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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29. 2018

01. 왜 징둥인가?

<징둥닷컴 이야기>



징둥 역사상 주요한 전략적 의사결정은 세 차례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2004년 전자상거래로 전환한 일이다. 이로써 징둥은 향후 10년내지 그 이상의 장기적인 소비 트렌드를 장악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종합쇼핑몰로의 전환이다. 이때 징둥은 3C제품전문 쇼핑몰에서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변신한다. 세 번째 전략적 결정은 자립식 물류배송의 단일시스템 구축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뒤의 두 가지 전략적 결정은 모두 2007년에 이루어졌다. 또한 이 두가지 전략적 결정 모두 투자가와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류창둥 개인의 고집으로 밀어붙였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징둥은 주로 두 가지 일에 집중했다.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상품 종류를 더욱 다양화하는 한편, 배송범위를 넓히고 배송시간을 단축하는 데 주력했다. 전국을 대상으로 판매를 개시한 징둥은 단일가격으로 중국 전체 소비자에게 제품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검색엔진을 통해 누구나 동등하게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전자상거래에서는 상품선택권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사회에 공평과 효율을 가져온 것이다. 예전 같으면 베이징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살 수 있는 브랜드를 쓰촨의 시골마을에서는 아예 구경조차 못했지만, 온라인에서는 모든 게 가능했다. 게다가 집으로 안전하게 배송까지 해준다. 외진 시골일수록 제품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징둥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유통단계별로 가격이 상승하는 종전의 유통체계를 철저히 파괴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징둥은 공급업체와 힘겨루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고효율의 소매모델이 저효율 방식을 대체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유통구조와 비교하자면, 제조업체가 징둥의 직영창고로 제품을 직접 운송·입고시키면 징둥이라는 한 단계만을 거쳐 소비자 손에 제품이 직접 전달 되는 것이다. 거치는 단계가 줄어드니 효율은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류창둥 사장은 한 가지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고 말했다.“최근 10~20년 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혁신모델은 모두 원가의 절감과 효율성 제고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원가를 더욱 낮추거나 효율을 더욱 높여야 한다. 이 둘 중에 하나를 최소한 실현해야만 혁신모델을 통해 생존·발전할 수 있다. 만일 이 둘을 전부 놓친다면 제아무리 획기적인 혁신모델이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징둥은 강력하고 치밀하게 장악한 공급망을 배경으로 효율을 높이고 원가를 낮출 수 있었다.

한편, 흔히들 징둥의 기술력을 간과한다. 징둥 내부적으로 3대 투자부문에 속해 있어, 물류와 시장부문 다음으로 비중 있는 분야가 연구개발인데도 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징둥의 기술은 마치‘가랑비가 소리 없이 대지를 적시며 만물에 생기를 주듯이’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조직 도처에 스며들어 있다. 일례로 구매영업부문의 판매예측시스템과 자동입고시스템, 그리고 물류배송의 정상운영을 유지하는 관리시스템도 기술력이 반영된 곳이다.

소매업체는 소비자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여 향후 판매량을 예측함으로써 재고비용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통적인 소매업의 경우는 운영효율을 상대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우며 제품판매량도 예측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전자상거래업에 뛰어들기 전인 2001년에 징둥도 마우스가 연간 몇 개 정도 판매될지 예측을 하곤 했지만 사실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기술을 통해 판매예측치를 더욱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소비자가 남긴 모든 발자취를 추적하여 데이터분석을 하면 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전체 공급망과 구매영업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으며, 특히 판매예측시스템은 공급망의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판매예측시스템의 정확도는 공급사슬 하위단계인 상품의 자동입고, 조달·창고배치, 재고시스템 완비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이를 통해 전통 소매업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면‘어떻게 하면 가장 정확한 시간에 우수한 품질기준에 맞춰 적합한 수량을 입고시킴으로써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킬지’등의 문제가 해결된다.

온라인에서는 고객의 수, 활동 정도 및 선호도 등을 있는 그대로 추적할 수 있다. 이는 오프라인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전에 오프라인 유통업체에서도 매장 앞에 기록기를 설치하여 고객의 유동량을 체크하고자 시도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얻은 데이터는 매우 허술해서 데이터로서의 이용가치가 거의 없었다. 게다가 고객 유동량이 향후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 일부 매장은 고의로 숫자를 부풀려 발표하기도 했다.

