 되었다가, 그렇게 진짜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집에 들인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스투키 화분의 분갈이를 했다. 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꽤 커다란 시멘트 화분에 있던 스투키의 본체에서 어마어마한 새순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처음 새순이 쏙, 하고 올라올 때는 생명의 경이마저 느끼고 귀엽다를 연발했었건만 새순이 하나가 되고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열개가 되면서는 숫자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새순은 곧 화분 가득하게 올라왔고 웃자라서 길게만 자랐다. 미친년 머리처럼 산발이 된 스투키 화분을 한동안 외면했다. 사람도 짐승도 식물도 귀여울 때나 인기가 많은 법이다.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스투키 화분의 본체 하나가 시들시들 말라가기 시작했다. 노랗게 짓무르기 시작한 것을 그대로 두었더니 잔뜩 쪼그라들어 죽어버렸다. 새순이 너무 많아서 본체가 죽어나가기 시작한 건지 아니면 과습때문인지 아니면 벌레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국 분갈이흙과 마세토와 화분을 사들였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혼자서는 역시 역부족이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커다란 시멘트 화분을 눕혀놓고 씨름을 했다. 뿌리가 깊지 않아서 금방 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꿈쩍도 안 한다. 누가 스투키 분갈이 쉽다고 했니!!!!


파뿌리 아님. 새순이 저게 다가 아님.


손으로 파내고 흔들어도 보고 숟가락으로도 파냈지만 화분에서 스투키를 분리해낼 수가 없다. 그러다가 가운데 있던 본체 2개도 다 물러서 흔들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상태면 다른 애들 뿌리도 다 안 좋을 것 같다. 엄마가 와서 함께 스투키를 뽑아냈다. 한 명은 화분 잡고 한 명은 스투키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더니 그제야 나오더라. 작은 화분이 아닌 거실용 큰 화분일 경우 한 사람이 분갈이 못할 것 같다. 시멘트 화분 자체가 어찌나 무겁던지.


뽑아내고 보니 그 사이 길게 웃자란 새순들이 뿌리가 얽히고설켜 난리가 났더라. 흙을 살살 털어 본체와 새순을 분리해냈다. 역시 본체들의 뿌리도 이미 몇 개가 노랗게 뜨기 시작했다. 괜찮은 애들만 가려서 기존의 화분에 다시 심고 노랗게 뜨기 시작한 뿌리들은 커터칼로 잘라서 그늘에 말려두기로 했다. 며칠 후에 새 화분에 골라낸 새순들과 함께 심을 예정이다. 새순들도 너무 많아서 작거나 너무 길게 자란 애들은 똑똑 분질러서 버렸다. 처음에는 살아있는 생명인데 다 살려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 뽑아놓고 보니 너무 많아 징그럽다. 역시 난 식물 키우는 취미는 없나 보다.


스투키를 사 온 이유는 식물 같지 않은 외모 때문이었다. 긴 몽둥이 같은 것이 꽃을 피워내는 것도 아니고(살 때만 해도 스투키는 꽃이 없는 줄 알았다) 잎사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대로 놔두면 알아서 굳건하게 서서 공기 속의 먼지들을 정화해준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주면 된다. 하지만 이 애들은 죽어 있는 애들이 아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서 새순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작은 화분에도 새순이 몇 개씩이나 자라 나왔다. 살아있는 증거여서 고맙긴 해도 살아있다는 것은 역시 손이 많이 가고 귀찮은 일들이 많은 것이다. 내가 달리 선인장도 죽였겠는가. 물 줄 때 조심한다고 줬건만 한 달에 한 번씩 줄 때마다 물을 너무 많이 줬나. 분갈이할 때 보니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화분의 흙이 마르지 않았더라. 한 번에 줄 때 물 양이 많았던가.


본체 3개를 버리고 나머지 5개만 심어서 기존의 화분을 마무리했다. 분갈이할 것들은 꾸덕꾸덕 잘 말려서 새 화분에 심어야지. 어쩌면 다 죽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분갈이는 처음 해본 데다가 화분 위에 흙을 어떻게 덮는지도 잘 몰라서 내 맘대로 했으니 살고 죽는 것도 어쩌면 다 하늘의 뜻이겠지, 라는 무심한 생각을 한다. 나라는 사람은 나하나도 책임지기 버거워하는데 누굴 책임질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일 년 내내 아무 생각 없이 한 달에 한 번 물만 주다가 분갈이 한 번 하고 책임 운운하는 것도 우습다.


하지만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스투키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구나.


간신히 분갈이를 마친 기존의 화분.



♬ BGM : 김목인 '콜라보 씨의 외출'

'오늘은 그냥 햇볕도 쬘 겸 걷기로 한다.'

어쩐지 김목인의 목은 木일 것 같아서 선곡해봤다. (나름 유머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계속 노출도가 높아서 덧붙입니다. 정작 스투키 분갈이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어서 죄송할 따름이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을 얘기해보자면 (2018년 3월 22일) 분갈이를 마친 기존의 화분에선 놀랍게도 다시 새순이 돋았습니다. 이제 그만 나와도 되는데... 물도 전혀 주지 않았건만, 새순이 나왔어요. 아직 한 개만 나와서 지난번처럼 우후죽순으로 나오게 되면 그냥 뽑아버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물꽂이를 했던 녀석들은 대부분 다 물러서 죽었고 (이건 자를 때 무른 부분을 남겨두고 잘랐던지 아니면 가위나 칼을 소독하지 않아서 그런 거 같아요) 그중에서 단 두 개만 살아서 아직도 물꽂이 중입니다. 이미 뿌리가 제법 많이 자라나서.. 조만간 기존의 화분에 심어 줄 예정입니다.


기다란 새순들도 따로 화분을 만들어 심어줬는데... 볼품은 없지만 여전히 잘 살아있습니다. 하하. 스투키는 번거롭기는 해도 저 같은 사람도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으니 분갈이가 그리 어렵진 않네요..


**덧붙이는 글 (2018년 12월 5일)

노보정. 현재 분갈이한 스투키 상황


분갈이한 스투키는 쭉 자라나다가 산발한 머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_-;; 5개만 남았던 본체에도 다시 새순이 쭉쭉 자라나 버렸어요. 다시 분갈이 할 생각이 없어서 뽑아내야지 하다가 그냥 방치했더니 이지경입니다.


겨울철 스투키는 물을 줄 필요가 없어요. 과습이 문제인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물 줄 필요가 없는 겨울엔 관리가 더 쉬운 편이죠. 그나저나 봄되면 다시 정리를 해줘야 할 듯.... ㅠㅠ




걷기로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잡지에서 발견한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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