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타캐스트 책읽는곰 임선희 대표
"시작을 함께한 작가들과 꾸준히 책을 내면서 함께 늙어갈 생각을 하면 정말로 가슴이 뛰어요."
어린이 그림책 전문 출판사 ’책읽는곰’ 임선희 대표의 말이다. 직원 네 명과 함께 10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것이 어느덧 10년. 당시엔 생소하기까지 했던 신생 소규모 출판사와 대형 출판사와의 승산 없는 경쟁 속에서도 임선희 대표가 확신했던 것은 ’콘텐츠의 힘이었다. 국내 창작 그림책을 엮은 ’그림책이 참 좋아’ 시리즈는 역시 이런 믿음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이 시리즈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작품들은 모두 ’책읽는곰’에서 첫 발을 뗀 작가들의 데뷔작으로 유명세나 전작의 흥행을 기준 삼아 출간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가‘가 판단의 근거가 된다.
"책은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출판사가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기준은 없어요. 저희의 역할은 작가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창작자의 삶이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믿는 임선희 대표는 함께 시작하는 작가들이 좋은 사람들이기에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리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가 함께 오랜 시간 늙어가며 책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꿈꾼다는 임선희 대표에게 소규모 출판사로서 버텨온 지난 10년의 변화와 최근 침체된 유·아동 분야에 대한 견해,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기대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선희 대표는 줄곧 책과 작가, 인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Q 지금 가져오신 책들은 의미가 있는 책들을 쭉 뽑아 오신 거지요? ’책읽는곰’의 첫 책인 <연이네 설맞이>도 보이네요.
네, 그렇네요. <연이네 설맞이>는 진짜 의미가 있어요. 저희가 출판사 이름도 없이 10평짜리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지 이제 10년 정도가 됐거든요. 일을 막 시작할 때 우지영, 윤정주 작가님께서 흔쾌히 작품을 쓰고 그림도 그려주신 책이라 저희에게는 더욱 각별하죠. 특히 윤정주 작가님과는 매달 한 번씩 만나면서 지금까지도 굉장히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요.
Q 첫 책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출간 즉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더욱 의미가 컸을 것 같네요.
당시만 해도 소규모 출판사가 많지 않았던 때에요. 대형 출판사들과의 경쟁에서 소규모 출판사가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저희는 ’결국은 콘텐츠다’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었어요. 판매하는 곳을 전 직원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기도 했고요. 그때 이 책을 보면서 다들 하셨던 말씀이 ’나도 내고 싶었던 책이다’라는 이야기였어요. 정말 필요한 책을 내는 게 중요한 거라는 걸 그때 알게 됐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을 다른 사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크고 작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이런 자신감을 주었던 책이기도 해서 굉장히 의미가 깊어요.
Q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책읽는곰’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했어요. 어떻게 탄생한 이름인가요?
이 질문은 많이들 물어보세요. (웃음) 곰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편집자의 모습과 굉장히 비슷하기도 하고 책 읽는 아이의 모습과도 비슷해요. ’곰처럼 만든 이 책이 곰처럼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책읽는곰’을 떠올리게 된 거죠. 함께 일하는 멤버들이 곰 같은 사람들이기도 해요. 네 명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 아홉 명이 되기는 했지만, 창립 멤버는 그대로거든요. 대부분 곰처럼 우직하고 책 밖에 모르는 분들이에요. 저희 ‘책읽는곰’은 그분들의 힘으로 지금까지 10년을 잘 살아온 것 같아요.
Q 편집자로 일을 하시다가 출판사를 설립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림책 전문 출판사를 설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출판사를 만들 때 가장 이상적으로 그렸던 장면이 하나 있어요. 20년 전쯤, 제가 상사 분들을 모시고 업무차 일본 출판사들을 여러 곳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났던 편집자들 대부분이 모두 흰머리였어요. 그만큼 나이가 든 분들이었던 거예요. 당시 제가 30대 중반이었는데 그때 이미 국내 출판업계에서는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50대 후반의 편집자들이 각자 자신이 담당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참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래요. 연륜이 쌓일수록 훨씬 책을 잘 만들 수 있죠. 왜냐면 책 자체가 삶을 농축해서 만드는 것이니까요. 특히 그림책 같은 경우는 삶의 메시지를 농축하고, 농축하고 또 농축해서 엑기스를 담아내는 거거든요. 나이가 들수록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책을 더 잘 만들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책읽는곰’의 모토 중 하나는 ’함께 가자’예요. 작가와 편집자가 서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책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만들고 싶어요.
좋은 책은 결국 좋은 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 등 책에 관여하는 모든 창작자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지만 좋은 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약하게나마 그런 환경을 조성하고 싶어서 이 출판사를 설립하게 됐어요. 다행히도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고 모두 의기투합해서 시작할 수 있었던 거죠.
Q 앞서 ‘책읽는곰’이 설립되었을 때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소규모 출판사가 상당히 증가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좋은 점도 있고 일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실현이 1인 출판 설립의 형식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일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상황 때문에 나온 사람도 많다고 생각해요. 앞서 일본의 사례를 말씀드렸는데, 사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거든요. 나이가 들어서도 자기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소규모 출판사의 증가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 출판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많았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그런 도전을 조금 더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저희는 용기를 가지고 책을 만드는 분들을 언제나 격려하고 응원하지만, 저희도 소규모 출판사이기 때문에 그분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드실지 헤아리게 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Q 작년에는 영국 최대 아동 출판 브랜드인 ’어스본’이 한국 지사 ’어스본 코리아’를 설립해 화제가 됐습니다. 점차 아동 분야에서도 대형 출판사들이 강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책읽는곰’만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처음부터 작가 중심의 책을 만들고 싶었고 한 번 작업한 작가와는 계속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왜냐면 창작이라는 것은 사람의 인생과 비슷하기 때문에 어떨 때는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고 아닐 때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작품들을 꾸준히 내고 싶다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에요. 늘 ‘우리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것을 느끼면서 작가님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면 경쟁력이겠죠.
