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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pr 07. 2016

이임숙, '엄마의 말공부'를 놀이에 접목하다

<하루 10분, 엄마놀이> 아동심리상담사 이임숙 인터뷰



15년간 2만 시간 이상 아이와 엄마를 상담해온 아동심리상담사가 놀이법 책을 냈다. ’이젠 노는 법까지 배워야 해?’ 회의를 품다가도 "엄마, 놀아줘"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를 보면 노는 법이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선다. 

게다가 놀이법 전수자가 <엄마의 말공부>로 유명한 이임숙 작가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말공부를 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던 그가 이번에는 아이와 놀아주기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구원자로 나섰다. 번잡하고 복잡한 놀이들도 아니다. 달랑 종이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놀이법 50가지가 <하루 10분, 엄마놀이>에 담겼다. 

이임숙 작가가 ’아이 성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다 좋아할 놀이’라고 자신하는 놀이들이다. ’배 위에 종이 올리고 달리기’같이 상당수는 우리가 어렸을 적에 했던 놀이들인데, 아이와 깔깔거리며 놀 수 있다. 며칠 엄마놀이를 한 우리 집 9세 어린이가 "엄마, 학교 안 가고 엄마놀이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 이 작가의 자신감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 것 같다. ’종이 한 장 놀이’ 속에는 엄마와 아이를 잇는 어떤 끈이 담겨 있을까. 서울 잠실에 있는 그의 상담실에서 ’상담’을 했다.

Q 책 제목 앞에 붙은 ’놀아주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엄마들을 위한’이란 문구가 눈에 확 띄었습니다.  많은 엄마들이 동감할 텐데요. 왜 그렇게 아이랑 놀아주는 게 힘들까요?

놀아주는 엄마 역할이 언제부터 있었을까요? 기자님은 엄마가 놀아주셨어요? 안 놀아주셨을걸요? 우리나라에서 엄마 역할에 아이랑 논다는 개념은 별로 없었어요. 아빠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애들은 밖에 나가서 노는 거였지. 놀이에 대한 개념이 바뀐 게 채 10~20년도 안 돼요.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못 놀게 되면서부터죠. 아이에게 놀이는 필요한데 함부로 내보내지는 못하니까 집 안에서 놀아준다는 개념이 형성된 거죠.

그럼 놀아주는 사람은 엄마나 아빠여야 하잖아요. 여기서 아빠의 놀이와 엄마의 놀이는 좀 달라요. 아빠들은 몸으로라도 놀아줘도 되지만 엄마들은 주로 앉아서 하는 놀이를 하죠. 그림도 그리고 블록 쌓기도 하고. 그런 놀이가 한정돼 있으니까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를 몰라서 힘드신 거죠. 그런 분들에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놀이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Q 책에서 아이들에겐 놀이와 휴식의 개념이 다르다고 하셨어요.

엄마들이 "많이 놀았으니까 이제 들어가서 숙제해"라고 하면 아이들은 늘 이렇게 말하잖아요. "나 하나도 못 놀았는데"라고. 아이는 학교 갔다 와서 좀 쉰 거예요. 쉬면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좀 한 거죠. 엄마가 보기엔 그게 바로 논 거고요. 그런데 엄마들이 어렸을 때 놀던 걸 생각해 보세요. 신나고 즐겁고 재미있고 뿌듯하고 만끽하는 느낌이 있었잖아요. 또 건강한 놀이에는 이기고 지는 경쟁도 있고 기능의 습득도 있어요. 자유롭게 놀면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동네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지죠. 그런 충만함이 있어야 하는데 엄마들이 요즘 아이들에게 "놀았잖아"라고 말하는 놀이에는 그 무엇도 없어요.



"지적하고 관리하는 놀이, 자유 빠졌기 때문에 진짜 놀이 아냐"

Q 그렇다면 <하루 10분, 엄마놀이>에서 소개하고 있는 종이놀이를 하면 그런 충만함이 충족될까요?

종이놀이만으로 다 충족되지는 않아요. 사실 충만하게 놀려면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게 최고예요. 그런데 지금은 엄마가 따라가서 ’관리받는 놀이’가 되니까 밖에 나가서 놀아도 충만감이 없더라고요. 엄마들이 놀이 학교에도 보내시잖아요. 여기에 놀이에 대한 오해가 있어요. 놀이학교에는 선생님이 있잖아요. 중간 중간 지적하고 관리하는 놀이에는 자유가 빠졌기 때문에 진짜 놀이는 아니죠.

