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볼파란 Mar 29. 2019

카페인 그리고 봄.

나한테는 오늘부터 봄, 봄이다. 

오랜만에 커피를 사려고 나갔는데 입고 있는 겨울 코트가 무색하게 공기가 달라졌다. 허긴 며칠 전부터 나는 환절기 비염으로 고생 중이었다. 몸이 먼저 알고 반응하는 계절의 변화라니. 


그래서 오늘은 밍밍한 스타벅스 디카페인 라떼 대신 카페인이 가득 들어있는 진한 라떼를 사들고 뒷산 산책로를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는 길에 하얗게 빨갛게 노랗게 꽃을 틔우고 꽃망울을 드러낸 나무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신기하여라. 죽은 듯이 보이는 모든 것들은 사실은 열심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겨우내 무력감과 우울감, 그리고 공허함으로 지냈다. 잠은 오다 안 오다 했는데 옅은 잠이 들면 여지없이 악몽을 꾸었다. 누군가에게 쫓기고 전쟁이 나서 총알받이가 되거나 물에 빠져 익사하는 꿈이었다. 그러다가 깨면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펑펑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카페인이 들어가고 봄이고 꽃을 보고 산책을 하니 내 기분도 따라서 올라간다. 뒷산에서 까만 개를 만났다. 이 녀석, 여기 있었구나. 동네에 항상 보이는 개들 중 한 마리다. 하얀 개는 동네 순찰을 도는 할아버지처럼 항상 골목길에서 보이는데 까만 개는 계속 보이지 않아 어디서 죽었는 줄 알았다. 하얀 개는 나이가 들어 골목길 어디선가 자리를 잡고 볕을 쬐이곤 하는데 까만 개는 젊어 뒷산으로 어디로 부지런히 다니는 모양이었다. 나무 둥치에 오줌을 갈기고 혀를 내밀고 활짝 웃으면서 총총히 멀어져 간다. 집 없이 사는 개가 저렇게 행복해 보이다니. 어쩌면 내 편의대로 불쌍하게 봤는지도 모르겠다. 


내려오던 길에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두 줄을 맞춰 걸어 나온다. 동네에 비행기가 자주 다니는데 파란 하늘에 떠있는 비행기를 보더니 아이들이 "와~ 비행기다!! 와와~" 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나한테는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한 비행기 소리 하나에도 저렇게 즐겁게 반응하는 아이들이 부럽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시절. 


이런 날은 트로이 시반의 노래를 들어도 좋겠지.

https://soundcloud.com/noviana-466833787/troye-sivan-strawberries-and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의 단상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