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는 땅끝마을이 있다.
**구 **동... 처럼, 한자어가 기본인, 전형적인 동네 이름이 아니어서 좋았다.
'땅끝 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좀 낭만적, 시적이라는 생각, 마을 사람들도 뭔가 좀 특별한 감성을 나누며 살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단순히 이름만으로 느끼는 동화적 감성에 빠져있다가, 문득 내가 사는 여기가 정말 동화 속 땅끝 마을이라면? 이런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되었는데, 순간 정말 놀랐다.
갑자기 신비감은 사라지고 현타... 비슷한 것이 오는 것이다.
우리 마을 저 쪽, 멀리 보이는 언덕 뒷 편이 우주의 낭떠러지 같은 곳이라면..
일단, 좀 겁나고 외롭다.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니.
더 이상 앞으로 나갈 곳은 없는 걸까?...
꿈을 꾸는 듯 살 것도 같다.
정말 땅 끝일까?
저 쪽 너머에 뭔가 다른 세계가 있는 줄 누가 알겠어?
어떤 생각이 되었든 땅끝이 주는 느낌은 막막했다.
여기는 땅의 끝, 더 이상 나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달콤한 꿈과 공허함을 오가던 '땅끝'이라는 단어는 다음 문장을 만나고 다른 옷을 입은듯 다시 마음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땅끝.
뒷걸음질만 허락된 곳이라고 나희덕 시인이 말했다.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좌절을 멋들어지게 표현했지만 그냥 씁쓸했다.
차라리 뒤돌아서는건 어때? 봐 봐, 다시 내 앞에 가야 할 길은 아주 길~잖아.
사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리다가, 뭉클>, 김기주 지음
차라리 뒤돌아 보는건 어때?
뒷걸음질만 허락된 곳이라면, 차라리 되돌아보라고.
그럼 다시 내 앞에는 아주 긴~~ 길이 놓여있다고 말해주는 문장.
땅끝마을은 '끝'인 동시에 '시작'이기도 하다는 사실.
앞으로 나가야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 내 강박이 내 눈을 가렸겠지 싶다.
어쩌면 땅끝이란, 정해진 '장소'가 아니라 상태를 의미하는 '형용사'인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끝이야, 라고 단정짓는 우리 마음의 상태.
왔던 길 되돌아 가면 어떤까?
우리가 만나는 땅끝은 언제, 어디에도 있다.
작은 일상에도, 큰 도전앞에서도.
그 곳에서 서게 될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실패"의 이름으로 부르는가?
공들이고 공들였던 글이 갑자기 날라가 버렸다고 그 곳이 땅끝인가?
되돌아가서 새 페이지를 열고 다시 쓰면 길이 또 생긴다.
실패가 아닌게 된다. 그렇게 쓴 글이 더 좋은 글이 되기도 한다.
오래 준비하던 시험에, 공모에서 떨어졌다면, 그 곳이 땅끝인가?
뒤돌아 보면 같은 길이 또 있다. 다시 걷는다면, 아직 실패는 아니다.
다른 길도 있다. 새로운 길로 걸어볼 수도 있다.
"차라리 뒤돌아 보는게 어때?"
이 말 한디에 '땅끝'이라는 말이 더이상 죽어버린 화석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실패라 부르며 그 자리는 땅끝이라 좌절할 바엔 차라리 뒤를 돌아보면 될 일이다.
그럼 그 끝이 다시 '시작'이 되는 마법이 시작된다.
김기주 작가의 말처럼, 정말 사는게 생각보다 간단한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