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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Nov 19. 2018

오늘, 하루.

어떤 이름으로 불릴까...

1.

오랫동안 앓고 있는 코감기가 물러갈 기미가 보인다. 성실하게 병원을 다니고 꾸준하게 약을 먹고 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성실하게 꾸준하게' 이 두 가지엔 못 당한다. 가래가 들끓고 축농증이 생겨 코가 뒤로 넘어가서 고생을 했는데 자려고 누우면 넘어가는 코 때문에 목이 가렵고 기침이 나서 미치겠는 증상이다. 그래도 나는 그걸 못 뱉어냈다. 평소에 거리에 가래침 뱉는 사람을 혐오하는데 그게 뭐가 되었든 잘 삼키고 삭히는 편인 나는.... 미련 맞게 내 몸에서 생겨난 염증 덩어리들도 꿀떡꿀떡 삼켜서 병을 오랫동안 키웠다. 어떤 막장 작가가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말을 해서 유명해졌더랬는데 나도 그 판이다.


대신 항생제라면 자신 있게 '네!' 할 정도로 나는 한 달 넘도록 항생제에 절여져서 성실하게 꾸준하게 살아냈다. 덕분에 미련 맞게 꿀떡꿀떡 넘겼어도 내 몸안의 염증들은 대부분(끝내 사라지지 않을 녀석들은 남겠지) 사라지고 있다. 자꾸 몸이 유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번에는 잘 넘겼지만 어쨌든 늙어가고 있고 그건 몸 어디선가 자꾸만 탈이 난다는 뜻이니까.


2.

주말에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회에 갔다. 그는 유명한 인디밴드(인디라고 하기엔 이미 메이저인)의 보컬이었고 밴드를 끝내고 인생 2막을 작가로 시작하고 있었다. 사실 그의 음악을 듣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의 글을 좋아해서 그동안 냈던 책들을 매번 사서 읽었다. 사인회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 본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버스 한 번으로 갈 수 있는 가까운 시내에서 하는 터라 서점도 구경할 겸 간 거였다. 너무 일찍 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쭈뼛거리며 가서 받아 든 대기 번호표가 197번이었다.


사실 맛집도 줄 서서 안 먹는 내가 몇 시간을 기다려 사인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오므라이스를 먹고 근처 스벅에서 라떼를 마시며 그의 신간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얼굴이라도 볼까 싶어 찾아가 보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블랙으로. 마스크까지 블랙으로 가리고 있어서 사진을 찍어봐도 저승사자처럼 나왔다. 역시 그다웠다. 나중에 보니 서점 문 닫을 시간까지 사인을 하다가 간 것도 모자라 블로그에 사인을 못 받고 돌아간 사람들을 위해 글을 올려뒀다. 그것도 그다웠다. 한 작가의 글들을 읽는 건 어쩐지 그 작가를 알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마치 알고 있는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술술 읽히는 그의 신간을 아끼면서 읽는다.


3.

스타벅스에 앉아 책을 읽는데 누군가의 닉네임을 부르는 소리가 난다.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는데 닉네임이 귀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날들님 카라멜 마키아또 나왔습니다." (사실 음료 이름은 잘 모르겠다. 안 들려서. 카라멜 마키아또는 내가 요즘 즐기는 편이라.. 생각나서) 고개를 들어 얼핏 보니 사십 대 초중반의 여성 분이었다.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발음해서 불러주니 스타벅스 매장 안이 아름다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어 순간의 마법을 선물하는 일. 스타벅스의 콜 마이네임.


4.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울림이 커서 유튜브로 퀸이나 프레디 머큐리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프레디 머큐리는 마지막까지 삶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했던 사람이다. 삶을 사랑한 사람, 그렇게 노래를 했던 사람. 병이 들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살이 빠지고 한쪽 눈은 노랗게 변하고 걷는 것조차 불편해졌을 때조차 그는 열정적으로 음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피하지 않았다.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을 향한 세간의 루머에 대응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만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프레디 머큐리. 삶을 대하는 태도로 근래 내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프레디 머큐리와 내 사랑의 모드 루이스다. 자신을 삼키고 짓누를 수 있는 고통은 누구에게라도 닥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인 것이다.


5.

요즘 기사와 뉴스 보기가 겁이 난다. 너무 무서운 일들만 일어난다.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발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제발 함께 살면 안되나요. 같은 문구를 써서 걸고 다니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어떤 기사들은 읽는 것만으로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서 읽을 수가 없다. 한 달에도 몇 건씩 청원에 동의를 하고 나면 허탈하다. 커다란 바위에 날달걀을 하나 던진 기분이다. 이럴때면 영화 '더기버'의 고통없이 모두가 행복한 '커뮤니티'가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고통을 통해 프레디와 모드는 삶을 사랑하고 예술을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겐 지옥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


모드의 사랑스러운 고양이




♬BGM : 아이유 '이름에게'

https://youtu.be/5TOSq5QhzI0

감동적이었던 MMA 공연(그녀의 공연에 가고 싶다!ㅠ^ㅠ)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 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우리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자. 외롭지 않게. 아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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