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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07. 2019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내 몸밖에는...


저 말을 어디서 들었더라? 생각이 나질 않아서 초조해 진다. 어떻게 이런 머리로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수업까지 하니.... 맙소사. 불현듯 들었던 말이 떠오르지 않거나 어제 먹었던 식사가 생각나지 않는 건 이제 새삼스러울 일이 아니다. 


맞다! 모델 한혜진이었다. 운동에 집착하는 그녀가 '대화의 희열'에 나와서 했던 말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몸 하나 밖에 없어서 운동한다는 말이 지금 왜 떠오를까.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국물이 끝내주는 굴짬뽕과 탕수육, 수제버거, 감바스와 맥주를 헤치운 사람이다. 아마도 내 머릿속 어딘가의 죄책감과 후회의 버튼이 눌려진게다. 지금은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하루를 마감해야 하지만 잠도 들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러 못자고 있으니 한혜진의 말이 떠오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녀의 말은 틀렸다. 내 인생에서 마음대로 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내 몸이 가장 그렇다. 중년의 몸으로 향하면서 치렁치렁 약을 달고 살고 수면의 질은 떨어지고 '운동하고 살빼고 싶다'와 동시에 '먹는 거 절제하자'가 콤비처럼 뇌구조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자리만 잡았지 행동할 수 없는 비련한 몸뚱어리는 이렇게 절제하지 못한 날이면 어김없이 후회와 죄책감으로 점철된다. 


마트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데메테르 디퓨저의 향은 '프라하의 카를교'다. 프라하의 카를교를 가봤는데 도통 이 향이 왜 그곳의 이름이 붙여졌는지 모르겠다. 패키지 뒷면에 '카를교의 오후 7시의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풍경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라고 적혀있다. 로즈와 백합향 그리고 우디향과 오리엔탈향이 섞여있다. 킁킁. 십년도 훨씬 전에 가본 카를교의 기억이란 오후 7시가 아니라 야경 바라보며 마시던 맥주 밖에 기억에 없다. 그 맥주가 좋아서 원래 일정보다 더 오래 묵었던 프라하. 이젠 그 여름날이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나는 매일 다른 상상을 한다. 여름 오후 7시 카를교에 다시 가보면 좋겠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 그 몽환적인 시간이라면 무슨 향이든 좋을 테니까...



-사진출처 : photo by Ugur Pe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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