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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리남 Jan 03. 2021

조지오웰 [1984] 리뷰

영상시청으로 보시는 것이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이번 리뷰는 [1984] 영화의 장면을 많이 삽입해서 더욱 그럴 듯 합니다. 아래 글들은 영상의 스크립트로 참고 부탁드립니다.


https://youtu.be/gXFkUdcObk0


1948년 작가 조지오웰은 한 작품을 탈고하여 출판사에 원고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48년의 년도에서 마지막 두 자리를 서로 바꿔 [1984]로 출간됩니다. 원래 제목은 “유럽의 마지막 인간”이었다고 하며 이는 소설 내용에 나오는 문구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입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뜻합니다. 토마스 모어의 소설 [유토피아]에서 나온 말로 이 세상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을 뜻합니다. 어디에도 없는 이상적이고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이 이상향의 반대말로 부정을 뜻하는 dis가 붙어 디스토피아가 됩니다. 즉 어디에도 없을 이상향과 반대되는 곳을 뜻하게 됩니다. 이 말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이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1. [1984]가 설정한 세상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가 설정해 놓은 세상입니다. 이 설정들은 개인의 자유와 생각, 개성을 억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1984]의 설정들이 벌어졌을 때 이 소설은 다시 언급되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1984]라는 소설을 눈여겨 봐야할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는 현대 사회가 전체주의적 성향으로 흐르게 되었을 때를 가정한 소설입니다. 간혹 [동물동장]과 더불어 [1984]를 사회주의를 비판한 소설이라고들 하는데, 조지 오웰 자체가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지오웰은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사회가 전체주의적인 성향이 짙어 지는 것을 경계하고 비판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체주의에서 개인을 억압하고 감시하는 것을 비판할 때, 꼭 나오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빅 브라더>입니다. 빅 브라더는 주인공 윈스턴이 살고 있는 오세아니아의 당 최고 권력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나라 어디에나 빅 브라더의 포스터가 붙어 있고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12쪽)"고 쓰여 있습니다.

     

실제로 빅 브라더는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포스터와 텔레스크린 이라는 방송 화면상에서는 끊임없이 나오지만 그 실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이 만들어낸 허구의 최고지도자, 불멸의 권력자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해당 화면은 영화로 만들어진 <1984>의 한 장면입니다. 텔레스크린 아래의 문구가보이시죠? 이것은 당의 슬로건입니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고 각각 쓰여있습니다.

텔레스크린 아래에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라고 당의 슬로건이 쓰여있다.

     

소설에서 이 세계는 3국에 의해 분할되어 있습니다. 윈스턴이 사는 오세아니아, 현 러시아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그리고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이스트아시아 3개국입니다. 노란색 지역은 3개국의 분쟁지역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이 세 나라는 끊임없이 전쟁 중입니다. 두 개 국가가 동맹을 맺고 한 국가와 전쟁을 하기도 하지만 한 국가 자체를 없앨 정도의 대규모 전쟁은 없습니다. 분쟁지역에서의 국지전만 반복될 뿐입니다. 그리고 당은 이를 이용해 국민에게 공통의 적을 세우며, 분노를 적국으로 향하도록 유도합니다.     


당은 절대적인 권력을 자랑하며, 그에 대항하는 자들은 사상경찰에 의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흔적조차 없어지게 됩니다. 그냥 없었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소설 초반부에 오세아니아는 유라시아와 전쟁 중이었는데, 당이 '유라시아는 동맹국이고 우리는 이스트아시아와 전쟁 중이다'라고 선포하자 유라시아와의 전쟁 사실은 없던 일이 되어버립니다. 관련된 문서나 증거들은 며칠 동안 당의 작업에 의해 다 없어지고 그것을 증명할 것은 '기억'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또 '이중사고'에 의해 이는 또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중사고(doublethink)는 두 개의 상반된 내용을 모두 받아들이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당이 어떤 사건에 대해 수정하고 조작을 합니다. 그런데 이중사고를 하는 사람은 조작한 사실 자체를 인정하면서도 조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 연설하는 연사에 의해 유라시아와의 전쟁이 아니라 이스트아시아와의 전쟁이라는 것이 대중들에게 알려집니다. 이에 대중들은 그동안 유라시아와의 전쟁을 했다는 문구와 포스터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그것을 찢어버립니다. 첩자가 활동한 것이라고 말하며 말이죠. 다른 말로는 현실통제라고도 이중사고를 부를 수 있습니다.     


