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경칩

입춘보다 설렌다

by 소리

경칩.


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자는 驚(놀랄 경), 蟄(숨다, 틀어박힐 칩).

숨어있고, 틀어박혀 있던 존재가 놀라는 시기.


이 무렵엔 봄비가 내리거나 천둥도 치곤해서 땅 속에 숨어있던 벌레들이 놀라 땅 밖으로 나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물며 온도에 민감한 개구리는 어땠을까? 다른 어떤 벌레들보다 놀라 기겁하며 밖으로 뛰어 올랐을 법하다.


개구리.gif 그림 : 소리 by 미드저니(6.0)



나는 왠지 입춘보다 경칩이 더욱 드라미틱하게 느껴지곤 했다.


만물의 박수와 환영을 받으며 위풍당당 걸어들어오는 입춘에 비해

보일 듯 말 듯 봄의 기운을 만물에 스며들게 하는 시기.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던 창세기의 시간처럼,

봄의 기운이 온 천지에 돌고 돌며 운행하고 있을 것만 같은 시기.


그래서 마침내는 숨어있고 틀어박혀 있던 생명체를 깨우는 이 드라마틱한 날이

경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실은 오늘 산책을 계획했었다.

‘절기’라는 단어를 떠 올릴때마다 서양의 ‘캘린더’와는 달리 왠지 우주의 기운을 감싼 채 돌고 도는 신비한 시간의 느낌이 있다. 경칩이란 절기는 나에게 더욱 그러한 느낌을 진하게 주곤 했기에 올 해는 꼭 그 기운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런데, 산책하기엔 실망스럽게도 오늘 날씨는 흐림이다.

하지만 한 편으론 ‘경칩답다’는 생각도 든다.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 아직도 겨울의 찬 기운과 새로운 봄 기운이 섞이며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봄기운.gif 그림 : 소리 by 미드저니(6.0)


나의 봄도 그러했다.

여기까기가 딱 겨울, 그 다음부터는 인생의 봄. 이런 것이 아니라,

봄인 듯 희망이 보였지만 여전히 겨울처럼 힘들었고, 아직도 겨울처럼 혹독했지만 봄 같은 빛이 보이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에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겨울에서 살게 될지, 봄의 기운으로 넘어가게 될지.


오늘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도 예정대로 산책을 했다.

겨울이 느껴지는 추운 날씨에도 그 가운데를 천천히 스며들며 운행하고 있는 봄의 기운이 있으리라.

그것이 보이는 오늘을 살고 싶었고 그런 오늘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