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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영 Dec 07. 2020

역할이라는 입력값이 아닌 존재로 살기

워킹맘 다이어리

넷플릭스를 보다가 워킹맘 다이어리라는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는데, 첫 화부터 한국 엄마들과는 다른 정서와 문화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조깅을 하는 모습. 그녀들에겐 엄마로서의 죄책감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였다. 저런 건강함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는걸까?       

내 일상은 건강함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항상 일과 육아를 일직선상에 두고 비교우위를 따지며 일을 하는 엄마라는 입력값을 수행했다. 일도 잘 하고 싶고, 육아도 너무나 잘 해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나는 너무 자주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을 느꼈다. 비유를 하자면, 내 몸 속에는 여러명의 역할자들이 기숙하고 있고, 내 진짜 존재는 기숙사 사감처럼 그들을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베란다 창을 보며 살기 싫다고 생각 할 때도 있었고, 그렇게 좋아하는 직장임에도 아픈 조아를 데리고 가라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올 때 누구 좋으라고 이 일을 유지하고 있는건가 싶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엄마도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우울감이 찾아오면, 그저 우울감에 빠져 울거나, 사회 탓 보다는 내 탓을 하며 지냈었다.         

워킹맘이라는 게, 얻는 건 오로지 ‘나의 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난 한번도 슈퍼맘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는데, 굳이 내 몸을 혹사해서 인생 야무지게 살고 싶은 기분을 얻고 싶은걸까. 내 몸과 내 수명까지 단축 시키면서,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 인생만 힘든거지 그렇게 얻는 게 도대체 뭘까? 아이를 낳고 한 1년을 그렇게 살았다.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꾹 내 속 어딘가에 눌러 담으며 말이다.     

그렇게 눌러 담은 것들은 머지않아 새어 나오기 마련이고, 나는 머지않아 일과 육아를 일직선상에 두고 있는 이 구도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인 나, 아내인 나, 일하는 나는, 내가 역할을 수행 하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자들 일 뿐이고, 어떤 수식어도 붙여지지 않은 존재 자체로서의 내가 그 역할자들 앞에 서 있어야 한다.      

나로 따지면, 존재 자체로서의 나는 그 무게가 제로에 가까웠던 거고, 일하는 나와 엄마인 나의 무게가 너무도 비대해져있었던 것이다.      

지금 내겐 역할의 다운사이징이 필요하다.      

사회 속의 수식어가 늘어날수록 그 안에서 중심을 잡아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한다. 먹는 것과 자는 것, 운동 등은 존재 자체로서의 나를 바로 세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육아가 힘들다고, 내 밥 차려먹는걸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힘들수록 더 잘 챙겨먹어야 한다. 주저앉아 울고 싶을 정도로 일이 힘들다면, 스스로를 위해 일을 멈출줄도 알아야 한다. 독박육아가 그리도 힘들다면, 주변의 도움을 요청해볼 법도 하다.  우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 하겠다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유튜버 미니부부에게 인스타그램 디엠을 보내보는건 어떨까?  

당신도 사람이다.      

어릴 때, “나도 사람인지라”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 사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누구든 사람이지.’ 사람이 하는 언어라는 게, 자신은 분명히 그 언어의 의미대로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그렇지 못 할 때가 너무나 많다. 습관화된 것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나도 사람이다. 적당히 하자, 서영아. 힘들면 주변에 부탁도 좀 해보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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