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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pr 26. 2016

편혜영 "균열 있음에도 살아가게 하는 힘에 관심"


소설가 편혜영의 네 번째 장편소설 <홀>은 그가 2014년 발표했던 단편소설 ’식물 애호’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식물 애호’를 발표한 이후에도 인물들의 관계가 궁금했다고 말하는 작가는 <홀>을 통해 ’오기’라는 인물과 그의 장모를 둘러싼 이야기로 좀 더 확장하였다. 

오기는 남들이 보기에 사회적 성취라 할 것들을 이뤄낸 인물이지만, 급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고 전신불수가 된다. 그런 그를 돌볼 사람은 장모뿐이다. 소설은 사고 이후, 오기와 장모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그 사이 오기는 자신의 과거를 쉴 틈 없이 진술한다. 그렇지만 오기의 무기력한 몸과 또렷한 생각은 완전히 단절된 그의 현재와 과거를 대조할 뿐이다. 그의 파국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Q <홀>은 작가님의 네 번째 장편소설인데요, 이 소설이 이전의 장편소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쓰는 과정이 조금 달랐습니다. 첫 장편 <재와 빨강>은 연재 없이 전작으로 완성한 작품이에요. <서쪽 숲에 갔다>와 <선의 법칙>이라는 장편은 문학잡지에 연재하며 초고를 써나갔고 연재 후에 퇴고하며 완성을 했고요. <홀>은 2014년에 발표한 ‘식물 애호’라는 단편소설이 모티프가 된 장편입니다. 단편으로 완성하고 나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지 계속해서 인물들의 사연이 생각났습니다. 단편소설의 이야기가 모티프가 되어 이야기를 길게 써본 것은 처음이에요.

Q 한 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작가님은 전체 틀을 정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써나가면서 계속해서 덧대어 쓰는 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소설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설을 쓸 때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흐릿하게나마 가지고 시작하는 편이에요. 그렇기는 해도 구성을 완벽하게 해두고 쓰거나 세부적인 것을 모두 정해 두고 쓰지는 않아요. 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적인 발상이나 이미지, 문장 같은 것들에 솔깃하는 편이고요. 써 나가면서 이야기의 줄기들이 모양을 바꾸거나 애초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걸 목격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러다보니 애초에 매끈하게 구성된 이야기를 완성하는 게 아니라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것들을 조금씩 덧대면서 여러 번 수정하고 퇴고해서 소설을 완성하게 됩니다.

Q 작가님의 이전 소설들은 그로테스크, 잔혹함, 일상의 파국과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이러한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처음에 소설을 쓰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선 저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불가사의한 것들을 해석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날것의 생각을 많이 하던 시기였나 봐요. 비현실이고 생생한 이미지들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죠. 또 사람들 사이의 균열이나 틈 같은 것도 원인이나 양상이 궁금하기보다 그 자체를 들여다보기를 즐겼던 것 같고요. 그런 과정에서 나온 해석인 듯합니다.


"단편소설 이야기가 모티프가 돼 장편소설 써본 건 처음"

Q <홀> 관련 인터뷰에서 "세계관이나 정서가 등단 초기와 동일하다고 해도 소재를 취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지요. 옛날엔 환상적이고 날것의 이미지에 취했다면 이제는 현실적인 배경의 인물을 찾게 되는군요."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소설에서 소재를 취했던 방식이 어떠했는지 궁금하고, 현실적인 배경의 인물을 찾는다고 할 때 어느 정도 인생에서 성공한 오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기 소설에 비하면 현실적인 인물이나 배경을 취한 셈이지요. 하지만 <홀>이라는 소설이 기점이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고요. 여러 단편들에서 이미 그런 변화가 시작되다가 작년에 출간된 <선의 법칙>이라는 장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현실의 고민을 다뤘어요.

<홀>의 오기라는 인물은 제 소설에 별로 없던 캐릭터예요. 그간 제 소설의 인물은 내성적이고 무기력한 인물들이었죠. 동일한 일상에 지치고 피로한 사람들이었고요. 그런데 오기라는 인물은 일단 남들이 보기에 사회적 성취라 할 만한 것을 이룬 사람이죠.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방어하고 나아지게 하려고 노력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이 소설은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 오랜 균열 때문에 가진 것을 잃어가는 남자의 이야기예요. 오기의 상실감을 크게 하려면 평소에 자신은 가진 게 많다고 여기는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안온해 보이는 가정,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타운 하우스, 안정적인 직업 같은 것이요.

Q 오기의 직업을 지리학과 교수로 삼은 이유 무엇인가요?

