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이라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

by 시티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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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며 상상하기 고수, 월터 미티”

매칭 사이트 ‘E-하모니’에 올라와 있는 셰릴의 프로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 남자. 그녀 프로필의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사람’ 칸에는 ‘모험심, 용감함,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적혀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자는 셰릴에게 윙크(좋아요)를 보낸다. 그런데 오류가 났는지 요청이 접수되지 않았다는 메세지가 뜨고 남자는 실망하는 것도 잠시, 회사를 가기 위해 외출한다.

이 남자의 이름은 월터 미티. 16년 동안 ‘라이프지’라는 한 회사에 근무했고, 취미라고는 ‘멍 때리며 상상하기’ 밖에 없는 소심하고 평범한 직장인이다. 월터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달리 그의 상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파트에서 폭탄이 터지기 직전 셰릴의 개를 영웅처럼 구해주기, 자신을 못 미더워하는 직장 상사 테드에게 제대로 팩트 날려주기’ 등등..그는 출근할 때 ‘E-하모니’의 관리자인 ‘토드’와 윙크 오류에 대해 얘기하던 중, 어김없이 상상의 나래에 빠져든다.

그러나 월터의 유일한 취미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스움을 산다. 직장 동료들은 그가 멍 때리고 있을 때, 남의 말을 못 듣는 점이 꼭 ‘space oddity’라는 노래에 나오는 톰 소령처럼 먼 우주에 있는 사람 같다고 놀려댄다. 이처럼 초반부에서 월터의 상상은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면서도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게 하는 장벽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초반부의 상상 속에 나오는 월터 자신의 모습은 현실과는 다른 외형을 띄고 있다.



“25번째 필름을 찾아서”

월터는 ‘라이프지’의 필름을 현상하는 부서에서 일한다. 그는 소심한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무 수행에 대해 하나의 실수도 없다고 주저 없이 말할 만큼 현상 일만은 굉장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라이프지’는 온라인 개편을 앞두고 대규모 구조조정과 마지막 호 발간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월터는 구조조정 1순위이다. 현상 부서에 대해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회사 간부들은 더군다나 ‘멍 때리며 상상하기 고수 톰 소령‘ 도 별로 좋아하지 때문이다.

라이프지 마지막 호 발간과 구조조정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월터는 자신의 오랜 동료인 사진사 숀으로부터 라이프지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필름들을 받게 된다. 그 중에서 숀이 특히 강조했던 ‘삶의 정수’가 담긴 25번째 필름만을 찾지 못한 월터는 할 수 없이 나머지 필름만을 힌트로 삼아 숀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월터가 여정을 시작하는 이 부분에서 영화는 아주 멋진 연출을 보여준다. 그동안 월터의 상상은 현실의 장애물이 될 뿐이었지만, 벽에 걸려있는 사진 속 숀이 자신에게 손짓하는 상상을 하며 무언가 깨달은 듯한 월터는 처음으로 상상과 현실이 맞닿게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월터가 회사에서 뛰어나오는 장면에서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라이프지 중, 마지막 호는 ‘올해의 용감한 남자:월터’라는 표지로 되어 있는데 이 또한 역시 월터의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라이프 지의 모토이자 숀이 월터에게 준 지갑에도 적혀있는 문구인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LIFE(인생)의 목적이다.’는 공항의 부분 부분에 배경처럼 배치되어 25번째 필름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월터가 삶의 정수를 찾게 될 것임을 예언해준다. 이처럼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출을 통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을 한계짓는 영화 초반부 역할에서 벗어나 중반부부터는 ‘현실을 위한 도움닫기’로 탈바꿈된다.



“잊어버렸던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

월터의 여행 목적은 ‘숀의 25번째 필름을 찾아내자’이다. 그러나 단순한 여행 목적과는 달리 그는 꽤 블록버스터한 일을 많이 겪는다. 바다에 빠져서 상어에게 물릴뻔하기도 하고 화산 폭발에 휩쓸려 목숨을 잃을뻔하기도 한 월터. 그러나 그는 여행을 통해 잃어버렸던 과거의 자신을 찾게 된다. 월터는 자신의 애착 인형인 ‘팔이 쭉쭉 늘어나는 암스트롱’을 여행에서 만난 아이들의 스케이트보드와 교환하고 보드를 타고 여행을 계속한다. 과거에 스케이트보드 선수였던 그는 탁 트인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오랜만에 보드를 마음껏 탄다.

생계를 이어가느라 과거를 잊고 살아야 했던 월터에게 이 여행은 처음엔 달갑지 않았을지 몰라도 점차 의미 있는 경험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월터는 여행 도중, 자신의 깊은 상처에도 마주한다. 과거, 모히칸 머리 보드 선수 생활을 하던 월터는 급작스럽게 아버지의 비보를 마주하게 되고 가장으로서 가정을 책임져야 하기에 파파존스에 취업했었다. 그는 쉬기 위해 들어간 파파존스 가게에서 예상치 못하게 옛 기억을 마주했지만, 이 여행을 통해서 처음으로 자신이 인생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명장면 중에 하나는 월터가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순간이다. 술 취한 조종사가 모는 비행기에 타는 걸 망설이던 월터는 셰릴이 연주하는 ‘space oddity’를 듣게 된다. 한참 노래를 듣다가 월터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셰릴을 따라 비행기에 탑승하고 문 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여지없이 사라지는 셰릴. 월터는 셰릴이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겪어야 하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드디어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씬은 또한, ‘space oddity’라는 노래의 장면과 영화의 장면이 오버랩되는 효과를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노래 속의 톰 소령이 우주에서 푸른 지구를 바라보며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월터 또한 하늘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육지를 바라보며 비행기라는 현실에 몸을 맡겼다. 상상에 안주했던 월터가 처음으로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그는 한층 더 25번째 필름 즉, 삶의 정수에 가까워진 것이다.


“25번째 필름의 정체”

마침내 숀을 만나게 된 월터. 숀은 25번째 사진이 자신이 선물로 준 지갑에 있다고 말한다.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월터에게 숀은 눈표범 사진을 찍으러 이곳까지 왔다고 얘기하며 눈표범이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령표범’이라고 불린다고 알려준다. 이윽고 눈표범이 등장하자 숀은 사진을 찍지 않고 가만히 눈표범을 바라본다. 이상해하는 월터에게 숀은 ‘이 순간에 빠져 있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축구나 즐기자고 말하는 숀. 아름다운 석양 속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하는 숀과 월터의 행복한 모습은 지금 이 순간이 둘에게 어떤 의미인지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온 월터는 숀의 25번째 필름을 발견하고 이내 깜짝 놀란다. 25번째 필름 속에는 숀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깊게 고민하는 월터의 모습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25번째 필름은 숀이 자신의 용감하고 모험심 많고 창의적인 동료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였다. 월터는 소심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자 아름다운 자신의 현재를 즐기는 한 사람인 것이다.

우리는 평소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순간순간은 아름다운 현재이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용감하고 모험심 많고 창의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지 못했던 월터는 여행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마주했고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숀은 월터, 그리고 우리들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눈표범을 바라본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지금 이 순간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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