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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okphoto Apr 10. 2024

희망사항: 장수 아티스트

Dear. 옥상달빛 언니들

지난 주말엔 옥상달빛 언니들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드라마 <파스타> OST를 부르던 이십 대의 옥상달빛 언니들은 어느새 마흔이라는 나이가 되어 [40]이라는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4년 만의 단독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언니들의 노래를 곧잘 따라 기타를 치며 부르기도 하고 힘들 때면 자주 꺼내어 듣기도 했지만 언니들의 단독 공연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휴직 신청 후 꽃비가 내리는 날에도 방구석에만 박혀있었지만 공연을 보려고 간만의 치장을 했다. 공연 중에 터질 눈물에 대비해 손수건도 챙기려 하다가 너무 본격적으로 울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서랍장에 다시 손수건을 집어넣었다. 준비물이 빠진 것은 없나 확인을 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을 놓고 갈 뻔했다. 이번 공연은 모바일티켓이 아닌 사전 배송된 종이티켓을 미리 챙겨가야 했던 것이다. 티켓 봉투 안에 표가 들어있는지 재차 확인을 한 후, 오랜만의 외출을 했다. 집에서 공연 장소인 노들섬 라이브하우스까지의 거리가 꽤 멀어서 가까운 외국으로 여행을 가는 기분까지 들었다. 창가 쪽에 위치한 캣타워에 오른 반려묘 율무만 열심히 구경하던 꽃들이 온 세상에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예뻤다. 예쁜 것을 일부러 보지 않으려는 심술은 어떤 이유에서 생기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지하철을 잘못 갈아타서 생각보다 늦게 공연장에 도착했다. 도착한 공연장 건물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체력은 약해지고 / 소화도 늦어졌죠

예쁜 걸 봐도 / 감동이 줄었어요“

[옥상달빛 정규 3집, 40]


마침 언니들이 공연 중에 이 문구에 대해 언급했더랬다. 다른 가수들은 보통 공연 포스터나 본인의 얼굴을 크게 현수막으로 걸어두는데 언니들은 나이가 들었다는 내용의 노래 가사를 큰 글씨로 붙여두었다며 웃으며 이야기했다. 언니들의 웃음을 따라서 크게 웃다가 나도 곧 40이라는 생각에 웃음기가 연해졌었다. 체력이 약해진 걸 부쩍 느끼는 탓에 요즘엔 풋살을 시작했다. 풋살에 간 건 겨우 세 번인데, 미니게임을 뛴 지 10초도 안되어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에 평일 저녁엔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기를 시작하기엔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서 걷기 운동을 또 시작했다. 신호에 기가 막히게 반응하던 장 운동도 예전 같지 않은 것, 세상이 정말 아름답지 않냐고 말하는 어느 시인님의 말씀에 입꼬리만 올려서 겨우 웃는 척을 했던 요즘의 내가 무수히 떠올라서 밝은 멜로디에도 마음이 괜히 아렸다. 그래도 옥상달빛 언니들이 나보다 미리 나이를 먹어 노래로 예고편을 해주시는 덕에 마음의 준비를 해둘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언니들의 노래를 마음속으로 찬송가 부르듯 따라 불렀다. 나 말고도 그런 관객들이 많았는지 언니들은 이렇게 말했다.


“종교에 귀의하듯 옥상달빛의 팬이 되는 분들이 많아요.”


나는 내가 평생 무교인 줄 알고 살았는데 아니었구나. 내가 바로 ‘옥타쿠’(옥상달빛을 사랑하는 오타쿠)였어. ‘아멘-’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공연을 보게 되었다. 내 청춘의 조각 하나하나마다 언니들의 노래가 연결되어 있었던 이유로 지나간 시간과 사람들이 엮이어 떠올랐다. 다들 어디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다가도 내가 그들의 안부를 알 수 없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연결되었던 것만큼, 끊어진 것에도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언니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가장 눈물이 났던 건 ‘옥상달빛’이라는 노래였다.


“옥상에 올라가 그 밤을 / 옥상에 누워 그 달빛을“


이 노래를 들으려고 달빛이 비치는 우리 집 옥상에 꼭 올라가야 했던, 갓 스물을 넘은 내가 그 노래 속에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땅보다는 하늘을 보게 되어서 마음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언니들의 노래는 하늘을 향한 채로 들어야 더욱 반짝였기에 평소 고개를 잘 숙이고 다니던 나도 옥상에서만큼은 해바라기처럼 달을 향하게 되었다.


“여기에 모여 앉아 사랑을 노래하자

청춘을 우리를 오늘을 내일을 노래하자“


비록 옥상에 올라온 건 나 하나였지만 ‘오늘’을 ‘내일’을 노래하다 보면 ‘여기’에 모여 앉게 될 거라 바라던 밤들도 노래 속에 있었다. 마법처럼 지금은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부르는 언니들도 내 앞에 있었다. 한밤중의 달만큼이나 밝고 영롱한 노래에 관객들은 묻어둔 어둠을 밝혔다. 어둠을 밝히는 데에는 눈물이 필요했는지 여기저기에서 콧물을 훔치는 소리가 들렸다. 울음을 참다 보면 콧물이 터지는 법이니. 그렇게 함께 웃다가 울다가 콧물도 먹었던 그 밤엔 이런 생각을 했다. 역시 살아있길 잘했다고. 그러고는 옥상달빛 언니들의 장수를 소원해 보았다. 그래야 나보다 먼저 나이를 먹고 나이 타령을 하는 언니들의 노래를 청심환 삼아 살아갈 수 있을 테니. 잠이 안 오는 늦은 밤엔 새벽기도 하듯 언니들의 노래를 스트리밍 해야지.


“그러니 언니들, [50] [60] [70] [80] [90] [100] … 이렇게 쭉 앨범 냅시다.

진짜로 오래 사는 장수 아티스트가 되자고요.

성대하게 환갑, 칠순, 팔순 잔치도 열고요.

일단 오래 살아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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