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언어와 이미지의 감옥을 벗어나라.

언어와 이미지의 한계가 상상력의 한계다.

by 더굿북

펜은 마음의 혀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언어는 소통과 표현을 위한 도구로 소리나 문자로 나타낸다. 여기서는 소리로 구현되는 음악도 언어의 범주에 넣는다. 이미지는 이차원적인 것부터 다차원적인 것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림과 같은 평면 이미지, 조각이나 건축물과 같은 삼차원 이미지도 있다. 이렇게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모든 것들은 언어와 이미지의 형태로 존재한다. 언어와 이미지가 아닌 것이 있을까?

냄새는 어떤가? 냄새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호흡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냄새가 난다는 것은 호흡으로 지각될 만큼 충분히 휘발성이 있다는 의미다. 휘발성이 있다는 것은 일부분이 공기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냄새의 분자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냄새는 보이지 않지만, 그 근본은 작은 이미지다.

그렇다면 언어와 이미지가 아닌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직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우리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관념(觀念, Idea)이다. 이것은 아직 세계에 어떤 형태로도 드러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이 사상, 문학, 이론이라면 글이나 말과 같은 언어로, 건축물에 관한 구상이라면 설계도나 모형과 같은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자동차의 클레이 모델을 만드는 것처럼 삼차원적인 이미지로 직접 만들어 관념의 세계에서 실재하는 세계로 드러낼 수 있다. 그런데 관념의 세계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들을 실제 세계로 드러낼 때 한계는 무엇일까? 생각한 것을 그대로 실제 세계로 옮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관념(觀念) ; 명사
1. 어떤 일에 대한 견해나 생각
2. 현실에 의하지 않는 추상적이고 공상적인 생각
3. <불교> 마음을 가라앉혀 부처나 진리를 관찰하고 생각함
4. <심리> 사고의 대상이 되는 의식의 내용, 심적 형상을 통틀어 이르는 말
5. <철학> 어떤 대상에 관한 인식이나 의식 내용

프랑스의 알리에(Allier)주에 가면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구석기시대의 ‘레 트로아 프레르(Les Trois-Freres)’ 유적이 있다. 레 트로아 프레르는 ‘삼 형제’라는 의미로 이 유적을 발견한 삼 형제에서 유래했다. 이 유적은 주변으로 뻗은 총연장 750m나 되는 동굴과 방을 따라가면서 존재하고, 그중에서도 구석기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굴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벽화는 주로 동굴의 천장과 벽에 그려져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그림을 겹쳐 그려 무엇을 그린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04.jpg?type=w1200 레 트로아 프레르(Les Trois-Freres)의 <주술사>


그림은 주로 곰, 사자, 영양, 말과 같은 동물인데, 그중에서도 ‘주술사’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이 여러 개 있다. 주술사 그림 중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올빼미를 닮은 쫑긋한 귀와 둥근 눈을 가진 얼굴, 영양의 수염, 사슴의 뿔, 말의 꼬리, 인간의 팔다리를 가진 주술사 그림이다. 주술사는 앞으로 구부린 채, 측면을 보며 춤을 추는 동작을 하고 있다. 과연 이 그림은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무엇을 드러내기 위해 그린 것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다른 동물 그림은 사냥의 대상이거나 사자처럼 주의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주술사라는 이름처럼 주술의식의 한 장면을 담은 그림일까? 여기에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지배적인 의견은 후세에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여러 가지 동물의 특성을 잘 파악하려면 그림처럼 사냥의 대상이 직접 되어보며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메시지의 내용이다. 지금처럼 언어가 발달했다면 ‘생존의 십계명’이라도 만들어 기록으로 남겼겠지만, 구석기인들에게는 그림과 같은 이미지의 기록만이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이렇게 구석기인들의 관념은 벽화가 되어 세상에 드러났다.

아주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저런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하고 궁금했던 것이 있다. 그것은 겨울에 토끼와 꿩을 사냥하는 방법이다. 토끼를 사냥하는 데는 그냥 여러 명의 사람만 있으면 된다. 찌그러진 냄비처럼 두드려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더 좋다. 눈이 하얗게 내린 다음 날, 여럿이 산에 올라 고함을 지르며 내려오다 보면 놀란 산토끼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보인다. 계속 아래로 토끼를 몰면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훨씬 긴 토끼들은 아래로 뛰는 데 심각한 문제를 노출한다. 눈까지 왔으니 뛰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이제 눈 위를 뒹구는 토끼를 아래서 기다리던 다른 친구들이 잡을 차례다. 토끼의 특성과 자연환경을 제대로 활용한 결과다.

꿩 사냥도 비슷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눈에 덜 미끄러지는 신발과 짤막한 몽둥이 하나가 사냥 도구다. 꿩은 다른 새와 달리 땅에서 잠을 잔다. 눈이 하얗게 내린 다음 날, 구릉이나 산에서 꿩의 발자국을 찾는다. 가으내 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불린 꿩이 눈 위로 먹잇감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 흔적을 찾는 것이다. 눈 위의 꿩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꿩을 발견하게 되고, 발각된 꿩은 살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날아오르면 좋겠지만, 날기 위해서는 도움닫기를 해야 하는데 몸집도 문제고 푹푹 빠지는 눈도 문제다. 결국, 꿩은 덤불에 머리만 박고 몸뚱이는 드러낸 채 잡히고 만다. 주술사 그림이 전하고자 한 것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소설가는 글로 소설을 써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남기고, 화가는 그림을 그려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남긴다. 건축가는 설계도면으로, 실제 건축물로 자신의 세계를 드러낸다. 작은 연필도, 우주로 날아가는 로켓도 누군가의 관념을 실제 존재하는 세계에 드러낸 것이다.

KakaoTalk_20160726_085327157.jpg?type=w1200 건축은 관념을 삼차원 이미지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구석기인과 지금 우리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용 가능한 언어와 이미지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졌다는 점이다. 더 정밀하게 묘사할 언어와 이미지가 있고 컴퓨터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저장하는 공간도 동굴의 벽에서 책을 넘어 다양한 저장장치까지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관념의 세계에서 만들어지지 못한 것, 더 쉽게 표현하자면 생각하지 못한 것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점은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그래서 수학자는 자신의 언어인 수학을 우주로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미술가는 더 잘 그리기 위해 끝도 없는 습작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언어와 이미지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여러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예술이나 과학, 디자인이나 철학을 하지 않더라도 언어와 이미지를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먼저, 세계를 이해하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언어와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글을 읽고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거나, 직장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대로, 전달하는 사람이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비슷한 결과를 만든다. 정작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가 왜 생기는지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 때다.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로 사고하고 꿈도 언어와 이미지로 꾼다. 기억도 언어와 이미지로 하고, 무언가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도 언어와 이미지로 한다.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와 이미지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작은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다. 빨간색은 단 한 가지 색이라고 알고 있다면 어떤가? 빨간색의 범주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색이 존재하는 데 말이다. 여러분이 만든 언어와 이미지의 감옥을 세계와 맞먹는 크기로 키우거나, 감옥을 나와 다른 사람의 언어와 이미지 세계에도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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