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 조미영 작가의 소통법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해?> 작가 조미영 인터뷰

by 인터파크 북DB

회사 가는 엄마.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매일 아침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한바탕 울음바다를 만들어내는 아이와 직장맘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던 <회사 괴물>의 조미영 작가가 새 책을 냈다. 이번에는 오빠를 질투하는 둘째아이의 심리를 콕 짚었다. 제목은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해?>. 종종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난감한 질문을 던지는 부모에게 정작 아이들은 묻지 못한다. “엄마아빠는 내가 더 좋아, 오빠가 더 좋아?”라고. 혹시라도 내가 아니라는 답을 들을까봐.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해?>는 다른 형제자매보다 더 사랑받고 싶은 이런 아이의 속마음이 오롯이 드러나는 그림책이다. 조미영 작가는 책에서 “중학생 오빠보다 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유치원생 딸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썼다”고 밝혔다. <회사 괴물> 역시 회사에 출근하려는 그와 떨어지기 싫어하던 딸을 보면서 쓴 그림책이다. 보통 부모라면 그냥 흘려버릴 일을 이야기로 잡아낼 수 있던 건 그가 기자이기 때문. 현재 국제 통신사인 ‘로이터통신’에서 일하고 있다.

비가 오는 늦가을날, 점심시간에 조미영 작가를 찾아갔다. 그는 인터뷰 후 바로 취재를 간다며 커다란 노트북 가방을 어깨에 메고 또 다른 서류 가방을 든 채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세상 무엇도 뚫지 못할 갑옷을 입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직장인이자 엄마로서 늘 전쟁터에서와 같은 일상을 살고 있을 그가 동화작가가 된 사연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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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자 일도 바쁠 텐데 어떻게 동화까지 쓰게 됐는지 궁금해요.

중2 아들과 6살 딸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첫째 때도 직장생활을 했는데 유독 둘째가 아침마다 제가 회사에 가려고 하면 우는 거예요. “왜 울어? 엄마 회사 갔다가 밤에 올 텐데…” 달래면서도 아이 입장을 생각해봤어요. 아이는 회사가 뭔지 알까. 엄마가 사라지면 못 볼 것 같다는 분리불안이 크겠다 싶었어요.

제가 고민하니까 주변에서 생활동화를 많이 읽어주라고 해요. 그런데 손 닦기, 고운 말 쓰기 같은 동화는 많은데 엄마가 회사에 가고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는 동화는 많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이상하다. 일하는 여성들이 많은데 왜 그런 책이 없을까? 그럼 내가 한번 써볼까?’ 했다가 진짜 썼네요.

Q 기사와 그림책은 쓰는 방식이 달라서 적응하느라 힘들었겠어요.

다르더라고요. 속보가 중요한 통신사에서 일해서 하루에 기사를 몇 개씩 쓰기도 하는데, 그림책은 짧게는 1년 반에서 2년씩 걸리더라고요. 처음에는 계약을 한 후에도 시간은 가는데 출판사에서 계속 “이런 문구를 생각해보세요” 하는 식으로 말해서 제가 말씀드렸어요. “제 글이 마음에 안 드시면 그냥 계약금 돌려드릴게요.”

그러니까 출판 담당자분이 막 웃으시면서 “원래 동화책은 오랜 시간 작업하면서 가장 정제된 언어를 만드는 거예요”라고 해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과연 그럴까? 나도 나름 언어를 중시하는 일을 하는데…’라고 의아해했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림으로 설명된 단어는 필요없다고 해서 빼기도 하고 아이한테 읽어주면서 단어를 바꾸기도 하면서 ‘아, 이 과정이 다 필요했구나’ 싶더라고요.

Q 엄마가 회사에 가는 걸 회사 괴물에게 잡혀간다고 생각한 <회사 괴물>의 발상이 기발해요.

<회사 괴물>이 나올 때 둘째가 네 살이었어요. 아침마다 사라지는 엄마를 아이는 어떻게 이해할까 고민하다 괴물을 생각해냈어요. 진짜 고민은 ‘회사라는 공간을 어떻게 표현할까’였어요. 일을 하면 어려움도 있지만 보람도 있잖아요. 엄마가 일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뭐에 비유할까, ‘아이에게 즐거운 곳이 어디지?’ 생각하니 놀이터가 떠오르더라고요. 또 회사 선배들이 ‘로이터’를 우스갯소리로 ‘놀이터’로 말하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놀이터로 연결했어요.

“괴물 같은 회사가 엄마를 잡아갔어?”
예솔이가 물었어요.
“아니야. 회사는 괴물이 아니고,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곳이야.”
엄마가 웃으며 말했어요.
“일이 뭐야? 엄마는 왜 일을 좋아해?”
예솔이는 궁금했어요.
“일은 예솔이가 재미있게 노는 것과 비슷해.
예솔이는 놀이터에 가서 놀지? 엄마는 회사에 가서 일해.
예솔이는 노는 거 좋아하지? 엄마도 일하는 거 좋아해.”

