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욕망은 서행 할 차례

워킹맘 다이어리

by 최서영
4.png
1.png
2.png
3.png
5.png
6.png
7.png


"내 소임은 이게 다 인걸까? 이대로 생을 멈춰도 상관 없을거 같아."


나는 먹던 피자를 내려놓고 남편의 얼굴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남편에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섬뜩한 말이었다. 더군다나 저 대사를 치기 방금 전에 둘째가 임신됐을지도 모른다고. 착상혈일지도 모른다고. 혹시 모르니 맥주는 안 마시는게 좋겠다고. 내 대사는 그것이었단 말이다. 여보, 이게 다 나때문일까? 내가 하고 있는 이 욕망을 채우는 일련의 과정들이 당신의 삶을 좀 먹으며 이뤄낸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소임을 다 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방금 그 말 지금 죽고 싶다는 이야기지?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어 이 복잡한 대사를 속으로만 생각한 채 잠자코 남편의 다음 대사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도 내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남편의 마지막 말은 이런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말 뿐이었다.


남편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대사가 어떻게 나오게 된건지 그 경위를 따지자면 일주일 전쯤으로 돌아가보아야 한다. 나는 육아와 일, 거기다 글과 그림 같은 것을 창작하는데에 흠뻑 빠져서는 정신 없는 한 주를 보내고 있었다. 딱히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에 성에 차게 해보려고 이것저것 스스로 마감일을 잡고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 작업 속도가 달팽이마냥 느리고 때때로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죽은듯이 욕망을 감추고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일은 일대로 제 시간에 맞춰 멋지게 해내고 싶어서 어떻게든 업무시간을 최대한 뜻 깊게 쓰고, 퇴근 후에는 어떻게든 좋은 엄마이고 싶으니까 다이소에 들러 아기 장난감을 사거나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와 집안일과 육아를 해내며 고군분투했다. 나는 업무시간이나 퇴근 후 돌봄노동을 해내는 사이에도 손이 근지럽고 몸이 베베 꼬였고 마음이 조급했다.


이것을 욕망이라 부르는게 마땅해보였다. 집안일을 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글을 썼고 퇴근길에도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보며 상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 되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인터넷강의를 들었다. 홀몸이면 벌써 시작했을 그 일들을 이제서야 해낸 것이 하도 오래 억울했던지 더 이상 서럽지 않았다. 그냥 분주했다. 단지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니 내 성에 안 차 답답할 노릇이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행위도 자기 전 핸드폰 브런치 어플로 적어두는 것이다.


다시 평일 전쟁이 시작 되기 하루 전인 일요일 저녁,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북토크가 열렸다. 나는 또 아이를 시댁에 맡겨두고 꾸역꾸역 북토크에 참가했다. 어떤 전업주부도 나 처럼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나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풀충전됐다.



주말이 오면 밀린 숙제처럼 내가 하고 싶은 욕망들을 채워나갔다. 그것을 해내는 동안에는 내가 살아있다고 느꼈다. 내 욕망은 단지 그것 뿐이다. 그렇게 주말에 에너지들을 풀충전하고 다시금 그 욕망을 서행하기를 준비하는 전날 밤, 남편은 입에 술도 안 대고 '소임'이라는 무서운 단어를 입에 올렸다. 내가 겨우 해내고 있는 이 작은 욕망도 남편이라는 사람이 조력하기에 가능한 것이구나. 남편의 삶에도 그런 욕망들이 드리울 수 있도록 나도 조력해야했던 것인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에게 찾아온 만성적 우울을 전부 회사업무 스트레스로 치부 할 수 없는 노릇. 그렇다고 남편 앞에서 등을 돌리고 글을 쓰는 내 모습도 남편의 우울에 전부 일수는 없다. 그 많던 욕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욕망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할까. 자기돌봄. 아이나 강아지나 나나 너나 모두가 삶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값이다.


여보, 우리 지금 하던 일 다 내려놓고 제주도 가서 살까. 나 여보가 감방에 들어가도 괜찮아. 내가 다 먹여살릴게. 진짜야. 남편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럼 그 때는 왜 나보고 일 안 한다고 구박했냐"고 한 마디한다. 그럼 나는 질세라 "그건 아기 임신 했을 때니까 불안해서 그랬지! 그 땐 나도 임산부인데 막달까지 일하느라 너무 힘들었어"라고 말한다.


아차차, 나 방금 내가 우리 가족 먹여살린다고 호언장담 했지. 솔직함을 남편 얼굴에 쏘아붙였다. 나도 욕망이 있고 엄연히 돌봄이 절실한 몸뚱이인데.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돌보고 누구의 욕망을 관심 가지고 들여다본단 말인가. 인생이 전부 다 훼이크고 모순덩어리다. 그러한 불안 속에서, 누가 누굴 돌보며, 누가 누구의 욕망을 해소하고 억제하며 살아간다. 그러니까 지금, 내 욕망은 서행 할 차례다.


이전 16화삶과 죽음이 진짜 무서운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