또한 ‘신어’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신어는 언어가 곧 사고를 지배한다는 믿음 아래 당이 만들어낸 새로운 말입니다. 영어를 바탕으로 하며 기존의 말을 바꾸거나 단어 다양성을 줄입니다. 예를 들어 좋다는 good, 나쁘다는 bad이지만 bad대신 ungood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당이 말을 바꾸는 것은 조금 더 사람들의 사상과 생각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유”라는 말 자체를 없애버린다면 사람들은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으며 그에 따른 행동이나 말들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휘의 다양성을 낮추고 통제함으로서, 억압할 수 없는 생각과 사고의 영역조차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사고능력을 마비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원의 집이나 나라 곳곳에는 텔레스크린이라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출이 동시에 가능한 기계로서 당의 선전 내용을 전하는 동시에 사람들의 행동과 말들을 감시합니다. 그래서 주인공 윈스턴은 이 텔레크스크린의 사각지대에서 일기를 쓰게 됩니다. 당연히 일기쓰기는 금지된 행위입니다. 

텔레스크린을 피해 일기를 쓰는 윈스턴

오세아니아는 크게 3계급으로 나뉩니다. 내부당원, 외부당원, 프롤이라 불리우는 노동계급. 프롤은 텔레스크린으로 감시를 당하진 않지만 우민화가 깊이 진행된 상황에 있는 계급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의 내부당원입니다. 그리고 그 누구든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품은 인물들은 당에 의해 곧바로 숙청을 당합니다. 심지어 개인적인 시간을 오래 갖는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고발당합니다. 사생활과 개인공간은 없다고 무방한 사회입니다.

출처: 위키백과

     


2. 한 외부 당원의 작은 반란과 그 결말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외부 당원입니다. 그는 현대사회에 의문을 품고 지식적인 호기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당이 축출해야하는 인물 중 하나라고 본인을 평가합니다. 당연히 자유로운 생각과 말을 할 수 없는 사회에서 일기쓰기는 금지되어 있는데, 채링턴이라는 노인이 운영하는 고물상에서 산 노트를 일기장으로 삼아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갑니다.     


일하는 곳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상경찰의 끄나풀정도라 여겼던 창작국의 여성 줄리아에게 "사랑한다"라는 쪽지를 받습니다. 오세아니아는 결혼을 의무화하고 제도화했기에 사사로운 이성의 만남이나 사랑 또한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윈스턴과 줄리아는 아무도 모르게 만나게 되었고, 줄리아만이 아는 은밀한 장소에서 만남을 이어갑니다. 그러다 윈스턴이 처음 일기장을 구입했던, 텔레스크린이 없는 고물상의 2층 방에서 주기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오브라이언이라는 내부당원과 접촉하게 되는데, 평소 윈스턴은 그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윈스턴은 줄리아와 함께 오브라이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당의 반대 세력인 형제단에 속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은 형제단에 가입합니다. 형제단은 실체는 불확실하지만 당의 반란세력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윈스턴과 줄리아가 만남을 가졌던 고물상의 2층은 감시당하고 있었습니다. 주인인 채링턴은 사상 경찰이었고, 벽의 그림 뒤에 텔레스크린이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형제단인 줄 알았던 오브라이언은 사실 당의 지도자급 인물이었으며, 오랫동안 지켜봐온 윈스턴을 속여서 체포한 것입니다.

      

윈스턴은 여러 고문과 회유에 의해 몸과 정신을 혹사당합니다. 당은 그를 죽이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죽이게 되면 그는 순교자로서 남게 되고, 이는 완벽한 당과 지배체제에 오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회유하고 설득해서 정신을 개조하고 세뇌시키는 것이 당의 목적입니다.   

  

결국 윈스턴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되고 풀려납니다. 정신개조와 세뇌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사고능력 자체가 정지되어 버립니다. 당이 2+2=5라고 한다면 그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술집에서 행복한 몽상에 잠깁니다. 잡혀 들어갔을 때 결국 총살을 당한다는 소문을 떠올립니다. 어느 날 새하얀 타일이 깔린 복도를 자신이 걷고 있으면 무장한 간수가 뒤에서 몰래 머리에 총알을 박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라고 소설은 말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그저 “행복한 몽상”일 뿐입니다.     


