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시지 그림에 양진건 시
오랜만의 연가
식탁 밑에서 은밀히 그대 손을 만졌죠
은밀한 것은 아픔인지 그대 손 펴지도 못한 채
웅크려 슬퍼하고 있더군요.
귀 기울이면 움츠려 신음하는 것이 그대만이 아니어서
담벼락 밑에는 새앙쥐 같은 상심.
그것들도 안팎으로 굉장한 싸움에 힘겨웠던지
예배자를 잃은 신처럼
영혼은 무겁게 구겨져 있더군요.
목소리가 너무 떨려 나는 그것들이
울음 참는 줄 알았지만 그대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제몫의 출혈을,
제 몫의 바람을 키우고 있기는 하죠
살 속 어디쯤인가에 혼자 커가는 흉흉한 환상,
휴식은 잠시이고, 아무 것도 위안되지 못할 때
나 그대 만났던 것이고
수반의 물이 조용히 말라가듯
오래 그대를 만나지 못할 것이므로,
산다는 일이 눅눅하게 펄럭이기만 할 때
이제 굉장한 싸움에서 잠시 돌아와
그대 미세한 온기의 배후를 찾고 싶군요
그때쯤에 나 그대를 사랑했었다 말해도 될까요
변시지
<"폭풍의 화가"라 불리는 변시지는 192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5년 오사카 미술학교를 졸업, 조선인 최초로 일전(日展)에 입선하였으며, 1948년 일본의 최고 중앙화단인 광풍회의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7년 한국에 돌아와 서라벌 예술대, 한양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1975년에 제주대학교로 옮겨 작품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