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엔 서로 다른 두 명의 선생이 등장한다.

by 우연양

이 글은 드라마 '더 글로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에 시청할 수 있는 더 글로리. 학창 시절 심각한 학교폭행의 피해자가 십 수년동안 복수를 위해 준비를 하고 그 극을 보여주는 드라마.

주인공인 학폭의 피해자 문동은에게는 두 명의 선생이 등장한다.

한 명은 피해자인 동은을 도와주려고 하는 양호선생님.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오히려 피해자를 감싸고 동은이 문제아라고 비난하는 담임선생. 그 두 사람의 미래는 또 많이 다르다. 양호선생의 경우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그만둔 생태이며, 담임선생은 교직에선 물러났어도 권위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두 사람의 결말은 또 다르겠지만 오히려 이익을 위해서 악행을 일삼는 경우가 사회적으로 힘이 남아있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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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신고하니 되려 잘못을 나무라는 담임선생과 학폭에 처한 상황을 확신하고 도와주려는 양호선생


만약에 문동은의 담임선생이 가해자를 감싸기보다는 동은을 감싸고 따뜻하게 대해줬다면, 문동은에게는 복수극이 탄생했을까? 어쩌면 탄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극에서 담임선생의 악질은 상상이상으로 더 악질이었고 동은의 복수극의 판을 짜게 만드는 길로 가는 데까지 가장 일등공신을 한 인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피해자를 계속 괴롭히라고 가해자를 오냐오냐, 아니 굽신굽신을 하니. 가해자와 담임선생 간에는 이미 스승과 제자가 아닌 아랫사람과 윗사람으로 나뉘어있다.



필자의 경우 00년대 중후반에 다녔던 학교에서도 꽤나 난폭한 선생들이 많았다.

학생을 엎드려뻗치게 한 이후 허벅지에 피가 나도록 파이프로 때리는 선생도 있었고, 학생의 고통을 즐기는 것인지 다양한 방법으로 회초리를 휘두르곤 했는데, 손가락 말단 부분만을 책상 끝에 얹은 후 회초리로 아주 강하게 내려치는 선생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의 경우 제일 끔찍했던 건 동급생들 앞에서 치욕감을 주는 선생이었다. 그런 선생은 초등학교에도 있었다. 어린 마음으로 아빠와 함께 신발을 사러 갔던 게 기뻤던 나는 일기로 썼지만, 그 일기가 어디가 못마땅했는지, 담임선생은 직접 동급생들 앞에서 나의 일기를 직접 읽으며 아빠의 추억을 비꼬며 웃음거리가 되도록 읽었다.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담임선생의 경우는 나의 글쓰기 문법이 너무 괴상해서 그랬다고 하며 학생 회장으로서 이런 일기를 쓰면 안 되기에 그랬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아빠와의 추억을 그렇게 비웃음을 받아야 하는 건지 지금까지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나의 매학년의 담임선생들은 정말 최악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단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선생인지 허리를 피고 싶은 선생으로 시작해, 학생을 때리며 웃는 선생, 학생과 함께 비행을 즐기는 선생도 있었다. 솔직히 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사람들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충격적인 선생도 있었다. 그 당시엔 수학여행을 해외로 나가는 게 유행이었는데, 일본으로 여행을 갔던 우리는 반대편 호텔에서 우리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계획된 행동처럼 보이는 행각을 했는데, 창문을 열고 보란 듯이 남녀가 성행위를 하며 자신들의 모습을 보란 듯이 하고 있었다. 심지어 성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인만큼 그 남녀들은 벌거벗은 상태로 우리쪽으로 손을 흔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그 남녀보다 기억에 남는 충격의 장면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관심에 못 이겨 그 모습을 관람하는 것을 막는 선생과는 달리 일본여행에 들떠 망원카메라를 챙겼던 담임선생은 그 일본남녀의 모습을 동영상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말 스승의 복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한 명 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선생님의 일반상이었다. 학생의 본분이 무엇인지 아이들의 인성에 나무랄 줄 아는 선생이었다. 어쩌면 3학년인 만큼 진로에 중요한 시기이기에 신경을 써준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학생의 본분과 인성교육에 대한 것은 선생으로서 아주 당연하고 기본적인 행위다.

나에게선 선생님은 그것만으로도 아주 충분했다.

특별할 것도 없다.

그저 가까운 거리에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선생님은 그저 최고의 이상적인 선생님이다. 그것 자체가 능력이지 좋은 대학이나 좋은 고교로 보낼 수 있는 선생이 좋은 선생은 아니다. 나는 얼마든지 삐뚤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일반상의 선생님을 만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엇나가지 않고 계속 공부를 했고 대학도 들어가 매 학기 장학금도 받았다.



사람은 원래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기에, 아무리 다그쳐도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때려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문동은은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기에 복수극의 판을 짜게 되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양호선생님처럼 따뜻하게 다가와 줄 사람 혹은 사회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이 지켜줄 수 있었더라면 그런 판은 짜이지 않았을 것이다. 문동은은 어디까지나 선하고 아픔이 뭔지 잘 아는 아이였기에 끝까지 버텨보려고 했던 아이였고 그런 그녀를 돕고 공감하고 감싸주며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쫓고 응원하게된다. 그렇기에 문동은은 자신이 가해자가 되더라도 자신이 순전히 옳은 행동만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박연진에게 "나의 꿈은 너야"라고 말했지만 박연진처럼 똑같이 되진 않는다.

복수극을 짠 이상 결말은 마냥 따뜻할 수도 없다. 그런 아픔을 안고 있음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만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건 어린 나이일수록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어떠한 악행을 저질러 주더라도 감싸주는 사람이 있기에 계속 악해질 수 있으며 일으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 일어서는 것이 힘들어 포기하는 아이도 생긴다.


ㅓㅏㅜ.jpeg 더 글로리 중


나는 무언가에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 상대방을 맞설 때가 아닌, 자신의 곁에 힘을 주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큰 힘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믿으며 조언해주곤 한다. 수가 중요하진 않다. 그저 자신의 곁에 얼마나 따뜻한 사람들이 뒤돌아 보면, 외롭지 않고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

더 글로리의 마지막장면의 심정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