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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13. 2019

오늘의 단상들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는다.

ㅡ 단상 하나.

첫 직장에서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시절. 모 여자 연예인 영상이 유포되어 사회적으로 난리가 났다. 내가 다니던 기획실 팀은 따로 사무실을 내어 여자 10명 이서만 근무했고 나와 동기를 제외한 선배 언니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 여자 연예인 유출된 영상을 찾느라 혈안이 되었다. 결국 화질이 매우 구린 영상을 찾아내어 우리까지 불러서 함께 그 영상을 시청했다. 말단 신입이었던 나는 매우 구린 화질 속 여자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서 왜 같이 이런 영상을 봐야 하는지 몰랐고 기분이 매우 구려졌다. 하지만 아무 소리 하지 못했다. 


ㅡ 단상 두울.

얼마 전 만난 친구 남편은 사십 대 중반이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다'라는 주제로 얘기가 계속되던 중 그 친구가 말하길, 남편의 직장 동료 단톡 방에 한 사람이 빈번하게 야동을 공유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미친, 그 나이에도 그런 짓을 한단 말얏!"라고 외쳤지만 이 말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다. 그 나이에'도'라는 표현에는 그럼 그 나이 말고 젊고 어렸을 적에는 해도 괜찮은 짓인가? 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공유하는 포르노 영상에 몰카가 없었을까 싶다. 혹은 그 영상이 몰카인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있었을까 싶다. 그날의 일은 남자들은 다 똑같아. 한 번도 그 '영상'을 보지 않는 남자는 없어.라는 식의 말로 여자들부터가 남자들에 대한 체념적인 관대한 시선이 존재한다는 의문이 남았다. 


ㅡ 단상 세엣.

타임라인을 훑어보다가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 피디가 자신의 예능 프로그램에 도박으로 한동안 자숙했던 연예인을 섭외하면서 했던 인터뷰. 죄인이었던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었고 이 프로그램에서 '자유'롭게 '놀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그 연예인에게 관대하고 싶었는지 몰라도 그런 관대한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말 그대로 스티그마가 새겨진 채 죄인이 아님에도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여자 연예인들도 수두룩 하다. 좋아하는 동물 채널의 진행자는 라이브 방송에서 강아지와 산책 시 누군가 시비 걸 때의 대처법에 대해 말하던 중 여자 산책자들은 그렇게 했다가는 해코지당한다고 말하니 30대 정도의 일정 나이 때가 되면 문화센터에 등록이라도 해서 매너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며 말끝을 흐렸다. 하기사 그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정상'적인 남자들조차 여성들의 일상 속 '공포'에 대해서 이렇게나 '무지'하구나 싶어서 씁쓸해졌다. 


ㅡ 단상 네엣.

내 생각들도 변한 만큼 사회도 변했을 줄 알았다. 한데 여전히 뭐가 중요한 지 모르는 듯싶어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2차, 3차 가해를 하고 있다. 검색어 순위에 왜 몰카 영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영상이 보고 싶은 건가? 정작 검색해 보고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들은 교묘하게 가려지고 숨겨지고 잊힌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꼬리 자르기가 시작되고 꼬리가 잘린 도마뱀은 찾기가 힘들다. 


ㅡ단상 다섯.

아무리 생각해도 성 관련 범죄들은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피해자'만 남는다. 이상하지 않는가? 정말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왜 피해자가 궁금한지.. 가해자는 안 궁금한가? 가해자가 궁금하지 않은 건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가해자에 공감하기 때문에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거지. 누군가 몰카나 야동 공유해서 돌려본 것만으로 다 죽어야 한다면 이 세상 남자의 사분의 일 가량은 전부 죽어야 한대. 정말인가? 그럼 정말 다 죽으면 안 되나. 나머지 사분의 삼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겠어. 죽어야 하는 그 사분의 일에 어떤 윗분들이 있던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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