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가자
마음을 차분하게,
머리를 식히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는 에세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친구와 책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느덧 4년 넘게 아침 독서를 하고 있지만, 꾸준히 지속한 것은 아니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지식 열등감이 정보 습득을 목적으로 책을 읽게 한다. 그래도 읽다가 머리가 너무 지치면 좀 더 가벼운 지식의 책으로 쉬어주곤 하는데,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그건 진짜 머리를 식히는 게 아니라며 나에게 책 한 권을 선물했다.
효율적인 정보 습득이 우선인 나에게 에세이는 그닥매력적인 분야는 아니었는데, 머릿속을 가득 채워 답답함을 느낀 상태에서 읽는 에세이는 꽤 매력적이었다. 걷다가 살짝 땀이 나던 찰나에 부는 시원한 바람 같다. 책 제목처럼 정말 ‘산책’ 같은 책이다.
알고 보니 이 책은 제목이 끝말잇기로 구성되어 있다. 10명의 작가가 두 개의 낱말로 제목을 만들고, 그 제목을 이어서 끝말잇기를 하고 있다.
커피와 담배 - 담배와 영화 - 영화와 시 - 시와 산책(내가 읽은 책) - 산책과 연애 - 연애와 술 - 술과 농담 - 농담과 그림자 - 그림자와 새벽 - 새벽과 음악, 이렇게 총 10개의 책이 연결되어 있다. 재미있다.
책 속에는 작가의 어린 시절과 일상, 인생을 살며 느끼는 소소한 생각들을 담았다. 문득문득 기억에 남는 문구들을 주관적 책갈피에 가볍게 담고 글을 쓰며 또 한 번 쉬어간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뭉클함을 기억하고 싶어 책갈피를 적기 시작했는데, 내가 담은 구절이지만 나중에 보면 '왜 이 문구를 기억하고 싶어 했을까?' 의아할 때가 가끔 있다. 확실히 책의 맥락 속에서 문장을 보는 것과 그냥 문장만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어느새 기억이 흐려져 문장만 보고 그때의 뭉클함을 다시 떠올리기 힘들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관적으로 책갈피를 담고자 한다.
겨울을 겨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한 듯해도, 돌이켜보면 그런 시선을 갖지 못한 적이 더 많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행복하기 싫다’는 내 말은 정확히는 ‘행복을 목표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승진, 결혼, 내 집 마련 등과 동의어로 여기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무서워한다. 순서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늙는다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생각해왔다. 서른과 마흔의 나는 궁금하지 않은데, 일흔 즈음의 내 모습은 보고 싶었다. 중간의 시간을 다 살아내는 일이 막막하기만 해서, 끝을 떠올리길 버릇했는지도 모르겠다.
대개 서른, 마흔, 예순 같은 나이에 큰 의미를 두고 ‘꺾인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삶을 꺾이게 하는 것은 그보다는 ‘사건(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몸의 관절이 오래 쓰여 닳듯, 마음도 닳는다. 그러니 '100세 인생'은 무참한 말일 뿐이다. 사람에게는 100년 동안이나 쓸 마음이 없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