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차이는 서로 이해 가능하나, 정치적 차이는 좁힐 방법이 없다
중국 법인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이미 한 달이 넘었다. 처음에는 한국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나 사람 사는 방법은 똑같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커피와 차
출근을 하면 일단 물을 끓인다. 물이 끓으면 나는 커피를, 직원들은 차를 탄다. 도심에는 스타벅스도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아직 중국 직원에게 커피는 낯설다. 나도 어릴 적 왜 어른들은 쓴 커피와 마실까 의아해했는데 지금 중국 직원들이 딱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 직장인, 특히 사무직에게 커피는 각성 효과를 가진, 일 하기 위한 연료 같은 존재다. 중국 직원들은 하루에도 몇 잔씩 커피를 마시는 한국인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한국 주재원 = 커피'하는 인식은 이미 회사 내에서 굳어져 있다. 여러 명이 참여하는 회의를 시작할 때면 물어보지도 않고 한국 주재원에게는 커피, 중국 직원에게는 차를 꺼내온다.
차가운 물과 따뜻한 물
한국 사람들은 겨울에도 찬 물을 마시고, 중국 사람들은 여름에도 따뜻한 물을 마신다. 따뜻한 물이 아니라면 최소 미지근한 물(常温水)을 마신다. 중국 직원들은 왜 추운 겨울에 한국 주재원들이 냉장고 안의 차가운 콜라를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 사람들은 차갑고, 시원한 느낌을 좋아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찬 물은 몸에 좋지 않다는 한의학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 앞에서 근무를 많이 하여 목, 어깨, 등이 빳빳하게 굳으면 중국 사람들은 湿气(습한 기운, 찬 기운)이 많다고 표현한다. 湿气가 많으면 양기(阳气)가 손상된다는 한의학적 설명을 하는데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듣고 넘긴다. 중국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한의학적 사고방식을 많이 느낀다.
목례와 손 흔들며 '안녕'
한국에서는 누구를 만나건 가벼운 목례를 하지만 중국 직원들은 손을 흔들며 서로 인사하는 게 보통이다. 한국인 상사에게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한국 주재원과 중국인 부하 직원이 만나면 주재원은 목례를 하고 중국인 직원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묘한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몇 번 경험하면 중국 직원도 목례를 하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중국 직원들에게 한국식 문화가 스며든다.
중국어로 부장을 그대로 部长이라고 쓰는데 근속연수가 긴 중국 직원들은 한국어로는 그냥 '부장'이 아니라 '부장님'으로 부른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반말과 존댓말 차이를 이해하는 중국 직원은 메일을 쓸 때 部长이 아닌 部长您(부장 + 존칭을 나타내는 닌)으로 쓰기도 한다.
빨간색과 파란색
중국 직원이 보고를 한다. 진행 업무 중 잘되고 있는 점과 잘 안되고 있는 점을 정리하였다. 중국 직원은 잘 되고 있는 점은 빨간색, 잘 안되고 있는 점은 파란색으로 표시를 했다. 한국에서는 잘 되지 않거나 위험이 있는 부분을 빨간색, 잘 되고 있거나 중요한 부분을 파란색으로 표시하는데 반대다.
문득 중국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주요 선전 문구들이 생각한다. 모두 하얀 바탕에 빨간 글씨로 써져 있었다. 중국인들에게 빨간색은 위험함, 불안함이 아니라 중요함, 친숙함이겠구나 생각이 든다.
의용군과 용병
국제 정세가 회사 원료가에 영향을 주고 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슈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중국 직원들은 "우크라이나가 외국인 용병을 고용하기 시작했다"는 말을 한다.
용병?
최근 우크라이나에 외국인 '의용군'으로 구성된 '국제여단'이 만들어졌다는 한국 뉴스를 봤던 기억이 난다. 용병은 돈을 벌기 위해 참전하는 군인이고, 의용병은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자원한 군인이다. 국제여단이 돈을 벌기 위해 참전한 군인인가? 참전하면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준다는데 그 사람들이 시민권을 받기 위해 참전한 군인들인가?
직원들이 사용하는 단어만 봐도 중국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를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를 잘 알수있다. CCTV를 봐도 러시아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거나, 러시아 정치인 입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나토의 확장에 따라 러시아가 자기 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대응 과정에 있어서는 부당함, 우크라이나가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식의 뉴스가 뒤따른다. 매일 보고 듣는 내용이 다르니 생각하는 바가 다를 수뿐이 없다.
나는 러시아가 외교적 목적 달성을 위해 다른 국가를 군사적으로 침공하는 행위에 찬성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주권을 지키고자 분투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존경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이런 말로 중국인 설득이 될리 만무하고 괜히 근무 분위기만 이상해진다. 좁혀질 수 없는 인식의 차이가 느껴진다.
사실 2003년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이라크를 침공했다. 아프가니스탄이야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이라크 침공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한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당시 한국 언론은 공격받는 이라크인 입장보다는 바그다드로 신속히 진격하고 있는 미군 입장에서 보도를 했다. 겉으로는 이념과 가치를 내세우지만 결국에는 국가 간 주도권 싸움, 편 먹기 게임이다. 한국은 지금 미국 편에 서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국은 당분간 러시아와 반미 연대를 깰 이유가 없다.
문화적 차이는 서로 이해도, 조정도 가능하지만 정치적 차이는 좁힐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