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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09. 2019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잖아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다. 오전에 뒷산에 올라갔다 왔다. 원래는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프로파일' 오디오 클립을 들으며 산책하는데 업로드된 건 다 들어서 오늘은 오랜만에 '지대넓얕'을 다시 들었다. 김도인이 진행한 비교적 초기에 했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 편을 들었다. 역시 방송을 다시 들으며 체크해봐도 나는 정말 민감한 사람이다. 근데 웃긴 건 나는 이십 대 때만 해도 내가 무던하고 낙천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는 거다.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송을 들으면서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잘 때면 거의 경기를 일으켰다. 낯설고 어둔 공간이 주는 무서움이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 작은 소리에도 까무러쳐 울었고 심장이 밖에까지 튀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 둬도 잠만 잘자던 동생과는 달리 밤새도록 흐느껴 울었다. 삼십 대 초반이었던 젊은 엄마는 아마 그런 나를 감당할 수 없었을 거다. 기어코 뺨을 한 대 맞고 소리도 못 내고 끅끅 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엄마는 그때 이후로 내 얼굴에 손을 댄 적이 없다. 아마 잠도 못 잔 채 나를 달래다가 폭발했을 거다. 학교 다닐 때는 회초리로 손바닥과 다리를 많이 맞았는데 생각해 보면 사고를 쳐서라기 보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가 어린 나의 고집을 꺾기 위해서 매를 들었다. 민감한 사람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교정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엄마를 원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임경선 작가의 새로 나온 산문집을 잠들기 전에 생각날 때면 한 꼭지씩 읽는다. 작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리스본으로 자신의 딸과 함께 떠난 여행이라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 얘기가 나온다. 따뜻하고 슬프고 다시 따뜻하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잖아


어린 딸이 엄마에게 건넨 말에 나도 위로받았다. 사실 이 매거진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 어제는 어제고 지난날은 생각하지 말고 오늘만 생각하자. 아이들이야 말로 가장 '오늘'을 사는 존재들일 것이다. 주말이면 아파트에 장이 선다. 곱창 트럭도 오는데 그 앞에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연신 까르르 웃었다. 뭐가 자기들끼리 그렇게 재미있는지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참새들 같다. 곱창을 팔던 아저씨도 곱창을 사러 나온 엄마도 지나가던 나도 아이들을 웃으면서 본다. 존재만으로도 웃으면서 바라볼 수 있다니. 참 좋구나. 



-사진출처 : photo by Robert Col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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