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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터파크 북DB Aug 26. 2016

응급실의 기록자 남궁인 "사망선고 순간은 시적인 장면"

         



교통사고, 말기암, 자살, 심지어는 살인까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 응급실이다.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기록은 소름 끼치는 스릴러가 되고, 비극과 희극이 되었다가 감동 있는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비극과 외면하고 싶은 고통 사이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함께 삶의 가치를 나누려 한 의사가 있다. <만약은 없다>(문학동네/ 2016년)를 쓴 응급의학과 전문의 남궁인. 이 기록은 삶에서 시작하고 죽음으로 끝나는 인간 모두에게 바치는 서사시이다.


Q 책에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고 처음에는 혼란스럽다고 하셨어요. 처음 응급실에 갔을 때 기억나세요? 


하루에 100명도 훨씬 넘는 환자가 오는데, 응급실에서는 모든 분야의 환자를 진료해야 돼요. 그것부터 특수하고요. 또 응급실이 환자가 병원으로 들어오는 통로 같아서 바깥 세상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거든요. 밖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교통사고 환자가 오고, 비가 오면 감전사고 당한 환자가 오는 식이죠. 굉장히 다양하면서 세상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고, 또 많이 죽어나가죠. 의사로서 응급실에 있지만,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같이 겪는 느낌이었어요. 적응하기 혼란스러웠죠.


Q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생사를 다루지 않으면 의사로서 뭔가 잃어버리는 느낌이라, 죽음을 직접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망선고는 의사 개개인의 판단에 맡겨져요. 하지만 그 선고 시점 전이나 후나, 환자의 상태는 사실 크게 차이가 없거든요. 이미 죽음이 거의 확정적인 경우도 많고요. 하지만 제 입에서 사망선고를 하자마자 보호자들은 이제 환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됩니다. 그 순간이 저에게는 아주 시적인 장면이었어요. 이것이 환자의 삶을 분절시키는 순간이나 하는 생각이 저에게 너무 감성적으로 다가왔고, 그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Q 응급의학과에서 '목격한 사실'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기록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응급실을 경험했을 때, 사람이 정말 이렇게 다치고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서 힘들었어요. 죽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응급실에 있으면 죽음이 너무 당연해지거든요. 무뎌지지 않고, 잊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록을 시작했는데, 응급실 경험을 흥미롭게 여기고 제 글을 기다리는 사람도 생기더라고요. 더 치열하게 쓰게 됐어요.


전 기록을 당시 감정을 전부 되살려서 다시 체험하는 식으로 몰입해서 치밀하게 써요. 당시에는 경황도 없고 정신없이 지나간 순간들을 재현하다 보면 저를 몰아세우게 돼요. 그 과정이 힘들었어요. 어떤 에피소드는 너무 울음이 많이 나서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울음이 멈추면 다시 쓰고, 또 울다 다시 쓰고. 그런 게 힘들었어요.



응급실 의사가 쓴 삶과 죽음의 기록... "의사는 죽음 다루는 프로"


Q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자살한 남성의 이야기가 선생님께 상징으로 남아 있다고 하셨는데, 많은 의사들의 자신이 돌보던 환자들의 죽음에 괴로워할 것 같아요. 


물론 환자의 죽음이 힘들고 무거워요. 그런데 의사는 죽음을 다루는 프로거든요. 그런 일을 계속 겪을 수밖에 없죠. 감정은 힘들지만 냉철하게 죽음을 다루고 바라봐야 해요. 나중에 혼자 가슴 아파하더라도 응급실에선 감정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잘 대처하려고 노력해요. 책을 읽은 분들이 ‘잔인한 장면인데 건조하고 묵묵하게 기술했다’고 하시는데, 실제로 제가 한 말들이에요. 그게 의사 입장에서 기술한 거고, 냉철할 수밖에 없죠. 


Q 선생님이 진료한 환자가 사망했을 때 죽은 환자와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고 하셨어요. 어떤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환자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분명히 생각했고, 확신했어요. 처치가 잘못되지도 않았고 실수도 없었는데 결국은 죽었거든요.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살릴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부터요. 사망선고 했는데도 떠날 수가 없어서 환자 옆에 주저앉았어요. 그 사람은 들을 수 없지만 계속 미안하다고 했어요. 매번 환자가 사망할 때마다 그러는 건 아니지만, 환자의 죽음을 납득하기 어렵거나 안타까울 때에는 그렇게 눈을 바라보고 그러죠.