<회사 괴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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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성 많은데 왜 엄마의 일에 대한 그림책이 없을까’


Q 책이 나온 후 둘째에게 읽어주니 엄마를 좀 이해해주던가요?

책을 읽어주니까 조용히 생각하더라고요. 이후에 약간 이해해주기도 했어요. 물론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소용없죠. 아이이다 보니 책으로 다 해결이 안 돼요.

Q 이번 책도 아이의 발랄함이 잘 나타나 있어요.

큰애는 동생이 어리니까 귀여워하는데 둘째는 오빠를 질투해요. 태어나 보니 오빠라는 존재가 있는 거예요. 자기는 잘 모르는 얘기를 하면서 엄마랑 오빠가 웃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만날 “엄마는 나는 하늘만큼 사랑하고 오빠는 땅만큼 사랑해야 돼”라고 그래요. ‘재미있네. 아이에겐 하늘이 커 보이고 땅이 작아 보일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럴까?’ 그렇게 구상이 시작됐죠. 또 첫째가 둘째를 질투하는 책은 많은데 둘째 입장을 그린 책은 많지 않기도 했고요.

Q 예솔이가 엄마한테 자기는 하늘만큼, 오빠는 땅만큼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가 하늘과 땅 중 어디가 큰지 동물들한테 물어보러 가는 것도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동물을 친구처럼 여기잖아요. 어른들한테 묻는 것보단 아이들에게 친근한 존재가 낫겠다 싶었어요. 동물을 등장시키니까 동물들의 전형적인 캐릭터도 연상됐고요. 돼지는 먹을 걸 좋아하니 “땅은 넓어서 먹을 게 많아”라고 하는 거고, 약삭빠른 이미지인 여우는 꾸미는 걸 좋아할 것 같아서 꽃이 많은 땅이 더 크다고 말하죠. 올빼미는 현자의 이미지와 잘 맞아서 모두를 아우르는 답을 하는 존재로 출연시켰어요.

“엄마가 저보다 오빠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오빠를 땅만큼 사랑하고 저는 하늘만큼 사랑하거든요.
그런데 모두 땅이 하늘보다 더 크고 좋대요.”
예솔이는 훌쩍이며 말을 계속했어요. …
올빼미 할머니가 말했어요.
“내가 하늘 높이 날아가 보았는데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단다.
땅은 넓어서 좋지만 하늘은 높아서 좋단다.”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해?> 중에서


Q 기자여서 흘려버리기 쉬운 아이 말을 잡아내 동화를 쓸 수 있었던 거겠죠.

그런 것도 있지만 둘째여서 가능했죠. 첫째 키울 때는 저도 다른 엄마들처럼 정신이 없었어요. 일도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까 육아 스트레스도 있고. 그런데 둘째는 한 번 키워봐서인지 아이 시선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둘째가 또 여자아이에다가 표현력도 뛰어난 편이에요. “엄마, 마음에서 눈물이 났어. 마음이 펑 터지는 것 같아” 같은 말을 해요. 그럼 저는 ‘왜 저런 표현을 쓰지?’ 생각하는 거죠. 또 직장생활을 하니까 집에 오면 아이들 건강 상태나 말을 예민하게 살피는 편인데 그런 것도 도움이 됐어요.

Q 아이 둘의 나이 차가 커요. 둘째가 태어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네요.

둘째는 갖고 싶어도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중간에 싱가포르 본사에 가서 일하기도 하고 MBA 공부한다고 프랑스에 잠깐 머물기도 했거든요. 중간에 아이가 두 번 잘못된 적도 있어서 ‘내가 애를 가졌다가 또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선물 같은 아이가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지금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있죠.

Q 큰애가 둘째를 질투하지는 않나요?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살짝 질투하기도 했어요. 오랫동안 외동아들이었으니까. “내가 자다가 방에서 나오면 식구들이 조용한데 왜 애기가 나오면 ‘와~’ 이래?”라고 불평한 적도 있어요. 할아버지가 “우리 예솔이 천사네” 하면 “그럼 나는 악마에요?”라고 묻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는 삼촌 같은 느낌이에요. 유치원에서 동생 좀 데려오라고 한 적이 있는데 둘째 친구들이 “오빠야, 아빠야?”라고 물었대요. 엄마아빠가 동생을 혼낼 때면 “왜 아이가 그러는 걸 이해 못해?” 하면서 동생을 변호해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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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속에는 항상 너희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Q 두 동화가 모두 둘째가 주인공인데 첫째를 염두에 둔 작품이나 다른 책 계획은 없나요?

생각하고 있는 스토리는 있어요. 첫째를 키우면서 엄마 역할이 처음이니까 다 서툰 거예요. 이런 걸 학교에서 가르쳐주면 좋았을걸. 이런 바람에서 시작한 동화를 써볼까 싶은데 성장기소설이니까 그림동화보다 품을 더 많이 들여야 하잖아요. 가능할까 걱정이 되긴 해요.

