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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하면 붙잡기

아무리 작더라도

by 소리


꿈틀

1. 부사 : 몸의 한 부분을 구부리거나 비틀며 움직이는 모양.

2. 부사 :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갑자기 이는 모양.



사전적 정의대로 마음이 꿈틀대는 건, 갑작스러운 잠깐의 순간이다.

내 경우 이 꿈틀이 꽤 오래 머물면, '뭉클'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바람같이 마음에서 사라져 버린다.


사실 내가 더 욕심내고 싶은 건 오래가는 꿈틀이 아니라 스쳐가는 꿈틀에 있다.

'뭉클'의 대상은 거의 예외 없이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 애쓰기 때문에.


느낌이라면 글을 써서 붙잡아 두고, 사물이라면 대가를 지불해서 내 소유로 만들고, 사람이라면 기꺼이 용기 내어 마음을 전하려 노력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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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람같이 스치는 꿈틀은 너무 쉽게 놓아주곤 한다.

문제는 막상 그렇게 쉽게 놓아주었던 마음의 꿈틀이 끝내 무언가의 '씨앗'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걸 한참이 지나 되돌아 보고서 알게 된다.


친구의 낡은 소묘책을 보고 마음이 꿈틀 했을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무슨 그림을?이라는 생각으로 그 꿈틀대는 마음을 가볍게 버렸다.


아무도 관심 없던 용비어천가의 소리와 가락이 아름다워서 마음이 꿈틀 했던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설마 용비어천가에 감동이?라는 생각으로 그 꿈틀거림을 웃으며 넘겼다.


어느 날 문득 할머니의 텅 빈 듯한 눈빛을 보고 마음이 꿈틀 했던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치매일리가?라는 생각으로 그 찝찝했던 불안을 덮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결국 이 나이에 그림을 배우며, 이미 화가가 된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고,

국문학과에 진학하지 못한 것을 마음 깊이 속 쓰리게 후회하고 있고,

텅 빈 눈빛 이후로 할머니에게는 조금씩, 하지만 빠르게 치매 증상이 찾아왔더랬다.


그 순간의 꿈틀거림을 붙잡았더라라면,

지금의 나는 아마 많이도 달라져 있을 테고,

할머니는 좀 더 오랫동안,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순간적인 마음의 꿈틀거림을 붙잡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강렬하지만 너무 짧은 순간이라 고속열차의 창문 밖 풍경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그래서 대부분 그저 잠깐 느껴진 감정이려니 생각해 버리기 쉽다.


그렇지 않고 굳이 붙잡고자 한다면, 분명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순간 다른 것들은 멈추고, 이 꿈틀거림의 대상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는 세월이 쌓일수록 이런 마음의 꿈틀거림은 흔치 않은 감정이 된다.

세월에, 경험에 무뎌지기도, 무관심해지기도 하니까. 마음은 점점 굳어져 식어 버리니까.




그러니 더욱 소중하게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욕심이 생기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진동으로, 아무리 희미하게 느껴지는 꿈틀거림이라도 그것은 내 영혼, 정신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니 말이다.


매일 하루 한 가지씩 마음의 꿈틀거림이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반드시 기쁨과 행복과 짜릿한 감동이 아니더라도.

슬픔이어도, 아픔이어도, 눈물이어도....

차갑게 굳어버린 마음 말고, 그렇게 말랑말랑한, 온기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꿈틀거림은 無心이 아니라 내 有心의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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