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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Nov 30. 2020

나답지 않은 일

워킹맘 다이어리

만차인 주차장에 딱 하나 생긴 자리. 그 앞에 키 없이 깜빡이는 차량 한 대. 팀장님은 그 차 때문에 주차를 못 하고 있었다. 그 때마침 다른 팀장님이 지나가다 그 모습을 봤다. 도와달라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그는 주차를 도왔고, 결국 어렵지만 주차에 성공했다.    

“팀장님은 어디 부서에서 일할 때 가장 좋으셨어요?”

“어디든 좋았지.”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지속 가능한 나라는 것은 결국, 자신이 일군 환경과, 자신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비롯됨을 깨닫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키고, 또 그것이 타인에게 큰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나는 오늘 한결 같은 팀장님의 모습을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 ‘어디든 좋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일궈낸 팀장님의 능력치에 대해서, 팀장님과 함께 한 일터에서의 생활을 되짚어 보며 말이다.    

‘지속 가능한 나’라는 것은 어떤 환경이든, 어떤 타인이든, ‘한결 같은’ 나를 통해 가능한 게 아닐까? 지속 가능한 나에게는 비교우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에 대한 신뢰와 그 신뢰에서 비롯 된 행동들만 존재할 뿐이다. 또 그것들이 모여 나의 환경을 만든다.    

사람은 언제든 쓰러질 수 있는 위험 속에 놓여 있다. 굶주린 사자떼와 독수리가 들끓는 사막 위에 놓여진 위험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지, 우리는 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들 사이에 놓여 있다. 무수한 변수들 사이에서 단단해진 나로, 지속 가능해진 나로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면, 누구나 그런 위험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 하고,  그 위협적인 존재들은 언제든 얼굴을 변모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지하며, 더 이상 떨고만 있지 않는 나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벌꿀 오소리 같은. 벌꿀오소리는 존재 자체만으로 보편적 이념들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세상에서 가장 겁이 없는 동물은 호랑이나 사자가 아닌 ‘벌꿀오소리’라고 한다. 겁 없는 걸로 기네스북까지 오른 일명 ‘미친 동물’이다. 벌꿀오소리가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10키로 남짓인 작은 체구와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벌들에게 수천 번 쏘여도 킹코브라 맹독에도, 끄떡없는 강인함 때문이다.  

귀요미 벌꿀오소리, 미친 동물이다 조심!

벌꿀오소리의 강인함은 사실 작은 체구와 귀여운 외모 때문에 더 높게 평가됐다. 벌꿀오소리의 태생이 맹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과 비교하자면, 벌꿀오소리가 맹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만연한 ‘보편적 가치’라고 볼 수 있고, 벌꿀오소리의 강인함은 그 보편적 가치를 역행한 것을 의미한다. 나다움을 나답지 않은 일을 통해 역행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는 발굴된다. 그렇기에 나답지 않은 일은 매번 신선하다.    

노트에 나답지 않지만 내가 해볼 수 있는 것 리스트를 써보았다. 그것들은 지금까지 내 삶에 없었던 이름으로 새롭게 버킷리스트로 완성 되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답다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해본다면, 그것들이 결국 나다움을 완성해나가고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강인함은 나답지 않은 일을 해냈을 때 벌어진다. 나답지 않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해냈을 때, 그 성취감이 모여 나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어느덧 생각의 근육은 길러져 있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많은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의 청년들이 비혼, 딩크, 퇴사를 선택한다. 이제는 결혼과 아이가 시대를 역행하는 선택지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우리 시대의 흐름이, 그리고 환경이 그만큼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일 뿐, 더 이상 결혼과 육아는 인생의 과업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에게 보편적 이념과 그것들의 보편적 의미를 가르쳐야 할 게 아니라, 수천 번 벌에 쏘여도 킹코브라의 맹독에도 일어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각자 개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보편적 이념이 아닌, 각자의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 세상에 다양한 선택지와 다양한 답안지로 채워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자신의 삶이, 사회가 그린 보편적 가치들 때문에 오답처럼 여겨지던 시대는 지났다.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으며, 각자가 열광하는 히어로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인간은 무수한 변화 속에서 성장했다. 보편적 가치가 아닌, 자신이 만든 새로운 이념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내면화된 보편적 가치들을 의심해야 한다.

“너 미쳤니?” 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면, 당신은 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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