오기는 어떤 일에 대해서 이분법적으로 성공이나 실패라고 분명하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단호하고 확신에 차 있고, 자신은 해석이 분명한 세계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는 인물이요. 그런 인물이 분명하거나 명확한 인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 우연과 시간의 격차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에 매혹되면 재밌겠다 싶어서 선택한 것이 지도학이에요. 지도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믿어지지만 실은 현실을 상징화하고 기호화한 것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 다르거나 현실에서 누락되는 부분이 발생하죠.

Q 사고 이후 눈을 뜬 순간부터 오기의 과거 기억들이 진술됩니다. 그의 과거사와 대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기를 이렇게까지 무능한 존재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설 속에서 아내가 판단한 것처럼 오기가 속물이기 때문에 모든 걸 잃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기가 대가를 치를 만한 인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오기의 속물성에 대한 징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설혹 그렇다고 해도 오기에게 주어진 상황은 지나치죠. 환경이나 시스템이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폭력적으로 변할 때, 그런 상황에 맞설 수 없어 존엄했던 개인이 무기력한 존재가 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Q 폭력 또한 이 소설의 중요한 키워드로 보면 되는가요?

장모가 오기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심을 자극한다거나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는 식으로 폭력을 행사하지요. 오기가 통제할 수 없고, 원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 주어지는 것도 개인에게 가해지는 폭력이고요.

Q 오기의 인생에는 세 명의 여자가 영향을 미칩니다. 어머니, 아내, 장모. 이처럼 오기의 인생에서 여성들과의 관계를 중요한 요소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설에 쓴 대로, "여자들은 종종 오기의 삶에서 전환점이 되"니까요. 물론 그 문장이 나올 때는 장모가 오기에게 폭력을 가하기 전이지만, 실은 오기 주변에 마지막으로 남은 여자인 장모가 어떠한 전환점이 되리라는 암시이기도 했지요.

Q 사고의 원인을 불륜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실적인 불륜이라기보다는 어떤 오해에서 비롯된 사고지요. 오기와 아내 사이에 균열이 생긴 순간은 아내의 오해가 분명하죠. 오기는 하지 않은 일에 해명을 하다가 끝내 관계를 포기해버리고요.


"작은 기미가 느껴졌는데도 삶의 균형 잡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

Q "사십 대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완벽하게 실패하는 분기점이 되는 시기였다. 오기는 물론 세상에 적응하고" 싶은 인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기를 통해 그리고자 했던 40대의 의미는 무엇이고,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40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오기라는 인물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기준이 확고한 인물이니까 제 나이에 대한 성공을 단정적으로 진술할 수 있는 인물이어서 그렇게 말할 수 있었고요. 저는 지금 40대를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지나고 있는 이 시기가 어떨지 나중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Q 이 소설의 제목인 ’홀’에 대해서 균열이나 공동(空洞)의 중의적인 상징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자분들 각자가 느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요. 오기가 나중에 빠져들어 가는 실재하는 구멍을 뜻할 수도 있고, 일상에서 사람들이 짐작하지 못한 허방 같은 것일 수도 있고요. 예기치 못한 균열이나 틈일 수도 있고요.

Q 일상의 균열이나 틈을 작가님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로 볼 수 있을까요?

균열 자체가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아요. 균열이 있더라도 일상은 이어지고, 혹은 아예 감지조차 되지 않을 수도 있고요. 제가 관심이 가는 것은 균열이 있음에도, 징후나 기미가 느껴졌는데도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에서는 독가스 테러 직후 상황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데요. 그 중에 사건이 일어난 날, 몸도 좋지 않고 이상한 냄새도 나고 유난히 현기증도 느끼지만, 언제나 했던 대로 지하철역을 나가자마자 우유를 사서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 얘기가 나와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궁금해요. 뭔가 작은 기미가 느껴졌는데도, 삶의 균형을 잡으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이 있어요.

Q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소설을 쓰기 위해서 소재를 찾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실제 일어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다고 그대로 쓰지는 않아요.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 등이 소설의 단초가 되기도 하고요. 다양한 통로로 이야기의 입자들이 만들어져요.

Q 소설마다 소재가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조금은 일관하여 드러내고 싶은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인가요? 작가님의 작업세계라고 할까요?

예전에는 균열의 종류나 양상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람을 느닷없이 조금씩 흔들어 놓는 것들. 인간관계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 감당할 수 없는 채무 같은 것들이요. 지금도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지기도 한 게, 균열이 있음에도 그 균열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살아가게 하는 힘, 그게 뭘까,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소설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그리고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워낙 독서 인구가 줄어서, 소설을 읽는 게 특수한 경험이 되는 시절인 것 같은데, 그런 신나는 경험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지셨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고이기를 기다리면서, 차분히 단편소설을 써나가려고 합니다.


취재: 신양희(북DB 객원기자)
사진: 기준서(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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