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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by 배철현 Jul 07. 2017

인간은 어떻게 인간이 되었을까?

빅뱅에서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지금으로부터 3만 2000년 전의 어느 날,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Homo sapiens sapiens 는 생존과 전혀 상관없는 행위를 시작한다. 횃불을 들고 홀연히 깊고 어두운 동굴로 들어간 것이다.

일상과 단절된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몰입했다. 우주에 대한 경외와 생명의 신비,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묵상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죽음 후에 삶이  있는가? 동물에겐 영혼이 있는가? 그들은 이 묵상의 흔적들을 동굴벽화로 남겨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인간은 의미를 찾는 정신적이며 영적인 동물이다. 나는 왜 사는가? 이 근원적인 물음은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무언가를 일깨운다. 그것은 바로 이타심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않고도 그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인간에겐 신적인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100만 년 전 인간이 불을 발견한 이래, 사냥한 동물을 날것으로 먹지 않고 불에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신체적으로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뇌의 크기가 이전에 비해 2배 커졌고, 그 결과 태아는 어미의 좁은 산도産道 를 통과하기 위해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야만 했다.

대부분의 온혈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발을 땅에 디디고 홀로 일어선다. 그리고 어미의 털을 잡고 스스로 어미의 젖을 찾아 먹는다. 하지만 갓 태어난 인간의 아기는 몸에 털이 없는 어머니에게 매달릴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아기는 태어난 지 1년이 되어야 겨우 혼자 걷기 시작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생존은 누군가의 헌신적인 보살핌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기는 뇌가 형성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누군가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이 생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배운다.

인간 본성의 핵심은 ‘이타적 유전자’다. 공감, 배려, 친절, 정의, 희생, 정직 등은 이타심이라는 씨앗에서 피어난 꽃이다. 그 열매가 바로 ‘컴패션compassion’이다. 컴패션은 ‘다른 사람의 고통passion 을 자신도 함께 com 느껴,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마음과 행동’이다.

이타심을 한자로는 ‘자비 慈悲 ’라고 한다. 자비는 ‘사랑 자 慈 ’와 ‘슬플 비 悲 ’로 이루어진 단어다. 자비란 한자 그대로 타인과의 경계가 가물[玄] 가물[玄] 하게 되어 하나가 된 마음 [心] 이다. 동시에 타인의 슬픔을 같이 공감하고 마치 새의 양 날개 [非] 처럼 한쪽이 기울어지려고 하면 다른 한쪽이 받쳐주는 마음[心] 이다. 아랍어에서는 컴패션을 ‘라흐민 rahmin ’이라고 부른다. ‘라흐민’은 이슬람 신인 알라의 별칭이다. 히브리어에서는 컴패션을 ‘레헴rehem ’이라고 하는데 동시에 ‘어머니의 자궁’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머니가 목숨을 담보로 아이를 탄생시키고,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는 숭고한 노력이 바로 ‘레헴’이다. 모든 인간은 바로 이 ‘레헴’의 창작물이다.

 문명과 도시, 문자와 언어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부터 인간은 타인과 공동체의 아픔, 동물과 자연의 아픔을 자신의 일부로 느끼는 영적인 동물이었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죽음처럼 공감했고, 그들을 위해 정교한 장례를 치렀다. 생존을 위해 동물을 사냥하면서도, 동물이 신음하며 죽어가는 순간에 함께 절규하며 눈물을 흘렸고, 경쟁자인 늑대를 공감과 교감을 통해 개로 길들이면서 인간의 친구이자 동반자로 만들었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는 자신과 전혀 다른 인종인 네안데르탈인을 유럽 한복판에서 만났을 때에도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그들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됐다. 우리 안에는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 있다.

사상가이자 신학자로 명성을 떨치던 앨버트 슈바이처는 학자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돌연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는 이전에 전혀 알지 못했던 아프리카인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의학을 공부한 뒤, 의료 봉사를 하며 일생을 보냈다. 무엇이 그를 아프리카의 성자로 만들었을까?

1960년대 초반 에티오피아보다 가난하던 대한민국에 오스트리아 수녀 2명이 찾아왔다. 소록도에 한센인을 집단 수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돕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들은 소록도에서 무려 43년간 한센인을 자식처럼 사랑하며 헌신했다. 그녀들이 모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간 것은 43년 전에 들고 온 작은 가방 하나뿐이었다.

우리는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19세기 서양인들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그리고 실용주의의 발달로 스스로를 동물과는 전혀 다른, 신과 맞먹는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영국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은 자신의 흔들리는 신앙과 격변하는 세계관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신은 진실로 사랑이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사랑이 창조의 마지막 법이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자연은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들었다.

  까마귀는 자연의 신조에 대고 괴성을 지르고 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했다. 그는 책의 서문에 테니슨의 시구 “자연은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들었다Naturered in tooth and claw ”를 인용하면서 인간을 새롭게 정의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지난 2000년 동안 내려온 인간 본성에 대한 종교와 철학의 정의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은총을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무기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었다고 말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 말에 등장한 경제학을 포함한 사회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정신적인 제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는 인간 진화의 핵심을 ‘이기적 유전자’로 보았고,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호혜적 이타주의’로 인간을 설명하기도 했다.

다윈의 진화론이나 도킨스의 이론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과학의 위대한 이론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슈바이처나 소록도를 찾은 수녀들의 행위를 단순히 호혜적 이타주의로 볼 수 있을까? 테니슨의 질문과 직관은 여전히 유효하다. 창조와 진화의 궁극적인 법칙은 사랑이다.

 오늘날의 우리를 있게 한 위대한 혁신의 원동력은 바로 이타심이었다. 6백만 년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영적인 유전자를 스스로 발견하고 발휘하는 여정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나는그 답을 찾기 위해 137억 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1만 년 전까지, 인간 정신의 놀라운 전개 과정을 추적하고자 한다. 이 위대한 여정의 결정적 순간들을 여러분과 함께 관찰하고 싶다.


                                                          2017년 7월 배철현

         (*인간의 위대한 여정 매거진은 앞으로 한 달  동안 주2회씩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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