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이라는 말은 참 감각적이다. 그래서 좋다. 가급적 욕심 없이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감각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바람은 숨기지 못하겠다. 감각은 우정에도 적용된다. 나는 생각보다 친구가 없는 편인데, 여기에는 감각을 기준으로 친소관계를 유지하는 나의 속 좁음이 결정적인 것 같다. 초중고 동창회는 한 번도 나간 적이 없고, 대학 동기 모임도 연말 송년회 하나로 충분하다. 대학 시절부터 동아리, 동호회에 참여한 적이 없고, 사회에 나와서도 주식, 재테크, 등산, 낚시, 골프와 담을 쌓고 살다보니 중년 남자들의 모임으로부터 따돌림 받은 지 오래다. 이 글을 쓰며 ‘친구’를 꼽아보니 고등학교 동창 K, 대학 동창 K, 이웃사촌 L 정도인 것 같다. 나와 감각이 비슷한 친구, 아니면 나의 감각을 배려해주는 친구. 내가 생각하는 우정의 기준이다.
얼마 전부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더해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손 안의 스마트폰이 핵심 플랫폼이 된 세상에서 책을 만드는 아날로그적인 일이 조금 불안했는데, 모바일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일이라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일을 진행하며 내가 이 일에 호감을 갖게 된 이유가 벤처, 디지털, 모바일, 크리에이티브, 연결 같은 일의 특성이 아니라 나에게 함께하자고 제안한 사람들의 준수한 감각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들 역시 자기와 비슷한 감각이라 여기고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일본의 디자이너 나가오카 겐메이는 『디자이너 함께하며 걷다』에서 “자신의 감각과 비슷한 감각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자체가 대상의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했는데, 이제 갓 시작한 스타트업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이 ‘사람’의 감각에 달려 있음을 말한 것이리라.
그들은 왜 나를 선택했을까, 나는 왜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다시 말하지만, 감각이다. 그 감각은 절대적으로 나와 그들이 그동안 해온 일의 결과로 확인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온 유무형의 콘텐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배어 있는 디자인 감각, SNS의 태도,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어떤 분위기…… 심지어 나는 그곳의 대표가 아무렇지 않게 메고 다니는 가방을 보고 합류를 결정했다. 그 가방은 ‘포터(potter)’였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감각이 화려함이나 멋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단 내가 화려함이나 멋과는 거리가 멀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다. 새벽에 배송 받는 일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감각은 오랫동안 젊은 감각을 유지하고,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먹는 일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할애하지 않고, 시간과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한 사람이다. 일의 전문성? 그건 기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