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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우 Apr 20. 2024

대기업에서 퇴직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회사에 기대지 말고 최대한 이용하라

벌써 5년도 지난 일이다. 나는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았다. 연구개발 지원 업무를 하면서, 대학교에서 특허는 많이 내는데, 사업화는 왜 안될까,라는 의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살펴보는 수업시간에 어느 대기업의 재무제표를 보고 있었다. 등기임원 명단에서 내가 아는 이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기업체에 오래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임원까지 진급한 줄 몰랐다.


"말도 마라. 지방대 출신인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겠냐?"


나는 전화를 걸어 축하도 할 겸 안부를 물었다. 눈에 보지 않아도 선하다. 대기업에서 50대 후반까지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데 임원까지 진급했으니! 내 수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연봉을 받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대기업에서는 임원이 되면 차원이 다른 급여와 혜택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초에 퇴직하고 지금은 바지 사장으로 있어. 그래도 해외출장 다니고 여기도 바쁘네. 

너도 잘 있지? 부탁이 있는데, 이거 한번 알아봐 줄 수 있겠나?"


얼마 전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친구는 퇴직을 하고 중소기업의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고 하면서 자료를 좀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곤란에 빠졌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의도를 알 수 없고,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한 다리만 건너면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차분하고 단호하게 "NO"라고 답을 했다.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에게 거절의 표시를 하는 것도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퇴직하고 나서 그런 부탁을 하는 친구도 원망스러웠다. 


회사에 기대지 말고 최대한 이용하라


나는 친구의 부탁이 나의 퇴직 이후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도 혹시 퇴직 후 내가 하려는 일 때문에 후배나 동료 직원에게 부탁을 할 일이 있지 않을까? 그때 거절을 당하면 어떤 기분일까?


부탁이나 연락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높다. 지금 내가 가진 명함에서 이름만 빼고 모두 휘발되었을 때 누가 나를 불러주고 알아주겠는가? 퇴직 후의 나는 옛날에 어디서 근무했던 아무개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두 가지의 답을 상상해 본다.


"누구시라고요? 아! 네~ 그런데요? 무슨 일이시죠?"

"누구시죠? 아! 네~ 반갑습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후자의 답을 듣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첫 번째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열정과 성의를 다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퇴직 후 하려는 일과 연관된 부서와 좋은 관계를 맺어놓는 것이다. 지금은 나의 직위가 있으니 연락을 해도 무시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나의 독서 초기에 읽은 책이 한 권 있다. 오카다 쇼이치가 지은 <회사에 기대지 말고 최대한 이용하라>(절판)라는 책이다. 회사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밖에서도 통용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기의 능력을 점검하고 역량을 키워라는 내용이다. 


요즘 강연 때마다 나는 이 책을 젊은 직원들에게 소개한다. 회사를 이용하라! 이기적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가장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이용하려면 조직에 잘해야 한다. 


어떻게 이용해야 하나? 회사에서 시키는 "좋은" 교육은 빠지지 않는다. 좋은 교육이란 나의 개인적인 역량을 향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회사 업무로 만나는 사람과 개인적인 신분도 쌓자. 업무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나처럼 석사나 박사학위를 딸 수도 있다. 이러다 보면 나의 역량과 회사의 발전이 둘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의 친구도 마찬가지다. 대기업 임원일 때 관련된 부서 사람을 알아놓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도 내 친구가 대기업 임원이라고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내게 연락할 필요도 없이 자기가 궁금한 내용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친구는 대기업에서의 직위를 활용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친구와 다시 만날 기회가 올 것이다. 젊은 날을 회상하며 즐겁게 떠들 시간을 나는 기다린다. 만약 내가 지금 그가 필요한 정보를 주었다면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D-6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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