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강연 뒷이야기 1]
※ 2016년 상반기 카오스 강연 '뇌가 보는 뇌' 10회 강연 중, 담당 기획자가 유독 기억이 나는 강연이었던 1강과 5강을 골라서 뒷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뒷이야기는 1강 '뇌 : 신비한 세계로의 초대'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과학적이진 않습니다. - 필자 말
올 2월, 2016년 상반기 카오스 강연 '뇌가 보는, 뇌'의 신청 접수를 시작했다.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반응이 왔다. 평소보다 접수 속도가 확연히 빨랐다. '이번 주제가 좋은가봐', 재단 직원들은 처음엔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점점 늘어난다. 즐거움과 우려가 반반이다가, 신청 속도가 너무 빨라서 우려가 더 커질 때쯤 대책회의를 열었다. (세상에 이런 일로 대책회의를 열다니!)
접수가 시작되면 기존 수강생들에게 안내 메일을 먼저 보낸다. 기수강생들에게 유리한 구조였다. 매번 강연을 들으시는 분들은 카오스 강연에 대한 애정이 높다는 의미이니, 이분들에겐 너무나 감사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분들에게만 무료강연 수강 혜택을 드리는 것은 재단이 추구하는 '과학의 대중화'에 맞지 않았다. 결국 이미 접수한 분들은 그대로 두되, 회의 이후부터 접수하시는 분들은 선착순 접수가 아닌 무작위 선정 방식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접수결과 10강 모두 강연마다 천 명이 넘는 인원이 신청했다. 우리는 접수결과 분석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착각에 빠졌다.
1. 요즘 한국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여기에 카오스재단이 기여하지 않았을까?)
2. 카오스재단이 꽤 알려졌다.(설립 1년 만에!)
어쨌든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1강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전문 사회자가 아닌 과학자를 사회자로 섭외했다. 패널토의에서 심도 깊은 이야기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전문 사회자가 사회를 맡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안한 요소였다. 과연 매끄러운 진행이 될지.
강연 며칠 전에 1~4강 사회를 맡을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과 만났다. 정말 바쁜 분인데 전화 상의만으로는 불안해서, 한번 만나달라 요청을 했다. 저녁 6시 50분 해가 질 무렵,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는 윤신영 편집장을 재단 사무실이 있는 건물의 카페테리아에서 만났다. 많은 이들이 퇴근을 해서 텅 빈 카페테리아에서 패널토의 주제 등이 담긴 사전대본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 40분 정도 찬찬히 강연 중에 체크해야 할 사항을 검토한 후 우리는 드디어 서로 안심을 했다. 그도 첫 진행이라 내심 불안했던 상태였다. 대화가 끝난 후 윤신영 편집장이 다시 일하러 사무실로 돌아간다고 말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1강 강연자는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단장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우리나라에서 뛰어난 과학자들만 모여 있는 곳인데, 그는 그 중에서 뇌과학 연구를 이끄는 단장이다. 학계에서는 대표적 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학자를 섭외하여 대중강연을 이끌었다는 생각에 재단 직원들은 목에 힘을 주었다. 강연 한 달 전에 열린 강연자 모임에서도 신희섭 단장, 국가과학자 강봉균 서울대 교수를 비롯 뇌과학계 대표 석학들이 직접 와주어서, 강연을 준비하면서도 뿌듯하고, 즐거웠다.
그러나 우리의 자부심과 착각은 강연 시작과 동시에 사라졌다. 강연 시작 직전 '웅~' 하는 이상한 기계 소리가 들렸다. 듣기 싫은 커다란 소음이었다. 원인을 몰라서 우리는 당황했다. 그러다 강연 시작 시점에 터져버렸다.
우주는 크게 '빵'(빅뱅) 하고 터져서 우주가 되었다는데, 카오스재단 강연장의 수천만 원짜리 빔프로젝터도 그렇게 터져버렸다. 그렇게 내가 신청인원 좀 많아졌다고 자부심을 가졌던 '착각하는 우주'(이번 강연 7강의 제목은 ‘착각하는 뇌’였다. 우리는 착각을 일으키는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한순간에 꺼져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하는 우주'가 생겼다.
우주의 빛은 138억 년 전에 빵 하고 터진 후에 곧장 생긴 것이 아니다. 38만 년 후에야 죽처럼 걸죽했던 플라즈마 상태의 우주가 투명한 우주로 바뀌면서 빛이 생겼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란 말은 과학적으론 정확하지는 않다. 태초 38만 년 동안 우주는 빛 하나 없는 암흑이었단 의미. 그렇게 우리의 스크린도 암흑에 둘러싸인다. 우리의 머리도 새까매져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원래 전체 10강 강연 중에서 1강에 가장 공을 들인다. 우리도 그랬다. 참여자들도 많으니까 뇌 관련 멋진 영상도 제작해놓았고, 패널토의 시간의 토의 주제도 3주 전에 미리 다 마련을 해놓으면서 멋있는 말로 준비해놓았다. 강연 직전에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끝나서 AI를 패널토의 주제로 다룰지도 패널들과 고민했다. 강연 날에 이런 고민이 다 소용없게 될 사건이 발생할 줄도 모른 채.
강연 당일에도 평소보다 일찍 강연장에 도착해서 준비를 했다. 재단의 실무 직원은 나를 포함해서 겨우 세 명. 매주 260명가량 참가하고, 수천 명이 생중계를 보는 강연 행사를 겨우 세 명이서 준비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강연 당일 전후 YTN, 네이버, 인터파크씨어터 팀이 우리 재단의 강연을 도와준다. 무료로 진행되는 공익사업에 참여한다는 보람이 있어서 다들 실리를 따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각계 전문가 여러 명이 열심히 준비했으니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 더군다나 카오스 강연 리허설은 네이버 생중계, YTN 중계방송 관계로 두 시간 전에 하는데, 리허설 때도 분명 문제가 없었다. 이상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화면에 이상한 모양도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강연 시점에 맞춰서 갑자기 빔프로젝터가 꺼져버렸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한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은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는 이론)은 내 뇌 속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 시간은 균일하게 흐르지 않는다. 정말 충격을 받는 순간엔 시간도 느리게 간다. 나는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거의 멈추었던 그 순간.
인터파크씨어터 팀과 재단 관계자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아마 가장 당황스러웠던 사람은 강연자 신희섭 단장이었을 것이다. 파워포인트 강연자료를 보지 못하니 강연을 못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신희섭 단장은 달랐다. 강연자료도 없이 즉석에서 너무나 강연을 매끄럽게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유머까지 있었다. 연륜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진행된 패널토의 토론자인 이창준 KIST 박사와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그리고 윤신영 과학동아 편집장도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환스런 순간인데도 윤신영 편집장의 편안한 진행도 돋보였다. 이들 덕분에 강연은 큰 사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무사히 끝났다. 끝나고 받은 설문조사지에 재단에 대한 질책이 컸던 반면, 다급한 사태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강연을 무사히 진행한 강연자와 패널 등에 대한 칭송이 가득했다. 지금도 신희섭 단장님과 1강 패널, 진행자, 그리고 강연을 들으러 온 참석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늦었지만 강연이 끝나고 빔프로젝터 두 개를 더 마련했다. 강연 매뉴얼도 마련했다. 앞으로 카오스재단의 시간에 다시는 상대성원리를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기를.
글 : 김수현 카오스재단 팀장 / 사진 : 카오스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