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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나란히

by 조달리

몇 년 전, 처음으로 고등학교에서 독서모임을 맡았었다. 도서관 독서모임은 오래 해왔었지만 특정 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꽤 긴장했었다.

남학생 열 명과 함께 했던 다섯 번의 책모임이 끝났을 때의 안도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황했다가(독서동아리 학생들인데 책을 한 명도 안 읽어 왔네? 다른 동아리 넣었다가 떨어진 학생들이 모인 필수 독서 동아리라고),

슬퍼했다가('공정'이슈와 '자본'논리를 오롯이 체화한 듯한 발언과 생각에),

다가갔다가('나와 상관없는 특성화고 학생들'이라 시작했던 책모임이 '아예 상관없지는 않'은 일로 슬그머니 바뀌는),

깨달았다가(읽기 쓰기 연습되어 있지 않은 학생들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모임과 책의 의미 전달하기, 읽을 수 있다는 가능성 알려주기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알게 해 준)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무리했던 과정이었다.


활동적인 행동을 좋아하고 말 많은 사람은 싫은 W

규칙과 규범을 좋아하고 생각이 없는 사람은 싫은 H

낮잠을 좋아하고 어린애들이 까부는 게 싫은 J

몸 쓰며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고 글쓰기는 싫은 Y

노는 것을 좋아하고 지루한 건 싫어하는 N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은 것은 딱히 없다는 S

자는 것을 좋아하고 담임 선생님은 싫은 M

산책처럼 걷는 것을 좋아하고 공부가 싫은 G

운동경기 보는 것을 좋아하고 수학은 싫은 K

산책이 좋고 패드립이 싫다는 T


학생들과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페미니즘 도서였다. 페미니스트를 '괴물'로 알고 있던 학생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첫 모임 후에는 사실 좀 무서웠다. 공격받을까 봐 긴장했고, 질문에 답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내 아이 또래의 남학생. 개인적으로 만나본 경험이 크게 없는, 열일곱 살의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페미니즘'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마지막 시간에 울면서 강의실을 뛰쳐나가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 페미니즘은 확장되고, 그 성격과 내용이 또 달라진다.

- 지난 명절 성평등하게 지냈는지

- 오래된 집을 하나 물려받았다고 상상해 보자. 좋고 멀쩡한 곳은 그냥 두고, 망가진 곳은 고치면서 살아가야겠지. '데리다'의 말을 인용하면 우리들은 모두 '유산 상속자'. 좋은 전통은 이어가고, 누군가를 힘 빠지게 하는 나쁜 전통은 고쳐서 새롭게 만들자.

-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차별적인 언어

- 교차하는 우리들의 정체성

- 여성혐오의 뜻

- 가부장제의 사적의미와 공적의미

- 젠더와 성별

- ‘양성평등'이라는 단어가 배제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 맨 박스

- 군가산점과 군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 주제마다 한 차시동안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심도 있는 내용이지만 대략적으로라도 설명할 시간이 있었고, '괴물'과의 전쟁을 예상했을법한 학생 한 명은 이렇게 확장된 페미니즘이면 용어를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내가 알고 있던 페미니즘'과 '오늘 알게 된 페미니즘'이 달라서 당황한 듯했던 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용어의 변경이 아니었을까. 여태 '여자'를 소홀히 했던 역사를 무시하는 '새로운 언어'로 한 번에 돌아설 수 없으므로, 1800년대의 페미니즘과 지금의 페미니즘이 달라도 중력과도 같은 '가부장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를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 세상에 수많은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자 어지러운 듯 눈빛이 또 흔들린다.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반응도 이해한다. 지금의 십 대 남학생들이 자랄 때 여학생들은 '피해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에서 공부도 더 잘하고, 똑똑하다. 남자라고 역차별받는 경우가 더 많다. 여자애들이 거짓말하겠어? 여자애들처럼 조용히 해. 남자애들 다 이래. 이런 얘기 듣다 성인이 되자마자 군대를 가란다. 군가산점제도 없는데 말이야. 모두 끄덕끄덕.


그러므로, 성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들에게 구조를 보는 법을 가르치는 일.

조화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

편 가르기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절망과 두려움을 보고 배우도록 알려주는 일.

자기 돌봄을 훈련하며 서로 격려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이 아닐까.


아름다운 청소년들이었다.

처음엔 거대한 몸집과 무거운 목소리, 단체로 내지르는 인사와 말도 안 되는 농담이나 껄렁함이 낯설었는데 한 두 번 만나다 보니 그제야 내 아이의 친구들 같이 보인다. 그때 그 아이들도 이렇게 컸겠구나.

순한 눈과 마스크 아래 살짝 보이는 귀여운 입. 씰룩거리는 표정들.

이들이 아름답게 성장하면 좋겠다.

진심으로 바란다.

고등학생들에게 '페미니즘'수업은 통하지 않을 거라 낙담했었는데 나는 완전히 틀렸다.

그러므로 나는 좋은 책모임에 다녀왔다.


아이는 그래도 걱정이다. 십 년 쯤후에, '와! 그때 그 독서모임 강사 생각해 보니 완전 ***였네. 나 가스라이팅 당했어'라고 말하며 엄마를 떠올리는 청년이 있을까 봐.... 나는 지금/오늘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또 그렇다 해도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둘 수밖에.


'읽기 쓰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열일곱의 청소년이 갑자기 읽고 쓰기를 한다는 것은 어렵겠지. 그렇지만 '자기화'되지 않은 언어는 무슨 의미일까. 그래서 '단어'를 챙기라고 말했다. 한 단어면 충분하다고. '내게 온 단어' 하나를 먼저 붙잡아보자고. 계속 질문하고 단어를 내 것으로 만든 후, 조금 여유가 생기면 '문장'으로. 온몸으로 습득한 한 문장이 나를 다르게 할 것이고, 그 문장이 모이면 '단락'이 되고, 그 후에 '챕터'가 되고, 책이 된다고. 그러므로 머릿속을 맴도는 '단어 하나'를 끝까지 잡자고 이야기하며 모임을 마쳤다.


잘 읽고 쓰는 사람이 되기가 어렵다면

잘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그 버둥거림 옆에 잠시, 나란히 걸을 수 있어서 나는 참 복도 많지.


나의 소감과 달리 학생들은 졸기도 많이 졸았다.


정말 유명한 작가가 와서 대화시간을 가져도 학생들은 늘 존다며 모임 좋았다고 담당 선생님이 격려해 주셨지만 여전히 내 숙제. 다른 곳에서 또 재밌게, 의미 있게 해 봐야지.


몸(내 몸 너 몸 모두), 노동, 인권, 페미니즘, 불평등, 자본, 기후를 학교에서 성의 있게 진심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확신이 모임을 거듭할수록 더 강해진다. 십 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교재와 메신저는 필수. 남학생들에게는 더하다. '연애'에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와 상황에서 우정과 위안을, 교감과 돌봄을 나누는 자연스러움을 익힐 수 있도록 사회가, 교육이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 역할을 잘 찾아야겠지. 잠시,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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