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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류의 환상

by 소소


〈무오류의 환상〉


- 소소(昭昭)-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에

문장 하나가 남았다.

가슴 속에 꼭 쥐고 있던 것,

그것은 천천히 찢어지고 있었다.


기억을 펼치는 일은

무언가를 지우는 일과 닮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날들을 백지로 돌리고 싶지 않다.


그건 나의 서사였지만

너의 손길이 묻은 문장도 있었으니까.


나는 그것을

가장 단단한 광물처럼

정성껏 다듬었다.


깨지지 않게,

흐릿해지지 않게.


잃어버릴 수는 있어도

잊고 싶지 않았다.


겹겹이 덧씌운 날들 사이로

빛이 비추면,

그 흔적들은 상처가 아닌

결국, 내가 지켜낸 결이 될 것이다.


나는 알았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오래 남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래서,

나의 손은 여전히 그 문장 위를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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