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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n 10. 2019

서론, 본론, 결론의 글쓰기 지옥

나는 공부와는 먼 사람이다. 우선 잡생각이 많다. 학교 다닐 때도 집중을 못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에 비해 성적은 잘 나오지 않았다. 고3 담임이 내신 한 등급만 올리면 in 서울 대학을 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걸 못 올리고 오히려 한 등급 떨어뜨렸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이런저런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3 때는 논술 학원 가는 시간이 괴로웠다. 글을 읽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서론 본론 결론에 맞춰 논리적인 글을 쓰는 게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았던 거다. 


그랬던 내가 심지어 머리가 굳어져서 어제 먹은 음식도 기억 못 하는데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도 공부해야 할 양도 방대하고 과목마다 내주는 글쓰기 과제물도 너무 많다. 무려 십 년 만에 다시 방통대 공부를 시작했다. 십 년 전에 제적당하고 다른 과에 편입했는데 자유롭게 시간을 쓰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 했던 건 역시 섣부른 판단이었다. 게다가 과목별로 나오는 중간 과제물들은 기가 막히다. 다시 고3이 된 것 같다. 서론 본론 결론의 글쓰기 지옥에서 다시 헤매고 있게 될 줄이야. 참고문헌 주석 달기도 지겹다. 읽어야 하는 책과 눈문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기어코 출석수업 대체 과제물 접수 기간을 놓쳐버렸다. 세 과목 중 두 과목은 다 해놓고 한 과목만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세 과목 모두 다 접수 못했다. 감점당하고 추가 접수 기간에 접수해야 할 것 같다. 사실은 지금도 남은 한 과목 글 쓰다가 너무 하기 싫어서 이 글을 쓴다. 차라리 주제를 주고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라고 하면 신이 나서 쓸 텐데... 내가 학과를 잘 못 선택했나 보다. 학과 개론에 예술가와 과학자의 마음을 동시에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데 내 머리는 너무 문과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과학자이다.
(...) 복잡하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예술적이어야 한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과학자의 눈으로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해야 하는데 또 그게 매우 복잡하고 구체적인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섬세하고 디테일한 예술가의 눈도 있어야 한다는 거잖아. 이 문장만 보면 이 직업군은 다 가진 만능의 존재여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억대 연봉쯤 받아야 하는데... 전혀 앞뒤가 안 맞는 그러니까 자본주의 기브 앤 테이크의 세계에선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직업인 거지. 이 공부를 하면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이 직업군의 대우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문장만 보고서 내가 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사람은 이 일을 하는 사람일까? 


결국 글쓰기는 다 끝내지 못했다. 내일로 다시 미룬다. 왜 서론 본론 결론이 있어야 하나. 결론부터 시작할 수도 있고 본론만 있을 수도 있지. 왜 폰트 크기가 11pt 여야 하고 줄 간격이 160% 여야 하나. 다 못 채울 수도 있고 넘길 수도 있지. 엉엉. 다음 학기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진출처 : photo by Angelina Lit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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