또 하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있죠. 비싸게 사준 장난감들도 얼마 못 가서 가치수명이 다해버리잖아요. ’창의력 향상’ 등 장난감에 붙는 광고 문구들은 화려해요. 자주 써야 창의력도 좋아질 텐데 자주 쓰지 못하니 무용지물이죠. 그렇기 때문에 실내에서 하는 놀이 중에서도 간단하고 쉬우면서 아이들에게 자유롭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놀이가 필요해요. 그게 종이놀이죠.

거기에 제 경험을 보탰어요. 상담을 하면서도 놀이는 필요해요. 주로 간단한 보드게임이나 놀잇감들을 사용하지만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낙서를 하기도 하죠. 언젠가 종이를 손으로 뚝뚝뚝 오려서 손을 잡은 인형 모양을 만들어줬더니 아이들이 너무 신기해했어요. "이거 쉬워. 너도 한번 만들어 볼래?" 하고 함께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죠. 아이가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만든 것에 대한 뿌듯함도 표현해요. 그러면서 마음을 활짝 열고 뭔가 말하기 어려웠던 말도 참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경험들을 하면서 아이들이 완성품으로 나온 놀잇감보다 이런 것들(직접 놀잇감을 만드는 놀이)에 더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죠.

Q 소개된 놀이들은 직접 개발하신 건가요? 선정 기준도 궁금합니다.

절반 넘게는 우리가 어릴 때 했던 놀이들이에요. 그 외에 제가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만든 놀이도 있고, 아이들과 놀면서 아이들이 개발해준 것도 많아요. 놀다보면 애들이 자꾸 아이디어를 내거든요. 다른 연구들에서 찾아서 보탠 것도 있고요. 선정 기준은 ’쉽고 간단하고 재미있는 놀이’에요. 다른 놀이책을 보면 준비물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요즘 엄마들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준비물이 서너 가지만 넘어가면 준비하다가 진이 다 빠지죠. 되도록 종이하고 펜, 색연필 등으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간단한 놀이들이에요.

Q 놀이방법뿐 아니라 응용 활동, 엄마 아빠를 위한 팁도 소개하는 등 구성에 신경을 쓰신 것 같아요.

놀이방법을 제안하는 놀이책들은 많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놀아보면 놀이방법에 없는 것들이 항상 문제가 돼요. 그 방식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으니까 이런 건 미리 아시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담았어요. 또 아이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그냥 냅두시라고 썼어요. 냅두면 아이가 관심 갖고 다시 오거든요. 그런 팁들을 상세하게 알려드려야만 우리 아이를 문제로 보지 않고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 게 정상이구나’ 생각하실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을 신경 썼죠.

Q 놀 때 아이와 나눌 대화들을 예문으로 들어준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엄마의 말공부>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놀이 때 대화도 중요하니까요. 아이가 심리,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모든 것에는 말이 들어가죠. 실제로 놀이 하나를 해도 대화를 하면서 하면 아이들이 놀이에 잘 빠져들고 무척 재미있어 해요. 엊그제도 집단상담을 하면서 종이비행기를 접고 놀았어요. 칠판에 색종이로 작게 타깃을 만들어줬어요. 멀리 떨어져서 맞추라고 하니까 아이들이 30분 내내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놀더라고요.

그때 제가 계속 추임새를 넣는 거죠. "어떻게 던지면 저 타깃을 맞출지 연구해봐." "이번에는 너무 올라갔네. 다음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말을 끊임없이 해주면 혼자 궁리를 하면서 "아, 이렇게 돌릴 수 있으니까 다음에는 이렇게 할래요", "힘을 너무 줬어요" 등 온갖 말을 다 해요. 그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아이가 자유를 만끽하면서 뭔가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구나’ 하는 것이 딱 눈에 보여요. 그래서 이런 대화를 좀 더 자세하게 알려드리는 친절함을 베풀었죠.(웃음)

Q 집에서 놀이를 따라할 때 엄마 아빠가 유의할 점이 있을까요?

정해진 틀이나 절대 하면 안 되는 것들이 없잖아요. 종이가 찢어져도 되고요. 그런데 엄마 중에는 규칙과 질서, 정해진 틀에 대한 가치가 강하신 분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은 아이가 놀이법에서 벗어나면 괴로워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께 말씀드리자면 아이의 아이디어를 따라가 주시라는 거예요.



"엄마와 함께 웃는 웃음은 아이들에게 좋은 치료제"

Q 놀이과정뿐 아니라 놀고 난 후의 피드백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어요.

피드백이라고 하면 잘못한 걸 지적하는 걸로 오해할 수 있어요. 그런 개념이 아니라 무엇이 좋았고 서로 무엇을 배우고 앞으로 어떤 걸 더 잘할 수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작업인데, 이게 정말 정말 중요해요. 저는 상담을 하고 나면 꼭 피드백을 해요. "오늘 선생님이랑 얘기하거나 네가 한 것 중에서 어떤 걸 잘했다고 생각하니? 제일 좋았던 건 뭐야?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아이 입에서 스스로 나오는 긍정적인 자기 평가는 진짜 마음에 좋은 힘을 줘요. 아이들과 놀 때도 그렇게 피드백을 해주세요.

