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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Dec 25. 2017

크리스마에는.

크리스마를 보내며 몇 가지 단상들

1년 가까이 노란색 머리였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성탄절을 앞두고 자연갈색으로 염색했다. 노란색에 염색을 하니 새까맣게 염색이 되어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아서. 영 어색하기만 한데 곧 익숙해지겠지. 크리스마스 아침엔 교회에 가서 성탄 발표회를 즐겁게 보았다. 유치부부터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몇 달간 갈고닦은 율동과 악기 연주, 뮤지컬까지.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따뜻해져서 돌아와 가족과 함께 돈가스를 구워 먹고 TV를 보았다. 그리고 동생이 사 온 캔버스에 명화 그리기를 했다. 오랜만에 잡아 본 붓으로 물감을 콕콕 찍어 그림을 그려나갔다. 대학교 시절도 기억나고 한 교수가 해준 말도 떠올랐다. "열정은 과한데 기본이 부족하다"


지난번 SNS에 연동되어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던 스투키 분갈이는 실패에 가깝다. 모체들은 금방 물러져서 2~3개를 더 뽑아내고 지금은 3개밖에 남지 않았고 새순들을 따로 분갈이해두었는데 그것도 살지 모르겠다. 나머지 무른 부분을 칼로 잘라내고 물꽂이를 했던 모체들도 몇 개가 죽어 나가고 지금은 두 개로 나누어 꽂아둔 것들만 있다. 언제 뿌리를 내릴지 모른다. 예전에 선인장을 죽이고 했던 다짐을 다시 한다. "다시는 식물 키우지 말아야지"


12월 중순엔 배가 단단히 탈이 나서 온 몸이 아팠다. 두통과 안구통까지 오고 등까지 아팠다가 위가 단단해지고 음식물 소화를 못하고 끙끙 앓다가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다녔다. 이미 먹고 있는 양약들이 있어서 더 이상 양약을 먹기가 싫어서 한의원에 간 거였다. 맥을 짚더니 심장이 약하다는 이야기를 여기서도 한다. 위가 아파서 갔는데 심장 관리 잘하라는 말을 들었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따뜻한 방안 의자에 앉아 손과 다리 위주로 침을 맞는다. 누워서 배를 까거나 옷을 벗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다른 치료 없이 침만 1시간 맞는다. 30분마다 한 번씩 침을 다시 놓는다. 이름이 꽤나 알려져서 멀리서도 오고 대부분 몇 년간 다닌 할머니들이 많다. 의자에 앉아있으면 서로가 다 아는 사이들이다. 할머니들 사랑방이라서 가장 어린 나만 빼곤 서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할머니 한 분이 젊은 사람이 할머니들 시끄럽다고 하겠다고 걱정하셨는데 내가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사실 할머니들이 무척 시끄러웠는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며칠 동안 다니면서 할머니들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살포시 잠들 때가 많았다. 그중에 빵 터졌던 말은 "요즘 젊은애들 하곤 놀지 못하겠어" 7~80대 할머니들이 말하는 젊은애들은 60대였다.


다음 주에는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이들을 한 해가 가기 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은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는 거다. 여기저기 괜스레 얼굴을 들이밀어야 하는 약속들이 사라지고 친구들도 멀어지지만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은 오랜만에 봐도 즐겁고 편안하다. 올 크리스마스는 별일 없이 이렇게 흘러간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트리의 전구도 없지만 (테이블용 작은 트리를 해놨지만 전구를 켜지 않는다. 왜 해놨지?) 별일 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감사함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요즘 내 아침 기도는 오늘 하루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아무 일 없이 별일 없이, Merry Christmas!




 BGM : Benni Sings & Clara Hill-On Christmas Morning

오늘 하루 종일 흥얼거린 음악이다. 'on christmas morning wake up with a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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