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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Jul 11. 2022

여름엔 당랑권이지

머리카락을 싹둑 잘랐다. 엄마가 묶은 채로 잘 들지도 않는 가위로 잘라내고 길이를 맞췄다.

쓱쓱-, 싹싹-

몇 번의 가위질로 끝.

미용실 가기 싫은 나는 보통은 몇 개월에 한 번씩 엄마 찬스로 길이를 자르고 큰맘 먹고 산 다이슨 에어랩으로 대충 말아서 다닌다. 사실 똥손도 금손으로 만들어준다는 다이슨 에어랩도 나를 금손으로 만들어 주지 못했다. 동생은 돈이 아깝다, 그냥 미용실 가서 펌을 해라, 어디 가서 에어랩 쓴다는 말도 하지 말라고 비웃지만 자기만족이다. 흥.


3개월에 한 번씩 가는 병원에 가서 3개월치 일용할 양식의 약을 잔뜩 받아서 돌아왔다. 다음에 피검사를 하자는 말에 마치 선고가 내려진 사형수 같은 기분이 된다.

"다음에 올 때는 몸을 만들어 올게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는데 내가 무슨 운동선수도 아닌데 무슨 몸을 만든단 말인가. 그도 그럴 것이 6개월 동안 10kg 넘게 찐 살로 인해 몸의 전반적인 기능들이 다 떨어졌다. 3개월 전에 한 검사에선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살짝 나타났다. 의사가 살까지 찌면 당이 올라가고 저하증이 생기면 심장의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말로 겁을 준다.(는 내 말이고 사실일 뿐이다. 의사는 그저 사실을 말하는 직업이다.) 암튼 그 말에 지레 변명처럼 나온 말이었다.


3개월 안에 무슨 수로 차곡차곡 찌운 살을 빼겠는가. 사람 그리 쉽게 안 변한다. 그래도 당장은 변하는 건지 그 뙤약볕에 집까지 30분 걸어왔다. 물론 오는 길에 공차 사 먹었다. 치즈 폼 넣어서 듬뿍. (말했지. 사람 쉽게 안 변한다고...) 게다가 날은 왜 이리 더운지 양산이 없었으면 욕까지 나올뻔했다. 다행이라면 습하지 않은 더위라는 점이다. 초록의 힘은 대단하다. 여름의 초록은 무섭다. 생명력이 숨이 막힐 정로라 내가 잡아 먹힐 것 같은 초록이다. 어딜 봐도 힘차다. 그 에너지가 부럽다. 자연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산책로에 세워진 철 울타리 위에 작은 사마귀가 서 있다. 손톱보다 작은 사마귀가 당랑권을 하며 작은 앞발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다. 너도 그 철 위에서 수련하느라 너무 덥겠지. 그러다가 구워지겠다. 귀여워서 카메라 들이대고 확대 줌 맞춰서 찍었다가 찍는 소리에 사마귀가 나한테로 휙 돌리는 바람에 소리를 질렀다. 미친... 쫄보.

이제 막 수련을 시작한 아기 사마귀


울타리   건너마다 작은 사마귀 새끼들이  있는데 그게 너무 웃기다. 아니 어미가 수련을 시키느라  세워 놓은  아냐? 너희들 중에  놈을 가려 키우겠다. 나머지는 철판 위에서 사마귀 튀김이 되어라. 어떤 놈은 조금 컸고 어떤 놈은 작았다.  때마다 초록의 색깔도 달라진다. 연한 초록, 진한 초록,  진한 초록으로 성장해 간다.  옛날 어린 시절에는 여름 가로등 밑이 동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축제의 장이었다. 그때는 온갖 벌레들이 지금처럼 무섭지 않았다. 커다란 어른 사마귀의 당랑권에도 맞서서 다리로 함께 호이, 호이- 하며 대결을 펼쳤던 것이다.


사마귀가 펼치는 초록의 힘에 밀려나 집으로 오면서 내 망한 웹소설을 빨리 종결할까 생각했다. 도망칠 구멍을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분주했다. 망한 것도 그냥 망한 게 아니라 개망했다. 너무 개쪽팔려서 아는 척도 못하겠는 나한테 내 담당 피디는 첫 작품이니 경험에 의의를 두고 그래도 카카오페이지 기다무로 들어간 것이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라고 위로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벤트까지 걸린 작품의 성적이라는 것이... 실화입니까?


한 회 한 회 쥐어 짜내면서 쓰고 있는 나도 이게 맞나 싶고, 재미가 없는데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도 그것도 돈을 내고 읽어주길 바라는 것은 도둑놈 심보겠구나 싶지만 실망한 건 사실이다. 1억 작가 꿈꿨다니까. 동기부여가 사라진 이 마당에 망한 작품을 끌어안고 본업을 하며 완결을 하기가 쉽진 않다. 아마 끝내고 나면 사리가 나올 것이다. 그래도 첫 작품 론칭의 의의는 명확하다. 처음으로 론칭한 것. 그리고 완결하는 것.


휴가인 오늘 집에 와서 구독하는 SF 계간지를 읽는데 왜 이렇게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되게 질투 난다. 까무룩 잠든 사이, 레프트, 라이트 손을 뻗으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면서 당랑권을 하고 있다. 흔들흔들 유연하게 움직이다가 상대의 틈을 본 순간 잽싸게 나비처럼 잡아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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