Q 이런 놀이들을 상담에서 사용하면서 어떤 효과를 보셨나요?

아이들이 희망을 얻고 자기 삶에 대한 기대를 하기 위해서는 칭찬과 사랑만으로는 부족해요. 증거를 찾아야 되죠. ’내가 뭔가 할 수 있구나, 내가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무심코 내뱉은 아이디어도 가치가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하죠. 근데 상담이나 일상에서 아이가 내는 아이디어가 그렇게 대단할 게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종이놀이는 달라요.

저도 고지식해서 점수 따기 놀이를 하면 최저를 0점으로 잡았죠. 그런데 아이들은 마이너스도 쓰고 꽝도 집어넣더라고요. 아이들이 이런 걸 하나씩 생각해낼 때마다 엄청난 지지와 감탄을 해주면 아이들이 뿌듯해하면서, 그것이 아이의 심리에 건강한 요소가 되죠. 또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아이 내면의 목소리가 돼요. 예전에는 불길한 소리들만 내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면, 이 긍정적인 목소리가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거죠.

Q 종이로 할 수 있는 글놀이, 수학놀이, 과학놀이도 소개하셨는데 정말 학습효과도 있을까요?

유아 때는 숫자를 좋아하던 아이들이 초등학생만 되면 수학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아이러니한 건 수학 사교육에 그렇게 많이 쏟아부으면서 결과는 수학을 제일 싫어하게 만든다는 거죠. 책에 나온 점수 계산 놀이만 해도 아이들이 숫자를 굉장히 많이 접하게 돼요. 그냥 종이 위에 선을 쭉쭉 긋고 놀기만 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계산을 하고 도형을 그리고 있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피드백을 주는 거죠. "너 숫자 싫어한다더니 수학놀이 되게 재미있어 한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가 언제 수학을 했느냐고 해요. "이것 봐. 이게 다 숫자 계산이고, 도형이잖아. 너는 수학을 싫어한 건 아니었구나" 하고 이미지를 바꿔주는 거예요.

종이놀이가 아이들의 인지적인 측면에도 도움이 많이 돼요. 재미는 정서적 재미와 인지적 재미로 구분되거든요. 어떤 놀이에든 뭔가 배웠다, 실력이 늘어났다고 느낄 때 오는 인지적 재미가 있어요. 아이가 막 숫자 계산을 했는데 맞았거나 어쩌다가 1등이라도 하면 정말 뿌듯하고 짜릿해 하는데 그때 느끼는 즐거움들이 인지적 재미에 속해요. 특히 아이들이 공부를 하다가 지쳤을 때는 쉬게 하고 에너지를 다시 채워줘야 하는데 그때는 아이가 즐거움을 느껴야 해요. 한참 같이 웃다보면 에너지가 회복되잖아요. 엄마와 함께 웃는 웃음이 아이들에게 좋은 치료제가 되거든요. 이런 놀이를 하면서 함께 웃으시면 돼요.

Q 지금까지 쓰신 책을 보면 말공부부터 독서치료, 마음 글쓰기, 놀이법까지 참 다양해요. 아이들을 상담하려면 참 많은 걸 해야 되구나 싶어요.

상담뿐 아니라 요즘 엄마들이 다 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책 읽어주는 것에서 시작해서, 학교 들어가면 일기 쓰기, 독후감 쓰기도 도와야죠. 또 애랑 놀아주고 대화도 해야 되죠. 제가 다루는 콘텐츠들은 엄마들이 다 해야 하는 콘텐츠들이에요.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응용하면 쉬워요. 그 중심은 <엄마의 말공부>에 나오는 내용이죠. 소통이 기본이니까요. 책을 읽어도 소통하는 거고, 놀이를 해도 소통하는 거잖아요. "이걸 정말 잘하는구나" 하면서 강점을 읽어주고, "이러려고 네가 그랬구나"라며 긍정적인 동기를 찾아주고, "다음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아이의 의견을 묻는 게 소통의 기본이죠.

Q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엄마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아이와 엄마 자신을 믿으시길 바라요. 아이가 자기 아이디어를 보태면서 즐거워했고 엄마도 즐거웠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구나,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이 정도 했으면 참 잘하고 있는 거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잘 하고 계신데도 불안해하는 게 요즘 엄마들이잖아요. 아이와 잘 놀고 즐거우셨다면 이미 얻을 거 다 얻은 거니까 엄마 자신과 아이를 믿으시라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취재:신정임(북DB 객원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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