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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로이 Jun 23. 2021

정리를 하니 비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정리정돈 먼저, 비우기는 나중에


정리정돈을 하니 비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애초에 정리정돈 되어있는 깔끔한 집안을 추구했다.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싫어했고, 단정하고 가지런한 분위기의 공간을 좋아라 했다. 

그럼에도 미니멀 라이프를 결심하고, 정리정돈부터 시작해 나가보기로 다짐해 놓고 보니 여기저기 손을 봐야 할 공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내 눈에 거슬리던 공간부터 조금씩 손을 보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버려야 할 물건들도 떠밀려 나왔다. 정리를 하다 보니 비우기가 덩달아 가능해졌고, 미니멀 라이프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한결 덜 부담스럽고 더 수월해졌다. 


옷장 한 구석 혹은 서랍장 전체를 비워내는 통 큰 '버리기'를 할 용기는 아직 없었지만, 정리정돈부터 차근히 시작을 해나가다 보니 무엇이 내게 불필요한 물건들인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리정돈을 할 필요조차 없는 물건들이 말이다.


최소한의 것을 가지며 살기 위해 비우기에만 지나치도록 초점이 맞춰진 일부 미니멀리스트들의 말들을 생각했을 때엔 분명 골머리를 앓겠다 싶을만큼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비운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나의 속도대로 나아가 보자고 자짐한 순간부터는 정리정돈되는 물건들만큼이나 가지런해져 가는 나의 마음이 들여다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더 하나 둘 정리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비우기가 한결 더 수월해질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 순간, 정리정돈부터 시작한 나의 미니멀 라이프 첫걸음이 성공적이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두달 차지만, 

앞서 말했듯이 

처음 한달 정도는 집안 정리정돈을 할 때에 거실과 부엌 공간에 초점을 맞추었다. 


거실은 다이닝 테이블과 쇼파, 그리고 커피 테이블 외에는 딱히 가구라고 할 것이 더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정리정돈을 할 것도 없었다. 이미 미니멀하게 필요한 것만 집에 채워놓고 사는 중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더 할애하여 미니멀하게 비워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대로의 것들에 만족하며 살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큰 시간을 드릴 일이 없었다.


반면 부엌은 좀 달랐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내가 맥시멀리스트였던 적부터 부엌은 가장 공을 들여 정리하고 꾸며놓고자 했던 공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정성껏 요리를 해주는 그 공간이 내게는 힐링과 다름없었고, 그래서 이 집에 처음 이사를 오자마자 가장 신경써서 쓸고 닦고 채워넣은 공간도 바로 부엌이었다. 상부장이 없는 대신 가지런한 선반이 이미 시공되어 있는 부엌이었기 때문에 선반마다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컵들과 각종 조미료들, 그리고 커피 원두들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올려 놨었다. 다행히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쓴 곳이었기 때문에 당장 비우고 치울 생각이 드는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멀쩡히 쓰는 부엌 도구들이었기에 버리는 낭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하부장은 선반 위와는 딴판이었다.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공간이라서 그런지 치우고 정리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 이대로 더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쓰레기 장이 되어버리고 말겠다 싶더라.





오래된 영수증과 그 영수증들을 담아 놓은 하얀 박스 하나

친구네 아이가 두고 간 장난감 

체온계

촛불 켤 때 쓰는 라이터 여러개 

마스크 

이삿짐 쌀 때 썼던 포장 테이프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새 부엌 도구들


도대체 부엌 하부장에 왜 있나 싶을만한 물건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요리를 할 때 사용하는 건식 식자재들과 각종 면, 인스턴트 식품과 과자 등 다양한 것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난장판 하부장이었던 것이다. 그 내부를 들여다 본 순간, 내가 시작한 이 미니멀 라이프를 요긴하게 적용해봐야 겠다는 의욕이 들어섰다. 단번에 정리정돈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이사온 내내 단 한번도 청소를 하겠다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정리정돈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어 본 적도 없던 하부장 공간을..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 보기로 작정한 후에서야 비로소 단정한 집을 만들어 보겠다며 치울 생각을 해본 것이다. 





