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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Apr 12. 2021

말이 주는 무게

병원을 다녀오며 파도를 만났다

가츠시카 호쿠사이



비 오는 월요일. 우울감이 덮쳐온다.

파도는 늘 있어 왔다. 파고의 높이만 달랐을 뿐.

집채만 한 파도가 일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그렇게 덮쳐온다.


며칠 전부터 이명이 느껴졌다. 자려고 누우면 한쪽 귀에서 가늘고 약한 고음의 삐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멀리서 들리는 소리라 신경 쓰지 않기로 작정하면 괜찮았지만 한 번 인지가 된 소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엄마가 아주 오래전부터 이명을 앓고 있다. 낮이고 밤이고 수시로 튀어나오는 시끄러운 매미소리. 어떻게 그런 소음을 견뎠을까. 나보다 잠을 더 잘 주무시니 다행일 밖에. 엄마는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자신의 아버지 이명도 못 고친다는 말을 듣고 딱 포기하고 매미 울음을 자신의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한계를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엄마를 보고 지내와서 사실 한 번 발생한 이명이 깨끗이 사라질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다. 단지 난청이나 청력에 문제가 있을까 싶어 찾아간 병원행이었다. 그래도 꽤 후기가 좋았던 신생 병원 이비인후과였는데 그만 당황스러웠다. 검사상으로 청력엔 문제가 없었고 일시적으로 귀가 예민해져서 그럴 수 있다며 이명 약을 처방해 줬다.


"먹고 있는 약과 함께 먹어도 괜찮을까요?"


그 한 마디였다. 대부분은 의사가 먼저 물어보거나 접수대 간호사가 물어볼 말이었고 몇 번의 경험으로 내가 먹고 있는 약명과 복용 양을 외워서 다니고 있었다. 무슨 약이냐고 묻는 의사에게 말하니 미간의 주름이 잡힌다. 지금 처방한 약도 굉장히 약한 약이다. 사실 효과를 보려면 강한 약을 먹어야 한다.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다. 영점 몇 프로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처방하지 않는 게 맞지만 그냥 먹어도 거의 상관은 없다.

뭐 말의 요지는 그런 거였다. 어리둥절한 채로 수납하고 처방전을 받아 든 나한테 간호사가 호출했다. 다시 들어오란다. 의사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이 처방한 약에서 몇 가지를 빼고 다시 주겠다고 했다. 여전히 어리둥절해져서 그 약을 함께 먹으면 안 좋은 건가요, 물으니 나를 흘긋 보고 말했다.


"부정맥은 심한 편인가요? 약을 먹을 정도면?"

"우선 약을 먹지 않으면 증상이 나오는 편이라.."

"환자분.. 제 어머니 한 테라면 그냥 먹으라고 할 거예요."


뭐, 어쩌라고?... 처방한 약 리스트를 나한테 말하는 건지 자신한테 말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훑으며 약을 빼고 다시 처방을 내렸다. 그 약들이 어떤 약들인지, 빼버린 약이 뭔지. 당연히 알 수 없었다. 이명에 쓰이는 약이란다. 의사의 태도는 지금까지 봐온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방어적인 편이었다. 다른 약을 먹고 있어 걱정을 하는 환자에게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을 법한 약을 처방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보였다. 문제는 그러면서 모든 짜증과 신경질을 환자한테 내뿜고 있다는 거였다. 마치, '약을 주긴 줄 테지만 이 약을 먹고 낫지 않는다면 그건 내 탓이 아니다.'라는 아우라가 가득이었다.


그렇게 받아 든 처방전을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 간호사가 다시 다가왔다. 곤란한 표정으로 내 처방전을 다시 들고 갔다. 아직도 빼지 못한 약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약 처방전을 받지 않는 게 맞지 않나. 어차피 큰 기대 없이 청력 검사를 하러 갔던 건데 이런 꼴을 당하면서 약을 먹어야 하나. 하지만 미안한 표정으로 내 처방전을 받아간 간호사의 얼굴을 보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줄어든 약 처방전에는 고작 두 개의 약이 들어 있었다. 약국에 물어보니 혈액순환제와 어지러움증 약이었다. 내 귀에 들리는 미세한 소리가 이 두 개의 알약으로 잡힐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약봉지는 아직 열어보지도 않았다.


억울한 의료사고도 있을 테고 환자나 보호자들을 대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 처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와는 달리 방어적으로 변하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문진이 가장 중요할 텐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문진을 제대로 하는 의사가 거의 없다.


나만 그런 건지 몰라도 내 증상을 얘기하러 가서 반도 못하고 나올 때도 많다. 그만큼 밀려있는 환자들은 많고 시간은 촉박하다. 몇 번 이런 일을 겪다 보면 병원 문턱만 넘어가도 불안해지면서 내 입은 그만 다물어지고 만다. 나이가 들면서 병원에 갈 일이 많아지고 약을 주기적으로 받아와야 하지만 이런 패턴 때문에 나는 백의 고혈압도 가지고 있다.


다정하기까지 바라는 건 아니지만 병원에 오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혹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병 때문에 심신이 불안하고 긴장하고 힘든 상태다. 의사나 간호사가 건네는 작은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얼마 전에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다녀왔다. 2년 만에 가본 거였는데 그동안 내 담당의였던 대학병원 교수가 산부인과 전문 병원으로 옮겨서 따라서 병원을 옮기느라 분주했다. 내 성격에 그러면서까지 그 교수를 따라갔던 건 그 의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여자 의사인 그분은 이미 내가 대학병원을 불안한 마음으로 갔을 때부터 그 분야에선 꽤나 유명해서 예약을 하고 가도 대기시간이 많았고 외모도 차갑고 분위기도 차가운 편이었다. 하지만 나긋하면서 단호한 말투는 차갑다기보다는 환자한테 해줄 말만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고 무엇보다 이 불확실하고 모호한 의학의 세계에서 나한테 안정과 확신을 주었다.


의학이 불확실하고 모호하다고 하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원인불명의 병이나 질병도 많을뿐더러 치료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치료방법이 있다고 해도 그 수많은 부작용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한다. 내가 병원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확실한 말이 아니었다. '그럴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그 말 한마디에 다 열려 있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 원인을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보다는 지금 내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대해 최대한 방어하고 약을 처방하고 거기서 다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고통은 다른 약으로 막는다.


내 몸 역시 불확실하다. 오랫동안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야 했던 내 몸은 약을 끊고 기적처럼 생리주기를 회복했다.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부정맥을 얻고 생리를 회복하다니. 몸조차도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구나.


후기에 교수님 차가워서 마상 입었다고 쓴 글을 봤었는데 오랫동안 봐온 그 교수님은 나를 보내며 말했다.


"잘 지내세요."


어쩐 일인지 잘 지내라는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좋은 의사, 나쁜 의사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오늘 갔던 그 젊은 이비인후과 의사에 대한 좋은 후기를 보고 갔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좋은 의사였을 거다. 말 한마디가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크다는 거다. 그게 생명의 최전선 앞에 있는 직업군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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