징둥은 정보, 물류와 자금을 기반으로 전국 각지의 공급망, 소비자, 창업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소매업체가 아닌 기술력을 기반으로 다원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베이징의 우리 집 근처 화롄 슈퍼마켓 옆에는 붉은색 나베코(NAVECO) 화물차 한 대가 장기간 정차되어 있다. 차체에는 미소 띤 강아지 마스코트의 윤곽이 흰색 페인트로 그려져 있다. 한쪽 차벽에 창구를 만든 개조 차량으로, 창구를 통해 붉은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직원들은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는 젊은 고객에게 끊임없이 포장꾸러미를 건넨다. 퇴근시간이 바로 물건을 픽업하는 피크타임이기 때문이다.

붉은 나베코 화물차는 징둥이 설치한 셀프픽업점이다. 중국의 수 많은 도시에서 징둥은 이미 익숙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징둥 온라인몰에서는 오프라인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뿐더러 자립식 물류시스템을 통해 집까지 배송도 해준다. 직접배송 외에도 일부 고객을 위해 셀프픽업이 가능토록 했는데, 고객이 자유롭게 시간을 정해 물건을 찾도록 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이때 징둥은 이미 연간 거래액 2,602억 위안(한화로 약 44조 원)을 달성했으며 약 7만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자립식 물류시스템이 전국적으로 1,862개 구·현(중국에는 총 2,860개 구·현이 있음)에 구축된 상태였다.

그 셀프픽업점을 본 순간 2012년에 인터뷰했던 한 투자가가 떠올랐다. 그는 여러 전자상거래업체에 투자를 단행한 사람인데, 징둥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었다.“징둥이 아마존+UPS 기업이 되고 싶은 모양인데, 그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때로는 남이 생각하기에 절대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가장 큰 수익과 가치를 얻는다. 2014년에는 아마존도 징둥과 마찬가지로 자립식 배송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하면서‘마지막 1㎞’배송서비스를 아마존이 직접 수행하기에 이른다.

류창둥은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해냈다. 만일 이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과연 그토록 큰 가치를 지닐 수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한 일을 해냈기 때문에 더욱 큰 가치가 있었다. 징둥은 실무형 기업으로서 세상에서 가장‘더럽고 힘들고 어려운’일을 하면서 속된 말로 눈곱만큼의 이익만을 바라봤다. 100위안 가운데 20위안만 가져가고 80위안은 다른 사람이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징둥은 경쟁의 진입장벽을 높일 수 있었다. 원래 폭리를 취하면 그 분야의 진입장벽은 매우 낮아질 수밖에 없다. 폭리를 취하는 업종에 더욱 많은 창업자가 벌떼처럼 달려들어 혁신을 추진하고 이윤을 낮추는 모델을 만들어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폭리를 취하는 업종은 결국에는 아예 대놓고 죽기를 기다리는 꼴과 다름없게 된다.

최근 2년 동안 새로운 비즈니스 혁신이 더욱 깊은 수역까지 밀려오고 있다. 전통 산업과의 마찰이 갈수록 심화되며 업종 간 제휴 움직임도 긴밀해지고 있다. 신기술·신모델로 무장한 기업이 갈수록 공급망 단계까지 깊숙이 진입하고 있는데, 이는 보다 많은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과거 동영상사이트의 경쟁이라 하면 기껏해야 콘텐츠 구성을 특화시킨다거나 재생속도를 높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동영상사이트는 상위 레벨인 콘텐츠 제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심지어 고객이 직접 사용하는 ‘단말기’에 해당하는 방영소프트웨어(인터넷TV)의 제작판매에까지 나서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회사를 점차‘무겁게’만든다. 중자산(重資産, 고정자산 투자가 많은 사업)모델이 최근 몇 년간 등장한 창업회사의 특징이다. 이는 순수 경자산(輕資産, Asset-light, 고정자산 투자가 적은 사업) 기업의 비즈니스 가치가 갈수록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기존에는 힘들다는 이유로 서로 기피하던, 심지어 조롱받던 허드렛일이 이제는 반드시 추진되어야 할 핵심 업무로 변모한 것이다. 비유를 들어 설명하자면, 일례로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미국이 공군력을 동원해서 이라크 군사력을 초토화하고 무력화하겠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지상부대를 침투시켜야만 완벽하게 격퇴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젊은 창업자들도 이제는 예전보다 험난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이해하고 코딩방법만 알면 되었던 시절에는, 엔지니어와 상품 팀장만 관리하면 됐다. 그러나 간결했던 온라인 비즈니스가 더욱 복잡해졌다. 공급망관리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일하는 현장직원을 다룰 줄 아는 노하우도 필요해진 것이다. 0과 1만 존재하던 이진법적 디지털 세계에 빠져 살던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남보다 먼저 신상품을 구매하며 IT에 대한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 오프라인 직원관리는 완전히 딴 세상 얘기다. 또한 엔지니어 그룹과 현장판촉 그룹은 성향이 판이하게 달라서 중간에 관리자가 조율작업을 통해 간극을 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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