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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Jun 09. 2022

상처 치유가 필요하다는 신호

억압된 감정이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 때

Q.요즘 일상에서 겪는 감정 문제가 있나요?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하시나요?


올해부터 운영하고 있는 '셀프치유 독서모임'에서 책 읽기 전 묻는 질문이다. 아이에게 자꾸 화내서 힘들거나, 타인을 지나치게 인식해서 피곤하거나, 반복되는 부부싸움 등. 저마다 문제가 다양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억압된 감정은 일상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것이 감정을 치유해야 하는 이유다. 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변화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다. 살던대로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 변화를 절감한다. 내가 셀프 치유를 하면서 가장 유익한 점은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내가 독서모임을 통해 도전하는 공통 목표는 '일상의 변화'다. 일상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야할까?  


1.감정 조절 문제로 일상이 불편할 때

감정은 살아있는 에너지다. 감정은 표현되어야 한다. 표현해야 인생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감정은 표현되지 않고 억압될 때 해로운 존재가 된다. 역기능 가정에서 감정을 회피하도록 학습한 경우 관계 문제를 겪게 된다. 억압된 감정은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나의 경우 아내가 말하길 결혼 전과 후가 너무 다르다고 했다. 결혼 전에는 섬세한 줄 알았지만 결혼해보니 예민한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수치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감정 조절 문제로 싸우게 되고, 아이를 사랑하지만 분노때문에 가까워질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뜻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자 치유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2.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상대방을 지켜볼 때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도 힘들지만 나도 힘들다. 가족이 아닌 관계는 그래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과의 관계는 잘 지내야만 하는 관계다. 아내와 싸우면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안 그래도 내 상처 때문에 나도 힘든데, 내 가족까지 힘들어한다면 치유가 필요하다. 억압된 감정은 가까운 관계, 가족에게 잘 일어난다. 나는 결혼 후 숨겨왔던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분노하며 가족을 공격했다. 한계를 수없이 경험했다. '나는 도저히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아내 한 사람 만족시키는 일도 못하면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나의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가족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내 상처에 책임지기로 결정한 후 부터다.


3.자신의 한계를 경험할 때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감정과 욕구를 수용받지 못하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느껴서 '수치심'을 학습한다. 자신에게 어딘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란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상처가 없는 것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가족에게도 가면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수치가 없는 것처럼 분노하며 자신의 수치를 가족에게 전이시킨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일을 완벽하게 해서 인정을 받아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관계도 사랑을 받기 위해 한다. 지나치게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관계를 맺는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다. 이런 경우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으면 실망하며 화낸다. 자신의 수치를 덮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치유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다. 관계를 통해 자신에게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한계를 경험해야 치유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내면의 치유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사람에게는 가르침보다 격려가 필요하다.


치유 독서모임에 찾아오는 선생님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독서모임까지 참여하면서 변화를 위해 노력할까?' 참여하는 선생님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가장 큰 마음은 '격려'다. 마음에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노력을 해도 안 되니까 이 방법 저 방법을 찾다가 독서모임까지 하는 것이 아닐까? 변화를 위해 한계를 마주하는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계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최선을 다해봤다는 뜻이다. 격려 받을 일이다. 나는 내 상처로 힘들어하는 가족때문에 치유를 결심하게 되었다.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에게 사랑을 주고 싶지만 내 마음은 나눠 줄 수 있는 사랑의 자원이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나의 한계를 마주했다면, 절망할 순간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할 타이밍이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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