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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8. 2018

04. 집단의 힘이 전문가보다 세다.

<예측, 일단 의심하라>



일찍이 대처 내각은 파업을 일삼는 탄광노동자들과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무력 침공을 누르고 자신의 뜻을 관철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거둔 이 성공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해진 대처 수상은 또다시 결단력을 발휘했다. 그 어떤 난관에도 그녀는 초지일관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철의 여인의 지지도는 추락했고 ‘식물’ 각료들은 그녀를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철회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단호하게 밀어붙였고, 이는 그녀가 유권자들의 민심과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는 증거로 비쳐졌다. 결국 대처 내각은 좌초되어 1990년 그녀는 수상직을 사임했다. 
  
일급 엘리트 공무원들이 보필하는 최정상 정치권좌에 있던 대처내각의 집단지성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정도로 참혹하게 앞일을 내다볼 줄 모르고 무능해진 걸까? 보통 우리는 개인의 예측보다는 집단의 예측이 더 나으리라 예상한다. 집단을 이루면 다양한 견해, 갖가지 능력, 보다 더 광범위한 정보, 이 모두가 회합장에 집결될 것이다. 또 집단은 서로의 생각들을 주고받는 가운데 각자의 주장에 맞서서 비판할 기회도 많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럴듯한 주장만이 살아남게 된다. 그러므로 집단이 합심해 특정 작전을 수립하고 그 작전을 밀어붙일 때 그 결과에 대한 예측은 기반이 탄탄할 수밖에 없다.

이론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실제 현실은 이와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집단 구성원 각자가 중압감을 느껴 다른 구성원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판단한 사항에 아무 거리낌 없이 동조한다는 데 있다. 이는1950년대에 심리학자 솔로몬 애시(Solomon Asch)가 주도한 실험이 생생하게 증명했다. 애시의 실험 하나를 모방한 상황에 당신도 가세했다고 상상해보자. 여기서 당신은 시각적 인식과 관련된 실험이 있다고 전해 듣는다. 당신은 약간 긴장한 상태로 실험 장소에 정시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또 다른 실험 참가자들이 와서 탁자 주변에 앉아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실험 내용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일부 사람들은 초조한 듯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고 있다. 당신은 탁자의 맨 끝자리로 간다. 이내 실험 주최자가 나타나고 참가자 전원에게 각각 카드 두 장을 건네준다. 겉보기에 매우 단순한 실험 같아 보인다. 왼쪽 카드에는 길이가 다른 수직선이 세 개 있고 각각 A, B, C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카드에는 왼쪽 카드의 직선 C와 길이가 똑같아 보이는 직선이 달랑 하나 그려져 있다. 이제 당신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카드가 주어졌다는 말을 듣는다. 실험진행자가 말한다. “제가 탁자를 쭉 돌아다니면서 각자에게 차례대로 질문할 겁니다. A, B, C 중에서 어느 선이 다른 카드의 선과 길이가 같은 지를요.”
  
‘어머나, 이렇게 쉬울 수가.’ 당신은 생각한다. ‘정답은 C야. 학자들이 이걸로 뭘 하려는지 참 궁금해지네. 실험 진행자가 연구비를 무지 많이 지원받았나 봐.’ 잠시 동안 당신은 사람들이 커피숍에 가는 이유를 찾는 연구에 지원비가 많이 책정되었던 사례를 보도한 신문기사를 어렴풋이 떠올린다.
이내 첫 번째 응답자가 자신 있는 태도로 “A”라고 대답한다. 이에 당신은 저 사람은 자신이 쓴 안경을 갈아야 할 때가 된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곧 두 번째 사람이 “A”라고 말하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리고 여섯 번째까지도 똑같이 말했다. 이제 당신 차례다. 당신의 답은? 분명히 C가 정답이지만 어쩌면 당신의 시력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다 똑같이 틀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만약 C라고 말하면 놀림감이 되는 위험을 자초하는 셈이다.
  
이때의 당신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 중 32%가 C가 맞다고 육안으로 분명히 확인해놓고도 A가 정답이라는 데에 동조한다. 이들은 다른 모든 실험 참가자들이 실험 주최 측과 공모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실험 주최 측에서 이 ‘공모자들’에게 실험에 응하는 척하며 오답을 제시하라고 미리 지시했다. 실험은 시각적 인식과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실험의 진짜 목적은 집단에서 우세한 생각이 비록 명백하게 틀렸다 해도 집단 구성원들이 고분고분하게 따르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이에 동조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실험을 반복하였을 때 사람들 중 75%가 적어도 한 가지 경우에는 모두 같은 의견에 동조한다는 게 밝혀졌다.
  
나중에 오답을 제출한 이유를 질문하자 이들은 오답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다른 구성원들 앞에서 ‘튀어 보이고’ 싶지 않았다거나 혹시 조롱받지는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이들은 실험 대상자로 가장한 사람들이 내놓은 답이 분명히 정답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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