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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Mar 27. 2022

이기적인 유전자

몇 년 전부터 장애인 이동권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관심을 갖고 있을 뿐, 내가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당시 하고 있던 공부의 과제 때문에 찾아보게 되었던 것이 계기였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한 가지 물음을 떠올렸다.


"우리 동네에 장애인들이 없네?"


그렇다. 나는 그때까지 장애인을 동네에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물론 노인분들이 전동 휠체어를 끌고 다니거나 보행기에 의존 다니는 모습들은 종종 봤지만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습을  기회가 적었다. 간혹 가다 출퇴근길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오가는 분들은 보게 돼도 마음을 졸이기 일쑤였다. 꾸역꾸역 밀려드는 지옥철에 행여나 사람들이 괜히 모진 소리들을 내뱉을까 봐였다. (적어도 내가  때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런데 왜 장애인들이 보이지 않았을까? 정말 없어서일까?

아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나올 수가 없어서이다.


에피소드 1.

지금의 회사에 오기 전 짧게 근무했던 회사에서 일할 때였다.

사장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사장과 나눴던 대화.


"이 동네는 장애인들이 참 많아."

"장애인이요? 안 보이던데..."

"여기가 원래 장애인들이 많이 살았어요. 장애인들을 한데 모아놨었거든. 근데 여기 땅값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면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거든... 동네는 좋아졌는데..."

"네?..."


장애인들을 한 군데 모아놨다는 소리도 금시초문일뿐더러, 동네는 좋아졌는데 다음의 말은 뭔지 알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장의 말대로라면 나는 거기서 일하는 동안 장애인들을 봤어야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장애인들은 없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중교통 시설을 비롯한 모든 시설물들은 비장애인을 위해서만 지어졌다. 그중에서도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졌다.


물론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의해 시내버스에 저상버스 도입이 시작되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저상버스에 장애인이 타는 걸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단 한 번도 없다. 저상버스 도입률은 30%도 안 된다.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타야 하는 저상버스도 타기까지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일부 버스 기사님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노약자가 탈 때 눈살이 찌 푸러들 정도로 빨리 타라고 고함을 지르거나 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출발한다. 나는 그래서 버스를 탈 때 노인분들이 타면 항상 내가 마지막에 올라탄다.


그렇다고 지하철이 나은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거나 휠체어 리프트 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사실 따지고 들자면 모든 시설물이 장애인, 노약자를 위한 시설들은 없어 보인다. 이건 엄연히 차별이다. 이게 왜 차별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역으로 묻고 싶다.


당신이 언제까지나 젊은것도 아니요, 당신이 언제까지나 아무런 사고 없이 무탈하게 곱게 늙어 죽으면 좋겠지만 하루아침에 사고로 장애인이 될 수도 있지 않냐고. 그때 가서 이게 왜 차별이냐고 말할 수 있냐고.


최근 다시 이동권 시위를 하면서 기사에 오르내리고, 정치적인 프레임을 씌워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근데 이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벌써 몇십 년 전부터 꾸준하게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해 오고 있었던 문제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차별하고 있는 문제다. 영국은 2004년에 저상버스 도입률이 50%였고 2017년에 이미 90% 이상을 도입했는데 우리나라는 20년 가까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고 예산은 오히려 감축되고 있다.


에피소드 2.

최근 한 젊은 배우가 이동권 시위 때문에 30분 지각을 하고 2만 원가량의 돈을 써서 이동한 모양이다. 그걸 가지고 자신의 SNS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건강하지 못하다며 멈추라는 글을 올렸다.' 더 놀랐던 건 잘 모르는 배우라 들어가 봤던 그곳에 남겨진 댓글들이었다.


사과문의 형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과문에 달린 젊은 사람들의 댓글들은 대부분 잘못한 거 없다, 옳은 말을 했는데 왜 사과를 하냐, 응원하겠다는 글들이었다. 물론 비난하는 댓글들은 지웠는지, 아니면 뒤에 묻힌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역시 포털 댓글이나 인스타 댓글은 읽는 게 아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건강하지 못하다, 멈추라.


아아, 이 한 줄의 글은 나조차도 눈물이 핑 돌정도로 가슴 아픈 워딩인데... 장애인들에겐 가슴을 후벼 파는 한 줄이 아닌가. 작은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다. 당신들이야말로 그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인양 사는 것을 멈추라. 건강하지 못하다. 장애인 이동권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아니 몰랐더라도 그 글을 쓰기 전 무슨 시위였는지 검색이라도 몇 번 해봤다면 그런 글을 올리지 못했으리라.


요즘 사람들은(꼰대력 만렙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읽고 생각하는 것을 멈춘 것 같다. 눈에 자극이 되는 것들이 너무 넘치고 누구 말마따나 잘근잘근 씹어서 입안에 넣어주는 유튜브 영상들도 많고, 순간적인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SNS도 넘쳐나서 '읽고' '생각'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멈춘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이기적인 유전자로 태어났다고 해도, 적어도 '함께' 살아가길 선택한 이상 인간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선한 '의지'로 '노력'할 수는 있다. 자신이 사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것은 우물에 불과하고 눈을 조금만 돌려도 전혀 다른 세상들이 펼쳐져있다. 세상과 세상이 만나는 것은 '의지'로만 가능한 것이다.




*지난번 글이 조회수를 타서 몇몇 글들을 내려버렸다. 브런치 글들이 다음에도 연동되어 올라간다는 것은 알았지만 개인적인 사적인 글들은 조금 곤란하다. 나를 어느 정도 특정할 수 있는 글은 앞으로 쓰지도 않겠지만 혹시 쓰더라도 일시에 내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글 올리기 전에 건별로 다른 플랫폼에도 사용할 수 있는지 동의를 받았으면 좋겠다. 브런치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암묵적인 동의인 건가. 흠.

물론 온라인에 올리는 글들은 구글링으로 웬만하면 다 검색되고 남는 거 알지만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나는 내향적 관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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