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부님께서는 새로운 교황이 선출되는 과정을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지켜보았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단 이틀 만에 새 교황이 선출되었고, 둘째 날 새벽이 되기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결과를 기다렸다. 현장에서 기다리는 이들보다 오히려 방송을 통해 지켜본 우리들이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전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이름이 ‘로버트 프란치스 레보사디에르 추기경’이라고 들었다. 처음엔 ‘프란치스코 2세’가 되신 줄 알았는데, 새 교황께서는 ‘레오 14세(Pope Leo XIV)’라는 이름을 택하셨다. 이 선택을 들은 순간, 신학을 공부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레오 13세’와 그의 회칙 「Rerum Novarum(레룸 노바룸)」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직역하면 ‘새로운 사태’이다. 그 시대의 사회문제를 다룬 중요한 문헌이다.
요즘은 ‘사태’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대부분 ‘사건’이나 ‘참사’로 표현되는데, 원래 ‘사태’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 구조와 시대 상황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레룸 노바룸」의 원어는 라틴어로 ‘Rerum(일들)’과 ‘Novarum(새로운)’이다. 이 회칙은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혁명’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당시 교황이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이번 교황님 역시 ‘레오’라는 이름을 선택한 것에서부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선 과거 두 분의 교황을 함께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레오 1세’다. 그는 ‘대(大) 교황’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일을 하셨던 분이다. 당시 로마는 훈족과 반달족의 침공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교황 레오 1세는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 외교적으로 협상을 시도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물건은 다 가져가도 좋으나 사람은 다치게 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약속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로마 시민들은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이처럼 그는 사랑과 인권,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먼저 생각했던 인물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앞서 언급한 ‘레오 13세’ 교황이다. 그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흐르던 시대에 교황직을 수행하셨다. 자본은 무한한 자유를 주장하며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를 착취했고, 그에 대한 반발로 1848년에는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격동의 시대에 교황 레오 13세는 「레룸 노바룸」을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처음으로 외쳤다. 하지만 노동자 편만 든 것이 아니라, 자본가와 사용자 모두의 권리도 함께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에 아무도 말하지 않던 약자들의 권리를 이야기한 이 회칙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초가 되었다.
새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님도 아마 그런 길을 걷고자 하시는 것 같다. 이미 교황 연설에서는 여러 차례 ‘인간의 존엄’이라는 단어를 반복하셨고, 인공지능(AI) 시대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하셨다.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단순한 소득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직결된 문제다. 교황님은 우리가 어떤 기술 발전 속에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신부님은 이번 강론을 준비하시며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역사를 다시 되짚어보셨다고 한다. 놀랍게도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 시대와 참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세대 간 갈등, 남녀 갈등, 계층 갈등, 진보와 보수 간의 갈등이 너무나도 극심하다. 가족끼리도 정치 얘기를 꺼내기 어려운 현실, 서로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공격하기 바쁜 모습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
이런 시대에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교황님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시대의 한가운데 서 계신 분인지도 모른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처럼 긴 시간 동안 세상의 변화에 함께해 주실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새 교황님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이 오래간만에 느껴졌다고 말한다. 그 환한 웃음 속에 담긴 무게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책임감을 안고 계실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교황님을 위해 기도할 때다. 세상의 평화, 인간의 존엄, 약자의 권리를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교황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금은 말보다 기도가 더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