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계속 써라

by 글토닥


명상이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계속해야 된다. 하다 말면,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물론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지속해야만 명상의 진정한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글을 쓰는 것은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글쓰기의 진정한 혜택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는 6년 동안 글쓰기를 지속해 왔다. 그 과정 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3권의 종이책을 출간했고, 더 나아가서는 플랫폼을 통해 꾸준한 수익도 올리고 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 이거 언제까지 써야 돼?"



나는 평생 글을 쓰고 싶다. 그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에 꾸준히 글을 발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가 벅찰 때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남들이 읽고 싶은 글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AI가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글쓰기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더욱 고민하게 되었다. AI는 나보다 훨씬 글을 논리적으로 잘 쓴다. 정말 오랜 세월 논리적 글쓰기를 훈련해 왔으나, AI에게는 안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AI는 더 정확하게, 신속하게, 자료를 취합하고 논리적으로 재배열하며, 탁월한 문장만을 사용한다. 가독성 문제가 조금 있지만, 읽는데 크게 문제는 되지 않는다. 이런 AI가 활보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우리는 글을 계속 써야 하는가? 네 대답은 '그렇다'이다.



다행스럽게도 인간은 논리적인 글만 소비하지 않는다. 정보는 차고 넘친다. 인간이 정말 이성적인 존재라면, 딱딱한 뉴스만을 읽고 살 것이다. 소설책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 저건 그냥 상상이잖아?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아! "라고 치부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데 탁월한 존재들이다. 남들이 만들어놓은 망상을 끊임없이 소비하기에 바쁘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환상을 보여주는 드라마, 영화, 책, 이야기들로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인간의 손으로 직접 쓴 글은 가치가 있을 것이다. 비록 논리적이지는 못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보만을 원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는 흥미와 재미만을 원할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만큼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지금도 나는 부족한 시간을 내어, 여러분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생각을 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구성을 갖추고, 문장과 맥락을 신경 쓰면서 써야 한다. 게다가 초안을 완성하고도 몇 번이고 고쳐 쓴다.



글쓰기는 두뇌를 엄청나게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가능한 취미 활동이다. 그럼에도 외적인 보상은 거의 전무한 활동이다. 글을 쓰고 나면, 체력적으로 빈약해진다는 느낌마저 들 때가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들, 더 나아가 글을 정말 잘 쓰는 사람들은 일종의 사명감을 필두로 글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글을 계속 쓸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과잉된 생각을 풀어놓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해도, 이는 분명 한계가 있다. 생각이 많더라도 활자로 현실 세계에 불러내는 일은 차원이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부유하듯 떠다니는 생각을 정렬하는 일, 그것도 물질세계로 출력하는 일은 매우 고단하고 힘들다. 생각이 많다고 해서, 꼭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글을 잘 쓸 가능성이 매우 높기는 하다. 글은 결국 생각의 파편에서 창조되는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글쓰기는 보상이 거의 없는 매우 고단한 작업임에도, 꾸준히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 글쓰기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사명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글을 지속해서 쓰는 이유도 사명감 때문이다. 그리고 자유롭게 글을 쓸 때, 해방감을 느낀다. 이것은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나의 삶은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인간으로서 누렸어야 할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로 나의 삶에 제한은 걸어버린 것 같았다. 남들보다 경험의 빈도가 적었고, 삶의 풍요를 체험하지 못했다.



삶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안식에 대한 경험이 빈약했다. 나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빈약한 경험을 보강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니 글이 쓰고 싶어 졌다. 글을 쓰다 보니 책을 쓰고 싶어 졌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3권의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



삶이 재미없는 사람들, 활동에 제한이 걸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책벌레가 된다. 책만큼 비용이 적게 드는 간접 체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책이 있어서, 성장할 수 있었고, 배울 수 있었다. 세상은 나에게 가혹했지만, 책은 다정한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 자리를 빌려, 시공간을 초월하여 작가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나는 글을 쓰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글을 읽고, 나의 감정에 공명하기를 바란다. 나의 글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축복을 담아 글을 쓴다. 이것이 내가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어 준다.



글쓰기는 나를 뽐내기 위한 위선적인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글은 독자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주는 웅장한 소리를 내는 나팔이 되어야 한다. 나는 누구나 글을 쓰면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봉사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언제까지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건강이 허락되는 순간까지 글을 쓸 것이다. 나의 이야기와 생각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글은 공명이다. 공명은 힘이다. 힘은 곧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된다.



나는 느슨한 연결과 공명을 통해, 이 세상이 더욱 밝아질 수 있음을 믿는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독자의 마음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그러면, 나의 마음과 영혼도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구원해 주었던 수많은 작가들처럼, 나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슬픔과 우울에 잠겨 살던 어린 청년을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책 속에 담긴 따뜻한 응원이었다. 이것이 내가 계속 글을 써야 하는 이유이자 사명이다.



당신의 이야기, 당신의 경험, 당신의 아름다운 글은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글을 계속 써도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회의감 들 수도 있다. 평생 글을 쓴다 해도, 책을 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럼 어떤가? 그게 무슨 상관인가? 쓸데없는 욕심에 현혹되지 말고, 나 자신과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라.



누구는 빠르게 성공하고, 또 누군가는 그렇지 못할 수 있다. 글을 써서 성공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다. 사람마다 때와 시기가 전부 다르다. 우리가 글을 써서 바라는 모든 영광은 살아생전에 만날 수도 있고, 죽은 후에야 찾아올 수도 있다. 이런들, 저런들 상관이 없다. 빠르고 늦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글쓰기를 통해 아낌없이 나누고, 사랑하라. 계속 써라. 당신의 영혼이 말하고 싶은 울림을 모두 토해내라. 당신의 에너지를 전부 쏟아내라. 그리고 계속 써라.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아픔을 위로하고, 힘을 주고 축복하면서 얻는 기쁨을 알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분명히 보상받을 것이다. 또한 하늘은 당신의 수고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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