둘째는 뭘 하자고 하면 “왜 엄마 마음대로 해야 돼?”라고 반문하는데 그걸로 써볼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번 책 내기 전에도 아이들이 핸드폰을 붙들고 사는 문제나 친구 관계를 다룬 동화를 쓰기도 했는데 그건 출판사에서 퇴짜 맞았어요.

Q 그렇게 퇴짜 맞고 그러면…

기분이요? 좋지는 않죠. 기사도 많이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기사를 써야 하거든요. 기사를 퇴짜를 맞는 경우도 있는데 그게 쌓이면 저 사람은 기사에 대한 판단력이 없지 않냐는 평가를 듣기 때문에 조심해야 해요. 책도 퇴짜 맞는 게 좋은 경험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아, 이쪽에서는 이런 시각으로 동화를 만들어내는구나’라고 배워요.

회사 생활에서도 잘나갈 때보다 힘들었을 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큰애한테도 많이 넘어져봐야 한다고 얘기해요. “성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해? 네가 보기엔 계속 1등 하는 게 성공 같겠지만 그렇지 않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서 다시 가는 사람이 성공하는 거야”라고 하죠.

Q 인생의 진리가 담긴 말이네요.

살다 보면 굽이굽이 힘든 일이 많죠. 어떤 사람은 적게 힘들고 어떤 사람은 많이 힘든 건 아니죠. 그러니 자기 성격에 맞춰 살아가는 게 제일 좋은 답인 것 같아요. 그래야 보람도 느끼고 행복해요.

저도 사람 만나고 글쓰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어요. 집에 있으면 일 생각나고 회사에 있으면 애 생각나죠. 오후 4~5시쯤 되면 둘째가 전화를 해와요. 유치원 갔다 온 얘기를 이러쿵저러쿵 하죠. 그러면 계속 들어줄 수 없으니까 “엄마, 사장님이 혼내려고 해. 빨리 가야 돼.” 하면서 전화를 끊거든요. 일과 육아가 섞여 있어서 손해 보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그럴 때면 천천히 가더라도 가족과 함께 순리에 맞춰 가자고 받아들이려고 해요.

Q 아이에겐 자기 이름이 들어간 책이 직장생활로 같이 못 있는 엄마의 빈자리를 메워줄 좋은 선물이겠어요.

아직 어려서 책에 자기 이름이 있다는 생각은 못하더라고요. 그냥 엄마가 일을 해서 계속 같이는 못 있지만 엄마 마음속에는 항상 너희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랑해’라는 말을 넣었어요. 또 아이들은 ‘사랑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도 또 듣고 싶어 하더라고요. 어른도 마찬가지겠죠. 저는 예솔이 이름을 넣었지만 독자분들은 자기 아이의 이름을 넣어 아이에게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랑해’라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힐링이 되면 좋겠어요.

Q 동화를 쓴 보람을 느낄 때가 있을 텐데요.

기자라는 직업이 기사를 읽은 독자들이 반응을 보낼 때 기분이 좋은데 책도 그렇더라고요. 특히 어린이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이 좋은데 어떤 친구는 엄마한테 <엄마는 누구를 더 사랑해?>를 수십 번 읽어달라고 했대요. <회사 괴물>을 남자 선후배에게 선물한 적도 있는데 아이가 책을 읽고선 “아빠도 회사 괴물이 잡아가는 거야?”라면서 회사에 가는 걸 좀 친숙하게 받아들인대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쁘죠.

Q 인세 중 일부를 미혼모 가정과 조손 가정을 돕는 일에 쓴다고요.

생각지도 않게 달란트를 발견해 책을 냈잖아요. 그래서 기쁜데, 저처럼 원하고 선택할 수 있어서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하는 분도 있으니까 돕고 싶었어요. 저는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어서 육아의 많은 부분을 도움받고 있는데도 힘들 때가 많은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분들은 정말 힘들겠더라고요.

그렇게(기부) 하니까 남들한테 책을 권할 때도 맘이 편해요. 제가 수익을 전부 챙긴다고 하면 지인들한테도 책 썼다고 말하기 불편할 텐데 기부도 있으니까 “좋은 일 하는 거니까 책 많이 홍보해주세요”라고 말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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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예솔이가 실제 둘째를 닮았냐고 묻자 조미영 작가가 핸드폰을 꺼냈다. “자식 자랑할 때는 돈 내고 해야 한다던데…” 하면서도 둘째 사진을 여러 장 보여줬다. “그림 작가님께 예솔이 사진을 보여준 적이 없는데 비슷하게 나와서 놀랐어요. 특히 더 어렸을 때 두건 쓰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표지 사진이랑 정말 닮았어요.” 아이 얘기를 하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천생 엄마다.

그러면서도 회사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더 일에 매진해 한국인 최초로 회사에서 주는 ‘올해의 특종상’을 받았다는 말을 할 때는 프로페셔널이 느껴졌다. 직장맘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조미영 작가는 ‘그림책을 통한 소통’이라는 아무나 갖기 힘든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진 : 신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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