Q ’책읽는곰’의 주 독자층은 취학 전후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린이 독자들을 위한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차적으로 책은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출판사가 어떤 작품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기준은 없어요. 저희의 역할은 작가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저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을 충분히 책에 담고 싶을 뿐인 거죠. 작가마다 다루고 싶어 하는 것들이 조금씩 다른데요. 예를 들어 최근 <이상한 엄마>를 출간하신 백(희나) 선생님 같은 경우는 ’착한 마법’이라는 판타지를 작품에 담아내고 <너는 기적이야> <엄마가 화났다>를 그린 최숙희 선생님의 경우는 아이와 엄마의 마음에 관심이 많으세요. 그래서 늘 엄마와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책을 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시고요. 작가가 작품으로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조금 더 명확하게 넓혀주는 책, 그리고 주된 독자층인 어린이들을 위한 책. 정리하자면 이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죠.
Q 10년입니다. 독자들과 소통해온 지난 시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변화가 참 많았죠. 10년 전에 출판사를 하려고 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랬어요.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 하지 마라.’ 저는 ’경기가 안 좋으니 제일 밑에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가면 되겠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경기가 더 안 좋네요. (웃음) 지난 10년간 전체적인 출판의 흐름은 안 좋아졌지만, 그와 반대로 그림책 분야는 참 많은 성장을 했어요. 오히려 국제적으로 국내 그림책들이 더 많은 인정을 받게 됐고 그림책 작가들의 인지도도 올라갔고요.
이게 참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시작이 어려워지고 작가들의 삶은 더 힘들어진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콘텐츠는 점점 더 좋아져요. 변화가 어떤 부분에서는 역행하고 있는 거죠. 앞으로의 10년이 그래서 더 중요하다고 봐요. 현재로서는 워낙 그림책이나 어린이 책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잘 견딜 수 있는가가 저희뿐만 아니라 출판계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도서 정가제 시행 이후 유·아동 도서의 분야가 조금 더 침체된 것이 사실입니다. ’콘텐츠는 점점 좋아진다’라는 의미와는 또 다른 양상인데요.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우선 도서 정가제에 대해 저희는 찬성해요. 그런데 현재는 과연 ’올바른 도서 정가제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나’라는 생각이 참 많이 들죠. 그것에 대한 여파로 우선은 책이 정말 안 나가요. 저희뿐만 아니라 많은 출판사들이 위기에 직면해있고요.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위기감을 다들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도서 정가제가 조금 더 엄격하게 시행되어야 하지 않나 싶고, 출판사와 책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칼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요.
Q 말씀하시는 ’올바른 도서 정가제’란 출판업계를 위한 제도로서의 역할 말씀이신가요?
아주 미묘한데요. 출판사들만을 위한 도서 정가제가 아니에요. 하나하나 모두 설명드릴 수는 없지만, 지금은 도서 정가제라는 이름 아래 도서 정가제가 아닌 것들이 시행되고 있거든요. 정부 시행에 의해 이루어지는 거지만 정부와 현장에서 느끼는 ’도서 정가제’의 갭은 상당해요. 현장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들어서 올바른 도서 정가제가 잘 정착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제대로 안착되지 않으면 저희 출판계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고 출판사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많은 작가들도 어려울 거예요.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문화적인 손실이죠. 책은 문화의 근간이에요. 책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문화적 측면에서 올바른 도서 정가제가 잘 뿌리를 내리고 정착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Q 1년에 보통 25종의 책을 출간하신다고 하시는데, 수많은 출간 도서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작품들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하나를 콕 짚어내기는 어려울 것 같고, 저희 출판사를 통해 첫 선을 보이는 데뷔작들이 참 특별해요. ’그림책은 참 좋아’ 시리즈의 3분의 1정도가 작가분들의 데뷔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미래에는 중견 작가가 되실 거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작가들이잖아요. 시작을 함께하는 작가들과 앞으로 꾸준히 책을 내면서 늙어갈 생각을 하면 정말로 가슴이 뛰어요. (웃음)
Q 보통 출간을 고려할 때 작가의 유명세나 전작의 흥행을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책읽는곰’에서는 어떤 기준을 갖고 계신가요?
전시를 보고 저희가 직접 연락드리는 분도 있고 출판사 앞으로 투고를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방법이야 어떻든 저희가 판단하는 근거는 지금 당장의 모습보다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 일할 수 있는가’라는 거예요. 책도 인연인 것 같아요. 될 것 같은 분과도 안 될 경우가 있고 ’될까?’ 했던 분들과 다음 책 또 그다음 책을 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운명처럼 작가들을 한 분 한 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Q 사람들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오랜 출판업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겠죠?
모든 일은 인연이죠. (웃음) 함께하는 저희 멤버들이 추구하는 삶의 지향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희가 계속 같이 지내다 보니 다들 비슷해요. 보는 눈이나 생각하는 것, 회사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요. 각자의 스토리는 다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인연으로 묶여서 이 울타리를 지키고 있네요.
Q 2016년도에 <이상한 엄마> 외에 한 해 출간을 얼마나 준비 중이신가요?
평균적으로 1년에 25종 출간을 생각하고 있고, 올해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마케터와 편집자들이 정말 중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웃음)
취재 : 임인영(북DB 기자)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