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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스토랑 Jun 29. 2020

민주주의 VS 엘리트주의

플라톤의 철인정치로 본 엘리트주의

민주주의는 가끔 우리에게 회의감을 준다. 민주주의 사회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뭘 하든 버벅거린다. 좀 더 효율적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만든 대의 민주주의는 오히려 우리의 속을 더 까맣게 태운다. 접착제를 밟은 듯 한 발자국도 쉽게 못 나아가는 국회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엘리트가 권한을 독점해서 국가를 운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엘리트주의는 이미 우리 근처에 가까이 있다.


이런 생각이 완전히 시대착오적인 생각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소위 전문직들은 자격을 인정받으면 엘리트 대우를 받아 권한을 독점한다.



가장 일반적인 예는 의사이다. 국가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은 의사는 약 처방 있어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몸인데도 불구하고 의사에 처방이 없으면 약을 먹을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내 몸에 대해서 잘 안다고 주장해도 불가능하다. 비슷한 예로 우리나라의 행정과 외교를 담당하는 고위직 공무원들도 고시를 통해 선발된 사람들만이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


이렇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이미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엘리트의 독점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엘리트들에게 권한을 넘기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는? 정치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전문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닌가? 엘리트를 양성해서 정치적 권한을 다 넘겨주면 우리 사회는 더 효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약 2,500년 전에 했던 사람이 있었다


가운데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플라톤.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보면서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이고 멍청한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시민들에 의해 죽었다는 점을 상상하면, 그가 민주주의를 중우정치, 선동, 야합, 분열과 반목. 정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외세와의 결탁, 전쟁 사주, 이적 행위,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보았던 것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 대신 엘리트에 의한 '철인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독재정치를 옹호했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 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모든 정치체계 중에서 독재가 가장 안 좋은 정치체계라고 말했을 정도로 독재정치에 대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플라톤은 독재자 한 명이 아니라, 가장 우수한 인재 집단을 선발, 육성하여 국가의 정치를 맡기는 엘리트 정치를 꿈꿨다.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재를 막고 엘리트들이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엮이지 않도록 다소 충격적인 선발 과정을 만들었다.



플라톤이 말한 엘리트 선발, 육성과정


1. 국가의 여자들은 남편을 공유한다.

2. 뛰어난 자질을 가질을 가진 아이를 낳기 위해 우수한 남녀를 선발하여 집단 섹스를 하는 날을 만든다.

3. 이를 통하여 누가 자신의 아이이고, 누가 자신의 부모인지 절대 알 수 없게 한다.

4. 선별된 아이는 국가의 어른들이 공동으로 양육한다.

5. 소년들 중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자들을 뽑아서 2,3년 동안 체육 훈련을 시킨다.

6.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산수와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 여러 학문을 가르친다.

7. 20세가 되면 교육 내용을 체계화시켜 가르친 뒤 평가하여 소수 인재를 거른다.

8. 30세가 되면 학문과 전투 그리여 여러 훈련을 시키면서 통찰력을 기르게 한 뒤 다시 평가를 진행한다.

9. 5년간 철학 교육을 받은 뒤, 15년간 현실 세상에서 실무경험을 쌓는다.

10. 여기까지 두각을 나타내어 주변 동료들과 대중들에게 우수한 평가를 받아 남은 인재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맡긴다 (50세 무렵)


지금 읽어보면 경악스러운 내용들이 많다. 남편을 공유한다던지, 누가 내 아이이고 부모인지 모르게 만든다던지, 여성은 선발과정에서 처음부터 제외한다던지,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 다소 정치와 관련 없는 학문을 배워야 한다던지 등등 지금의 관점에서는 상식 밖의 내용들이 많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만 가져와보자.


학연, 지연 심지어는 혈연까지 없는 뛰어난 인재들을 국가가 선발, 양성해서 정치를 맡기면 국가는 더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플라톤의 엘리트 선발과정을 현대적으로 바꿔서 정치 엘리트를 선발해본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정치적 권한을 넘겨보는 상상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전에 가장 중요한 질문, '국가의 발전' 이란 무엇일까?


플라톤의 엘리트 정치를 현대적으로 구현해본다고 해도 결론은 실패다. 그 이유는 "엘리트들이 사익을 추구하고 독재를 하면 어떡하냐?" "선발과정에서 평가는 어떻게 할 것이냐?" "부모를 모르는 아이를 낳을 것이냐?" 등등 절차상의 문제는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국가의 발전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지면 국가가 발전한 것일까? 아니면 분배가 잘 이루어져 사람들이 더 평등하게 사는 국가가 더 발전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전쟁을 일으켜 다른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 발전하는 것일까? 아니면 개인과 집단의 도덕성이 충만해지는 것이 발전된 국가의 모습일까?


"어떤 것이 국가의 발전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면 셀 수 없이 많은 답변이 나올 것이다. 그냥 여러 의견이 나오기만 하면 좋은데, 그 속에서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의견들도 많을 것이다.  


만약 엘리트들을 양성했다 치더라도, 그들에게 우리는 국가의 발전이라는 것을 어떤 모습으로 제시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이 질문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이 개입되는 서술형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엘리트 정치를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은 '국가의 발전'이라는 뜻이 명확히 정의되지 못하기 때문에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사고 실험이다.



단순한 사회에서만 가능한 엘리트주의



플라톤이 철인정치와 같은 엘리트주의를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사회가 지금보다 굉장히 단순했기 때문이다. 그리스에 민주주의가 등장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당시에도 시민의 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시 시민은 성인 남자만 해당되었고 여성, 외국인, 노예는 참정권 자체가 없었다. 또한 노예가 생산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민들이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에 벗어나서 여유롭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머릿속에는 "모든 인간을 다 이롭게 해야 한다"는 고민은 전혀 없었다.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아닌 소수의 한정된 사람들이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고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만약 "어떻게 하면 서울 사람들만 더 잘 살 수 있을까?"라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면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이다.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의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면 서울시민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서울이 아닌 전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희생 없이 더 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민주주의가 한 발자국도 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누군가 국가의 발전을 명확히 정의하려 든다면, 그것은 위기의 시그널


다수가 선택한 것을 사회의 목표로 실행해나가고 소수의 의견은 최대한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 끙끙거리는 민주주의를 보면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답답함 때문에 엘리트주의를 그리워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시 비극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것이 모호하고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선전, 선동에 능한 괴물이 등장하면 우리는 그 괴물이 제시한 이상을 따라 지옥으로 갈 수도 있다. 멀리 있는 얘기 같지만, 우리는 이미 한 세기 전 실제로 '히틀러'라는 이름을 가진 괴물을 한 번 목격하였다. 그는 '우월한 게르만족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발전된 국가의 모습을 명확히 제시했다. 하지만 히틀러가 내세운 그 이상은 사실 독일 국민들에게 전쟁과 죽음만을 예고하고 있었을 뿐, 국민과 국가의 발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답답하고 유약했던 민주주의 대신 히틀러의 선전, 선동에 홀려 그릇된 국가의 발전을 쫓은 독일의 처참한 결말은 역사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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