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화 폭력은 언제나 말부터 시작됐다.

by 소소




결혼식을 앞둔 임신 5개월 무렵, 그는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서윤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상에 누운 그는 거의 반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환자를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열은 40도까지 올랐고, 온몸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뒤틀었으며, 눈은 황달로 노랗게 변해 있었다. 진통제를 맞아도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서윤은 몇 번이고 간호사에게 “진통제를 좀 더 놔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간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마약성 진통제는 정해진 간격 이상 투약이 어렵습니다”는 단호하지만 익숙한 말투였다. 한참을 견디다 못한 그는 벌떡 일어나 듯 고함을 질렀다.


“바보 같은 년아, 진통제 좀 놔달라고 하라니까? 간호사한테 그런 말도 못 해?!”


서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고통은 서윤을 향해 분출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든 상태에서도, 그는 그녀에게 화를 냈고, 그 고성은 마치 그녀가 이 고통의 원인인 것처럼 서윤이를 몰아세웠다. 간호사는 결국, 주사기에 진통제 아주 소량의 양을 준비해 링거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열과 사투를 버리고 고통을 호소하는 그의 옆에서 서윤이는 날을 꼬박 샜다.


오전이 되어서야 병실에 온 인턴은 환자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전달 받은 전문의는 긴급하게 수술 일정이 잡았다. 심한 통증과 고열로 정신이 아득해진 그는 수술을 위해 꽂아둔 긴 호스 줄을 허크처럼 뽑아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윤은, 그 순간 또 한 번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고통은 더 이상 ‘아픈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조이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수술실 앞, 어쩔 줄 몰라 덜덜 떨고 있던 서윤에게 하얀가운을 입은 인턴이 다가왔다.그는 서윤을 한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무슨 사이세요?”

“결혼할 사람이에요.”

서윤이 답하자, 인턴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런 환자는 처음이네요. 솔직히 좀 힘드네요.”


그 말은 짧았지만, 날카로웠다. 그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고개를 돌려 수술실로 걸어가 버렸다. 서윤은 그 말을 쉽게 잊지 못했다. 죽어가는 환자들을 하루에도 몇 명씩 대하는 사람이라지만, 지금처럼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앞에서 그토록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서윤은 아직 몰랐다. 그 인턴이 그의 내면에 깃든 거친 기운을 첫눈에 알아봤다는 사실을. 그 냉소는 단지 병원에서의 피로함이 아니라, 그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서윤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의 첫마디는,

“소는 어쩌고, 내가 거기까지 올라가니?”였다. 시부모는 지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소를 키우고 있었다. 지금 막 수술실에 들어간 아들의 상황보다 소 여물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라는 말 앞에서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수술이 끝난 뒤에서야 아주버님이 병원에 도착했고, 그제야 서윤은 잠시 집에 다녀올 수 있었다.


임신 5개월, 어디서든 보호받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할 시간이었다. 배 속의 아이를 위해 잘 먹고, 잘 쉬고, 좋은 것만 듣고 보며 살아야 한다는 시기였다. 하지만 서윤이는 그의 수술로 인해 병원을 오가며 그가 먹고 싶다는 음식들을 준비해야 했고, 그의 눈치를 살피며 하루하루 붙들고 있었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몸으로, 그의 고통과 분노를 감당해야 했던 시기, 그렇게 서윤은 자신을 돌보는 일보다, 남을 챙기는 일을 더 먼저 해야 했다.




출처 pixabay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4화3화 그가 마신 물은 갈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