몽상에 빠져나와 윈스턴은 술집에 걸려 있는 빅브라더를 올려다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p.486          



3. 개인의 감정과 생각마저 정복하는 전체주의     


윈스턴과 줄리아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둘의 관계와 사랑이 어떻게 변화는지를 보면, 전체주의가 얼마나 개인을 말살할 수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언젠간 자신들이 잡힐 것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당은 우리를 자백하게 할 순 있지만 그들 때문에 윈스턴과 줄리아가 서로 사랑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진짜 배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아무리 당이라 하더라도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윈스턴은 당의 사람들이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까지 알아 낼 수 없으며,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아무리 파헤친다 하더라도 속마음은 공략할 수 없는 신비로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이 말들은 줄리아와의 사랑은 자신의 깊은 속마음이며, 이것은 절대 바꿀 수 없고 건드릴 수 없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윈스턴이 잡혀 들어갔을 때 101호라는 공간이 나옵니다. 이곳은 무시무시한 곳이고 윈스턴이 들어가기 전에 그곳을 경험한 다른 죄수가 제발 그곳은 데려가지 말아달라며 애원하고, 애원하다 결국 화까지 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데려가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죠. 극도로 공포를 겪게 되면 나오는 반응입니다. 결국 윈스턴도 그곳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그 죄수가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고문하는 곳입니다.   

  

고물상의 2층에서 쥐가 나오자 윈스턴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쥐”라고 줄리아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도 윈스턴을 그림 뒤 텔레스크린으로 감시하고 있던 당의 세력들은 역시나 쥐로 그를 고문하고자 합니다. 얼굴을 고정시키고 쥐가 있는 상자를 그 얼굴에 들이 붓는 것이죠. 잘 안 보이지만 얘가 쥐입니다. 그리고 그 쥐가 육체를 뜯어먹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오브라이언은 말합니다.     


쥐가 들어있는 상자의 잠금장치를 하나 해제하고 오브라이언은 그를 계속 압박합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힌 윈스턴은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을 결국 알아냅니다. 자신 대신 에 벌을 받아야 할 사람, 자신과 쥐 사이에 놓아야 할 하나의 몸뚱아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그 사람은 바로 줄리아입니다.   

 

결국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이 형벌을 줄리아에게 하라고 소리칩니다.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도, 살갗을 벗겨 뼈를 발라내도 말예요. 저는 안 돼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저는 안 됩니다!” 이 말을 한 이후 오브라이언은 더 이상 윈스턴을 고문하지도, 설득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윈스턴은 풀려나게 됩니다.     


이 소설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윈스턴과 줄리아가 재회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윈스턴은 풀려난 뒤, 역시 풀려난 줄리아와 만나게 됩니다. 둘은 “당신을 배반했다”라고 서로에게 말합니다. 소설에 그려지진 않지만 아마도 줄리아도 윈스턴과 같은 상황을 겪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라고 윈스턴은 말하지만 그 말은 결국 공허한 외침이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 다시 만나지 않았고, 아마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서로의 사랑을 믿었으며 이 사랑은 절대 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은 그 ‘절대’를 꺾어버렸습니다. 정복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인간의 생각과 사고, 감정까지 완전히 길들여 버리고 정복했습니다. 윈스턴에게 최후의 보루였지만 결국 정복당했습니다. 줄리아를 사랑하며 빅 브라더를 증오했던 윈스턴은, 줄리아를 져버렸고,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 총알이 날아와 박히는 상상을 하며, 그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원하는 윈스턴.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는 빈 껍데기가 된, 전체주의에 희생 된 한 개인을 보여줍니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상상을 하는 윈스턴은 빈껍데기가 된 체 살아갈 것입니다. 영화에서 마지막 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전체주의가 개인의 개성을 어떻게 철저하게 말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 의식의 깊은 영역까지 어떻게 파고들어 한 개인을 체제에 순응 시킬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인간의 사고와 생각을 지배하려는 전체주의나 권력, 정치에 대항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의 사고능력, 특히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 리뷰를 마칩니다. 올해에는 고전을 중심으로 리뷰를 진행해볼까 하며 [1984]를 첫 리뷰로 준비해보았습니다. 앞으로의 리뷰도 기대 부탁드리며 좋아요와 구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주신 힘으로 좋은 영상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책을 리뷰하는 남자, 책리남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지오웰 #조지오웰1984 #1984리뷰 #198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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