그래서 전 실수하지 않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배운 현대의학을 부족함 없이 환자한테 적용했는데도 사망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만약’이 생겨요. 그 때 내가 그 실수 안 했더라면, 그걸 했더라면,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힘들어지거든요.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감정보다 내가 가진 환경과 시스템을 전부 파악하고 환자한테 모두 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요. 


Q 의사로서 환자를 살리고 싶고, 실수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있는데, 환자와 생각이 다를 때가 있을 것 같아요. 환자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하세요? 


사람들이 당장 해결해야 될 게 있어서 감적이 격앙돼서 오는 데가 응급실이거든요. 여기도 결국은 사람을 다루는 일이라서 감정적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요. 환자나 보호자가 불편해하고 궁금해하는 점, 꼭 듣고 싶어하는 것도 있지만 의사의 입장도 있잖아요. 그런 걸 얘기하고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해요.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교육도 하거든요. 그것도 치료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고 의사가 하는 일이에요. 의사로 일한 7년은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고, 그걸 이성적으로 전달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더라고요. 



살릴 수 있다 확신했는데... 환자 옆에 주저앉아 "미안합니다"


Q 의식 없이 이틀 내내 경기를 일으키는 할머니와 그 가족들 에피소드가 나오잖아요. 존엄사와 관련한 갈등 상황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할머니 이야기를 가상의 결론(가족들 바람대로 환자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호흡기 전원을 차단하는 장면)으로 마무리한 이유가 있나요? 


그런 상황이 되게 많아요. 그리고 한국은 존엄사와 관련해서 매우 보수적이에요. 최근에는 용납해가는 추세긴 하지만요. 그런데 존엄사 인정하고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생명줄인 코드를 끄는 건,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의학 기본에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또 환자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것도 의사 일이거든요. 그 희망을 놓아버리는 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존엄사를 100% 찬성한다고 절대 얘기 못해요. 


그렇지만 정말 끔찍한 경우가 있거든요. 정말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분들을 보면 무엇 때문에 살아 있나, 솔직히 그런 생각 들 때가 있어요. 그런 현실과 의학적인 논의 사이에서 현명한 지점을 찾고 싶은 거죠. 가상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면서까지 그렇게 쓴 건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논의를 해서 행복권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에요.


Q 환자들이 생사를 다투는 공간이지만, 응급실에 늘 고통과 비극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재미있고 어이없는 일도 많을 텐데요. 기억나는 게 있으면 들려주세요. 

                      

웃길 때는 정말 웃겨요. 항문에 셰이빙크림 통이 들어간 고등학생 이야기나 성기 골절된 남성 이야기는 여러 경우를 모아서 한 사람의 이야기로 만든 거예요. 그 사람이 드러나면 안 되니까.(웃음) 그런 일들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지만 재미있죠. 안 와도 되는데 오는 분도 많네요. 명절에 할머니 모시고 오는 경우도 흔해요. 다른 사람한테 자신이 할머니를 얼마나 아끼는지 보여주고 싶은 거죠. 여자친구가 넘어져서 살짝 긁혔는데 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응급실에서 사람들은 완전히 날 것의 행동을 하고 날 것의 성격을 보여주거든요.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죠. 


Q 마지막으로 낯선 응급실이라는 공간을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저는 스스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 역량이나 추구하는 건 다 다를 수 있지만, 자기를 허물고 절박하게 쓴 글이 좋거든요. 그런데 제 책도 그런 느낌이 나는 것 같더라고요. 또 응급실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장면이나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전달받을 수 있게 대부분 일인칭으로 썼어요. 독자들이 응급의학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게 썼으니까 그렇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배에 기름이 낀 돈만 밝히는 안경 쓴 중년 아저씨.' 그는 사람들이 의사를 떠올릴 때 그리는 이미지가 그렇다고 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편견일 뿐이라고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나 해방촌 아주 작은 서점에서 만난 의사 남궁인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안경도 쓰지 않았고,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솔직하고 소탈했으며 유머가 있었다. 아마도 환자의 병과 죽음과 삶을 그렇게 마주해왔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앞으로 쓰고 싶은 게 너무 많다던 그의 이야기가 얼른 듣고 싶어졌다.



사진 : 남경호(스튜디오2M)

취재 : 정윤영(북DB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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