그렇게 치우고 정리정돈을 하다 보니 부엌 공간에 불필요한 물건들은 서랍장 안으로 옮겨 두었다. 잘 쓰지 않거나 뭐에 쓰는지 모르겠는 조리 도구 몇 개는 버렸다. 면들은 따로 부엌 서랍장 안에 면 전용 공간을 만들어 넣어 두었고, 잡동사니를 담아 뒀던 나무 선반 안에 너저분히 어지럽혀져 있던 인스턴트 누들과 캔을 담았다. 자주 쓰는 조리 도구들과 쌀을 배치해 뒀고, 코로나 후 짝꿍이 다시 출근을 하게 되면 도시락을 싸줘야 했기 때문에 도시락 통도 버리지 않고 잘 구비해 뒀다. 도시락 통 안에는 포장을 뜯지 않은 조리 도구를 넣어 놓았다. 내 살림이기에 내 손이 잘 가는 대로 정리정돈을 했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 냈다. 


서랍장 안에 임시방편으로 넣어둔 것이 뭐가 비운 것이고 뭐가 미니멀 라이프냐고 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뭐 어떠냐고 반문해보고 싶다. 버리기를 제대로 할 줄 못하는 내가, 좀 더 현명하게 잘 버리기 위해 고심하는 과정 중 잠시 서랍장 안으로 넣어 두는 것을 어느 누가 틀린 미니멀 라이프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미니멀 라이프는 자기만의 속도대로 비워나가야 한다. 남들이 빨리 비운다고 해서 남들의 속도로 따라가며 빠르게 비우는 것이 결코 더 좋은 미니멀 라이프를 살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없다. 궁극적인 미니멀 라이프의 목적은 자신의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이지 남의 마음이 풍족해 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 또한 그런 목적이었다. 당장 비우지 못해 쓸모가 있는 물건들까지 모조리 다 버리는 '낭비'를 막고 싶었고, 솔직히 잘 막을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은 서랍장 안에 넣어 뒀고, 그 사이 물건들을 잘 비우는 방법에 대해 여러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고 공부를 했다. 내 마음이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쯤, 서랍장 안에 모아뒀던 물건들을 가지고서 얼마 전 첫 비움을 시도해 봤다. 좀 더 신중하고 책임감있게 내 물건을 비워본 것이었다. 


비우는 과정에서 낭비라고 생각되는 것을 최소화 했고, 내가 사는 곳에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 버리기로 한 물건들 중 쓸모있는 것들은 길거리에서 동냥을 하고 있던 흑인아이에게 잘 전달해 주었다. 남아공에 살면서 내가 한 첫 버리기이자 기부였다. 나는 버리기와 기부하기를 동시에 시작하며, 미니멀 라이프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희열 또한 함께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 






대다수의 미니멀리스트들이 미니멀 라이프의 시작은 버리기라고 한다. 버리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비로소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떤 행동이 먼저 시작되는 지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비우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미니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천천히 나중에 비워도 된다. 이걸 틀리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미니멀 라이프는 어떠한 자격증을 필요로 하는 전문 지식인들의 특정 자격이 아니기에 애초에 정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그저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의 만족을 하고 현재에 감사하며 살자는 궁극적인 목적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미니멀 라이프일 뿐이다. 


내가 만약 애초에 버리기부터 시작을 했었더라면 "나 잘 버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어디서부터 무엇을 버리기를 시작해야 할 지 고민하는 데에 더 시간을 할애했을 것이다. 그저 지금 당장 가벼워 지고 싶은 나에게 그건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를 안겨 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볍게 정리정돈부터 시작을 하며 미니멀 라이프를 살기 시작해보니 처음에는 평소 청소를 하던 때의 마음 가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정리정돈을 하다 보니 가지런해지는 집안의 모습이 나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러다가 마주한 버려도 될 물건들을 버리는 순간 '비우기를 더 잘할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과 쾌감을 맛볼 수 있었다. 100명의 미니멀 리스트들이 있다면 100가지의 미니멀 라이프가 존재를 할 것이다. 비단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도, 10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 100명의 삶은 저마다 다르며 저마다 추구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삶 또한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비우기보다 정리정돈으로 먼저 시작한 이 미니멀 라이프가 딱 맞아 떨어졌다. 그러고 나니, 앞으로의 미니멀 라이프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Tld1eEfA

[나의 첫 비움을 담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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