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직장 상사와 전화 통화를 어요. 저희 회사 상황이 궁금해서 작년 매출을 물어봤어요. 다행히 상승했다고 하시더라고요. 22년과 비교해서 말이죠. 이 시국에 매출이 올랐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육아휴직을 마치고, 8월에 다시 복직해도 눈치를 덜 볼 수 있겠더라고요. 그런데 부장님이 한숨을 내쉬셨어요. 회사 매출은 분명히 플러스였는데, 대표님은 회사가 어렵다고 말씀하셨데요. 그리고 지난 1월에 연봉 협상 때 연봉을 동결시켰데요.
저희 회사는 매년 매출이 전년도보다 상승했어요. 그런데도 대표님은 매년 어렵다고 말씀하세요. 몇 년 전에 직원이 두 명이나 동시에 육아휴직을 해서 지출이 크게 줄어들고, 그해 창립 이래 최고 매출까지 찍었었어요. 그런데도 대표님은 본인 월급을 몇 달 못 가져가셨데요. 그 말씀을 매년 직원들에게 하시더라고요. 도대체 매출 상승분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저는 그 말씀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다 알아요. 제가 회계 담당은 아니지만, 경영지원 업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회사 수입과 지출 내역을 관리하거든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그리 말씀하시면 다들 속을 줄 아시나 봐요. 아니면 일부러 그러시거나요. 아무 말 못 하게 미리 한수 앞서는 거죠.
알면서도 속아주는 게 직원의 처지다.
직원들은 늘 불만이에요. 회사가 정말 어렵다면 불만을 품지 않겠죠. 연봉 상승? 당연히 바라지 않겠죠. 회사가 어려운데 연봉을 안 올려준다고 누가 뭐라 하겠어요. 다니는 것만도 감사하죠. 회사가 어렵다는 것도, 대표님이 월급을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인 걸 알기에 화가 나는 거죠. 더 화가 나는 게 있어요. 속아줘야 한다는 거예요. 매출이 올랐는데 연봉을 왜 안 올려주냐는 말을 할 수 없는 처지 때문에 더 화가 나죠.
사업이 쉽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이 회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늘 불안에 시달린다는 것도 알아요. 직원 월급 지급,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린다는 것도요.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체감할 수는 없지만요.
스트레스는 크게 받지만, 그래도 사업을 하면 잘 될 거라는 희망은 있잖아요. 회사가 잘 되면 모든 수익은 사장님이 다 가져가잖아요. 직원들 월급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말이죠. 직원은 희망이 없어요. 회사가 잘 돼도 연봉은 쥐꼬리만큼 올려주니까요. 그래서 직원들이 받는 만큼만 일하는 거죠. 어차피 죽어라 해봐야 돌아오는 게 없으니까요. 사장님이 바라는 만큼 일을 해도 내 성과는 사장님이 다 가져가니까요. 그래서 받는 만큼만 일하고, 실력을 키워서 더 많이 주는 데로 이직을 하죠. 어차피 한 곳에 계속 있어봐야 월급을 늘려주지 않으니까요.
어떤 사장님은 일을 잘해야 월급을 올려주지 않겠냐고 말해요. 월급을 올려줘 봐야 그만큼 일을 안 한다고 말하기도 하죠. 그건 그 직원의 인성 문제인 거죠. 그런 직원인지 아닌지는 분별해야죠. 그런데 보통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해도 한 만큼 올려주지 않아요. 일을 매우 잘하는 데도 일을 못한다고 말해요. 그 직원이 있을 때는 몰라요. 나가야 티가 나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를 말이죠. 그게 사장님들의 시야예요.
월급 상승에 한계를 느껴서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처자식을 편히 먹여 살릴 수는 없으니까요. 속된 말로 농땡이 한 번 안 부리고, 양심적으로 일만 해도 사장님은 제가 놀면서 일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퇴사한 직원의 일까지 떠맡고, 새로운 일도 만들어서 했는데도 말이죠. 한치의 부끄러움 없이 일을 했는데도 돌아오는 건 의심의 눈초리였어요. 몇 년을 그러시니 일할 의욕이 사라지더라고요. 그런데다 회사 매출이 매년 상승해도 연봉이 거의 동결에 가까우니 이 회사에 더 다닐 이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나올 준비를 하기 시작했죠. 나이도 사십이 넘었으니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고요. 이게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비애이자 현실 아니겠어요?
사업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어요. 아직 초기 단계라 뚜렷한 형체를 갖추지 못했지만, 조금씩 빚어가야죠. 하다 망할 수도 있고, 제가 포기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망할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나아가겠어요? 그게 불안하면 지금 물러서야죠.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요. 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하려고요. 그렇게 해도 성공할까 말까 한 게 사업이잖아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잘 될 거라는 희망을 품고, 도전하고 있어요. 잘 될 수 있도록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죠. 목표를 이루면, 월급보다 훨씬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잖아요. 그것만 생각하려고요.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큰 동기부여가 되니까요.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아주 잘 돼서 저를 놓친 걸 후회하게 만들고 싶어요. 제가 잘 돼도 사장님은 제가 잘 됐는지 모르시겠지만요. 그래도 최소한 제가 퇴사를 하면 제 자리가 티는 날 거라고 믿어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들에서 모두 그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